“더치페이하기 좋은 날씨다” (영화 <신세계> 대사 “죽기 딱 좋은 날이네” 패러디로 추측)


고인이 된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가 유언처럼 남긴 이 말이 화제가 되면서, 다시 ‘더치페이’가 성별대결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황당하다 못해 안타깝다. 언제까지 사적인 영역의 이야기를 공적인 문제인 양 다루는 걸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고 “누가 돈을 내느냐”는 사회적 지위와 소득에 관련된 문제다. 높은 직급의 사람 또는 수입이 높은 사람이 밥을 사는 게 보편적이다.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구분할 수 없을 경우에 나이 많은 사람이 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에선 나이가 실제로 사회적인 하나의 ‘지위’이기도 하거니와 나이 많은 사람이 모아둔 돈이 많거나, 수입이 많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더치페이하기 좋은 날씨'라는게 따로 있을리가...



그들이 더치페이 논란을 제기하는 이유

실질적으로 이 문제에서 생물학적 성별은 이차적인 변수에 가깝다. 남자 부하직원이 여자 상사와 식사를 하고 ‘남자라서’ 돈을 내는 건 쉽게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여자 직장인과 남자 대학생이 친구로 만났을 때도 일반적으로는 ‘돈 버는’ 여자 직장인이 산다. 

다만 이제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남성의 지위나 소득이 여성보다 높았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어서 남성이 돈을 내는 게 관습화 되어온 감은 있다. 최근에는 성 평등이 이루어지고 역차별까지 일어난다는 반박도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낮다. 2013년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공무원 중에서 여성의 비율은 42%였지만, ‘4급 이상’의 여성 비율은 7.3%에 불과했고, 교원중의 3/4이 여성이지만 정작 여성교장의 비율은 16.7%였다. 게다가 평균임금은 남성은 287만 8000원, 여성은 195만8000원이었고, 임시직 비율만 살펴보면 여성이 28.3%, 남성이 14.4%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2배나 높았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부분이 있다면 사회적 통계는 남성이 여성보다 월등히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실제 더치페이 논란을 주도하고 있는 20대 남성들이 느끼기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입장에서 볼 땐 남성과 여성의 지위나 소득이 큰 차이가 없다. 대학생이라면 어차피 부모님한테 용돈을 타서 쓰든가 알바를 하는 게 유일한 소득일텐데, 거기서 성별에 의한 차이가 일어나기는 힘들다. 남성 사회초년생 역시 또래 이성의 직장인들과 비교했을 때 아직까지는 상황이 비슷해 보일 것이다. 오히려 ‘전문직’에 여성들이 많이 진출하는 모습이 부각되면서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더욱 떨어진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더치페이 논란을 일으키는 남성들을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것은, 지위나 소득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거나, 눈에 띄는 수준이 아니라면 ‘누가 돈을 내느냐’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더치페이를 하느냐 마느냐’, 사회적 문제로 일반화 시킬 수 없어

사실 이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굳이 더치페이로 50대 50을 맞추자는 이야기도 우습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더 내거나, 서로의 사정에 맞춰서 결정하는 게 정답이다. 정 더치페이가 하고 싶으면 상대방의 동의만 구하면 된다.
 
개인적 선택의 문제인 '더치페이'가 '한국 여성의 무개념'을 지적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며, 그것을 하느냐 마느냐 논란이 되는 것은 기막힌 상황이다. 특히 연인끼리의 더치페이를 논하는 것은 헛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연인이야 말로 가장 개인적인 관계다. 무엇이 옳은지는 정해져있지 않다. '돈을 누가 내느냐’의 문제는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경제 상황이나 성향 문제에 가깝다. 어느 정도 사귄 연인이라면 서로의 사정에 맞게 배려해서 ‘데이트 비용’ 문제를 처리할 일이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에 따라, 같은 대학생 신분이고, 용돈도 비슷한데 여자 쪽에서 ‘항상 얻어 먹기만 해서’ 남자가 불만이 많은 커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건 성별과 무관하게 그 사람 자체가 배려가 없거나, 경제관념이 지극히 떨어지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만났다면 자신의 사례를 통해 '한국 여성'을 일반화시키고, 광범위한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글을 인터넷 게시판에 쓸 게 아니라, 먼저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는 게 순서다. 그래도 행동이 달라지지 않을 경우 '안 만나면' 되는 것이다. 

각각의 상황이나, 관계에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문제를 사회적으로 다뤄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더치페이가 필요하다’, 또는 ‘필요하지 않다’에 대해 구구절절이 이야기해봤자 키보드 치는 손만 아픈 일이 된다. 이것은 갑과 을의 문제도 아니고, 법에 의해 규정될 문제도 아니다. 

개그콘서트 애정남의 한 장면 - 애매한 건 그냥 애매하게 냅두는 게 좋을 것 같다.


더치페이 주장 이전에, ‘남성의 지위’에서 내려와야

그러나 더치페이 논란을 일으키는 쪽에서는 남성에게 금전적으로 의존하는 여성은 일부가 아니므로, ‘사회적 문제’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들은 “한국 여성들은 특권의식이 있다. 얻어먹는 게 당연한 줄 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안다”며 푸념한다. 물론 실제로 데이트 비용을 쓰지 않는 것을 ‘대접 받는다’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들을 키운 것은 돈 문제에 대해 직접 이야기하기 부끄러워하고, 돈을 더 쓰면서 ‘남성의 지위’를 보여주려고 했던 남성들이 아닐까?

2011년에 결혼정보회사 가연에서 ‘더치페이의 합리적인 비율’이라는 주제로 남녀 회원 300명을 조사했는데 묘하게도 여성과 남성 전부 6:4를 가장 합리적인 더치페이 기준으로 뽑았다. (남성 42%, 여성 39%) 재미있는 점은 남성이 5:5를 찍은 비율은 28%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상당수의 남성들 스스로도 자신들이 여성보다 최소 ‘2’는 더 내야겠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돈을 조금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은연중에 ‘남성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고, 경제적 능력도 여성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적당히 여성보다 우위에 서있는 것이 지금까지 남성이 가지고 있던 지위였다. 그런 지위를 내세우는 모습이 보편적인 ‘남성상’이기도 했다. 그 남성상에 맞추기 위해 남성들은 소득이 큰 차이가 없더라도 지갑은 조금 더 많이 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들도 이러한 남성들의 모습을 어느 정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우리들이 보는 극단적 사례들은 경제적 의존이 심했던 여성과, 그 점에 대해 말 한마디 안하고 묵묵히 돈을 내는 걸 ‘남성의 자존심’인 것처럼 여긴 남자의 손뼉이 마주쳐서 일어난 일이다. 애초에 이 문제가 여성만의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더치페이 논란’은 ‘누가 돈을 내느냐’를 개인적 문제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남성이라는 지위 자체에 강박을 느끼는 이들의 문제제기에 불과하다. 더치페이를 해야 남성의 권리를 신장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역설적으로 남성이라는 지위를 내려놔야 더치페이든 얻어먹는 일이든 가능하다. 미묘하게나마 관계에서 우위에 서려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평등하게 가져가면 굳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연인들에게 ‘평등한 관계와 평등한 소비’를 강요할 순 없다. 각자의 가치관도 다른데다가, 앞서 말했듯 ‘개인적인 변수’가 굉장히 크기 때문이다. 사적인 형태의 ‘더치페이 운동’이 불가능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돈을 내는지, 어떤 비율로 나눠 내는지 따지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일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여전히 7:3 또는 6:4를 이야기 하고 있다. “5만 원 이상이 지갑에 없으면 여자친구를 만나지 않았다”고 말했던 개그맨 허경환씨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물론 여성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방식이 편하다는 남성도 있다. 각자 가치관대로, 형편대로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