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김택용의 은퇴, 스타1의 아이콘마저 E-Sports를 떠나다.

스타1 리그를 지키지 못하고 무리하게 스타2로의 전환을 추진했던 것이 문제



2007년 3월 3일,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1) 팬들은 ‘충격과 공포’를 경험했다. 5연속 MSL 결승에 오르면서 ‘본좌’라는 별명을 얻었던 마재윤을 3:0으로 이기고, 김택용이 MSL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마재윤의 프로토스전 전적
·다전제 전적을 고려했을 때, 김택용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을 방송사측에서도 2.69%라고 전망하고 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모든 스타1 관련 커뮤니티들은 난리가 났다.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지금까지도 이 경기는 ‘3.3’으로 불리면서 스타판에서 일어난 가장 큰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택용은 이 경기로 인해 ‘혁명가’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 그 이후로도 김택용은 MSL 3회 우승과, 프로리그 다승왕 등 5년 동안 승승장구하면서 임요환을 잇는 스타판의 아이콘으로 성장한다.
 

당시 김택용의 우승가능성은 2.69%, 게임단 감독 9명의 우승자 예상도 모두 마재윤을 향했다. 그러나 김택용 본인만은 자신감이 넘쳤다. 당시 마재윤을 향한 김택용의 '3:0'발언은 스타 팬들 사이에서 '엄청난 망언'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지난 9일, 김택용은 작년부터 열린 스타2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하고야 만다. 2007년 이후에 함께 스타판을 이끌었던 ‘택뱅리쌍’ 중 가장 먼저 선수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김택용은 팬 수로 보나, 경기 전후의 화제성으로 보나, 스타판에서 가장 영향력 있던 프로게이머였다. 나이도 아직 25살에 불과했다. 그의 은퇴는 곧 스타판이 엄청난 위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김택용의 은퇴에 대해 스타 팬들은 큰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다. 스타1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비록 후속작이지만 스타1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게임인 스타2를 하면서 기존의 실력을 되찾지 못하고 은퇴를 한 꼴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타2로의 강제 전환으로 인해 수많은 스타1 팬들도 E-Sports와 멀어졌다. 10년 이상 스타1 경기를 봐왔던 스타1 팬들은, 스타2 경기에는 적응하지 못했다.

애초에 스타2는 게임 유저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는 우려를 받았다. 실제 뚜껑을 열었더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리그 오브 레전드’에 밀려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김택용뿐만 아니라 허영무, 염보성, 도재욱등의 유명 선수들도 은퇴를 선언하고 있다. 시장이 축소돼서 프로게이머들의 연봉이 대폭 삭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관중수의 급감을 보면 비전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스타2 리그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프로리그는 차기 시즌 개최가 불투명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이번에 열리는 ‘WCS 코리아 GSL 시즌3’는 앞선 올해 개인리그 2개를 곰TV와 온게임넷이 동시 중계를 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리그는 온게임넷에선 방송하지 않고 있다. 유일하게 남은 게임 케이블 채널인 온게임넷에서 스타2 방송을 당분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대중에게 더욱다가가기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타1 리그를 즐겼던 팬들에게는 스타2 리그를 진행하기 위해 스타1 리그를 없앤 것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타1의 인기는 유례가 없었다. 특히 지금 20~30대 남성들 중 스타1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만큼, 젊은 남성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스타1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PC방이 생겨나고 게임 산업이 각광받기 시작했고,  E-Sports의 기반을 닦은 것도 스타1이었다. 스타1 리그는 게임 자체의 인기가 대단한만큼 빠르게 사람들의 인기를 끌어 모았고, 스타1 프로게이머들은 10대들의 선망의 직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리그 안에서도 수많은 화젯거리와, 스토리 라인, 라이벌 관계, 징크스등 흥행요소가 뒷받침 해주니 스타판은 날이 갈 수록 커져갔다.

물론 스타1 리그의 인기는 단순히 젊은 남성들에 국한된 게 아니었다. 경기장에는 프로게이머의 여성팬들 뿐만 아니라 커플이나 가족단위 관객들도 많이 찾았다. 그만큼 ‘스타1’ 이라는 게임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만한 대중성을 지니고 있었다. 2005년도에 열렸던 프로리그 결승에서는 광안리에서 10만 명의 관객을 모으기도 했다. 스타1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서, 대중 스포츠인 축구나 야구, 또는 수많은 매니아를 거느린 바둑과 같이, 하나의 스포츠 종목으로써 장수할만한 가능성도 충분해보였다.

그러나 프로게이머들의 상향평준화 이후 경기의 재미가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과, 스타1 팬들을 충격에 몰아넣은 승부 조작 사건등이 이어지면서 E-Sports로서의 스타1은 암흑기를 걷게 된다. 12개 팀 중 기업팀 3개와 공군이 폐지되고, 양대 게임 중계 방송사 중 하나였던 MBC 게임의 폐쇄, 리그 스폰서를 구하기 힘든 상황 등이 이어지며 팬들이나 프로게이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스타1 리그는 없어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스타2가 대신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사실상 ‘뼈아픈 실책’에 가까웠다. 어떤 스포츠든 부침을 겪다가도 특정한 계기를 통해 다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마련이다. WBC 이후의 프로야구가 그랬고, 아시안농구선수권 4강 이후의 지금 농구가 그렇다. 스타1의 과거 폭발적인 인기를 감안한다면, 언제든 스타1도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프로게임단을 이끄는 기업들과, E-Sports 협회, 블리자드등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타1 경기를 그리워한다. 팬들 중 일부는 인터넷 방송을 '아프리카 TV'에 들어가 개인방송을 하는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를 보곤 한다. 염보성, 박지호, 허영무등은 '아프리카 TV'에서 여전히 스타1 경기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소닉’이라는 개인 사업가가 하는 아프리카 방송에서는 직접 스타리그를 열어서 오프라인 결승전까지 열기도 했다. 여전히 스타1이 인기 있는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스타1은 스타2보다 PC방 점유율이 높기도 하다.

하지만 '아프리카 TV'가 대안이 될 순 없다. 그것은 새로운 팬을 유입시킬 수 없다는 점에선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며, 프로게이머들의 경기력도 과거에 비해 한참 떨어진 상황이라 이전처럼 전율을 주는 플레이를 보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유일한 게임 채널인 온게임넷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리그를 주력으로 미는 상황에서, 스타1이 더 이상 E-Sports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

김택용의 은퇴, 그리고 스타크래프트의 추락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이미 기반을 닦고 충성도 높은 팬을 보유한 게임리그와 같은 문화·스포츠 컨텐츠에 대해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스타1과 같은 전국민적 열풍은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수백만 명이 ‘스타1’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을 정도로 스타1은 중요한 ‘대중문화’였다. 스타1이 오래된 게임이라고 해서 리그를 한 순간에 없애고, 스타 1 프로게이머들을 스타2 프로게이머로 전환시켰던 E-Sports계는 스타1만의 가치를 전혀 몰라본 것이다. 
 

김택용 개인리그 우승의 순간들. ⓒ파이터포럼



김택용 역시 ‘아프리카 TV’에서 방송을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김택용의 스타1 경기를 볼 수 있다고해서 마냥 환영하기엔 씁쓸한 기분이 든다. 수만 명 앞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던 슈퍼스타가, 제대로 된 은퇴식도 하지 못한 채 ‘밀려났다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아프리카 TV'에서 방송을 하고 있는 프로게이머들은 대부분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김택용이 등장한다고 해서 '아프리카 TV'에서 프로게이머들이 작게나마 새 판을 짜는 것도 실질적으로 어렵다.

결국 스타1과 청춘을 함께 했던 팬들은, 전율 넘쳤던 경기들과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프로게이머들을 그저 추억으로만 간직할 수밖에 없다. 안타까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