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크로아티아와의 연이은 평가전 이후 한동안 잊혀진 이름이 오르내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에 소속돼있는 공격수 박주영이다. 두 번의 평가전이 실망스러웠던 게 사실이다. 아이티에겐 4대1로 승리를 거뒀지만 경기력은 실망스러웠다, 모드리치, 만주키치 등 주축 선수들이 빠진 크로아티아에겐 완패를 당했다. 골 결정력 부족은 거기서 드러났던 대표팀의 주요 문제점 중 하나다. 골 결정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그라운드에 섰던 공격수들이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속팀 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하는 박주영지만 그의 대표팀 재발탁이 거론되는 이유다.

유명 축구커뮤니티에선 이미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박주영을 재발탁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 중 하나는 ‘박주영의 재능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기 때문에 몇 개월만에 다시 공을 만져도 기존의 공격수들보다 낫다’라는 것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명문 클럽들 역시 프리시즌 경기 치를 이유가 없다. 물론 향수병에 걸려 고향에 돌아가 골프를 쳤다던 테베즈의 예도, 은퇴 후 그라운드에 다시 복귀한 스콜스의 예도 있지만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6개월의 공백에 폼(form)이 떨어진 안정환 같은 경우가 더 일반적이다. 경기감각은 그만큼 중요하다. 박주영은 지난 시즌 임대를 갔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셀타비고에서의 플레이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고 아스날 팀 훈련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팀 선발 조건은 소속팀에서의 골 세레머니다. ⓒ 스포츠월드


그 중에는 고개를 끄덕일만한 얘기도 있었다. ‘만족스러운 공격수가 없으니 많은 선수를 테스트해봐야 하고 박주영은 그 중의 한 명일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박주영이 대표팀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이면 계속 선발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뽑지 않으면 된다. 공격수 문제의 해법이 딱히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재발탁을 반대하는 이들 중 일부도 공감할만하다. 하지만 이러한 근거에 의해 박주영을 재발탁하더라도 그를 선발하는 게 대표팀에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우려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얼마 전에 벌어졌던 기성용 페이스북 사건을 떠올려보는 게 좋을 듯하다. 축구계 큰 선배에게 막말을 했다는 장유유서의 문제로 비화됐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팀 기강에 있었다. 기성용이 비하한 것은 최강희 감독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소속된 해외파와 그렇지 않은 국내파를 구분하고 상대방을 배제했다. 해외파의 기량이 국내파에 비해 뛰어난 건 사실이나 전 세계 어느 나라든 해외파만으로 주전부터 후보까지 로스터를 구성할 수 있는 팀은 어디에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 같은 배경에서 기성용의 발언은 해외파, 국내파 간의 갈등을 불러 일으켜 팀 분위기를 해친다. 경기장 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박주영은 잉글랜드에서도 잊혀진 선수가 돼버렸다. ⓒ 포포투


박주영의 재발탁도 이와 마찬가지다. 홍명보 감독은 이미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는 선발하지 않겠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박주영을 뽑으면 원칙이 무너진다. 선수들은 소속팀에서 뛰든 말든, 잘하든 말든 과거에 잘했고 유명하기만 하면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연·지연·혈연에 의해 대표팀 선발이 결정된다는 의심도 나올 수 있다. 또한 한 번 무너진 원칙은 두 번도, 세 번도 무너질 수 있다. 이는 곧 팀 기강 해이를 뜻한다. 만약에 펼쳐질 수도 있는 박주영의 좋은 플레이가 단기적 성적에 긍정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년 월드컵을 생각하는 국가대표팀엔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군다나 홍명보 감독은 강직하고 꼿꼿한 이미지를 소유자다. 원칙주의자다. 미팅 시엔 격식을 갖추라는 원칙주의자 감독의 지시에 선수들은 무더운 날에도 익숙하지 않은 정장을 입는다. 겨울정장까지 꺼내 입는다.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을 선발해 자신이 세운 원칙을 무너뜨린다면 지금까지 그 원칙을 꿋꿋하게 지켜왔던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겉으로는 따르겠지만 속으로도 감독을 계속 신뢰할 수 있을까? 아무리 단단한 나뭇가지도 흠집이 생기면 쉽게 부러진다. 팀 기강도 무너진다.

홍명보 감독이 박주영과 면담을 하겠다고 한다. 그 면담은 자신이 세운 원칙을 다시 한 번 천명하는 것이 돼야 한다.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면 주급 삭감을 감수하고서라도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팀을 찾아라” 이상이어선 안 된다. 박주영을 대표팀에 뽑는 것은 그 이후에 고민할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