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직접 체험한 자전거&도보 72시간

"여러분은 출퇴근 및 통학을 위한 교통 수단으로 어떤 것을 이용하십니까?"

자전거와 보행은 석유나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의 체력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고 닥쳐온 전력 대란에도 대응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바꿔 말하면, 석유나 전기 등이 사라진 세상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인간의 교통 수단 역시 자전거와 보행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만약, 실제로 석유와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세상이 오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모든 조건을 맞출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버스를 비롯한 자동차와 전철, 기차 등의 교통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살아 봄으로써 이를 비슷하게나마 체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일에 걸친 체험은 이러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석유 및 전기를 활용한 어떤 교통 수단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자전거와 보행만을 이용해 생활하는 것이다.

1일차 코스 : 신도림~신촌~명동~신도림. (지도:네이버 맵)



1일차 : 고난의 행군
 
체험 첫 날의 설렘과 호기심은 자전거 페달을 밟은 지 40분 만에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오랜만에 타는 자전거라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안양천 자전거길을 간신히 벗어나 양화대교 초입에 들어서자 탈진하고 말았다.

이온음료를 마시며 몸을 추스르고 다시 페달을 밟자 닥쳐 온 난관은 건널목이었다. 비교적 자전거나 걸어서 건너는 인구가 많은 다리임에도 불구하고, 양화대교의 남북단에서 마주한 건널목들은 쉽게 통행을 허락하지 않았다. 운전자들은 이곳에 횡단보도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달렸고, 한참을 기다려 차의 이동이 뜸해졌을 때 간신히 건널 수 있었다.
  
더 큰 고난은 고함20 회의 참석을 위해 명동으로 가는 길에 있었다. 도심으로 갈수록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여건은 나빠졌다. 자전거도로는 고사하고, 도로변에 세워진 각종 트럭과 리어카 등으로 걸핏하면 차선 중앙부로 이동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정차를 위해 도로변으로 접근하는 버스는 큰 위협이었다.
 
회의를 마친 뒤에는 길을 잘못 들어, 남산을 경유해서 가는 최악의 코스를 선택하고 말았다. 남산을 올라갈 때에는 자전거를 끌고 온 선택을 자책했다. 하지만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페달을 밟지 않아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수백 미터를 이동할 수 있어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는 듯 했다.
 
다시 한강을 건너 갈 때에는 잠수교를 이용했다. 잠수교는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최적화된 다리라 할 수 있다. 차도만큼이나 넓은 자전거 전용도를 통해 쾌적하게 한강을 건널 수 있다. 잠수교뿐만 아니라 한강변 자전거 도로 전체가 비교적 잘 닦여져 있어, 편안한 자전거 이용을 즐길 수 있다.
 
다만, 기자가 도로를 이용한 밤 시간대의 경우 가족 단위로 한강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자전거 도로를 통해 이동하는 경우들이 많아 자전거 이용자들을 난처하게 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자전거 이용자들은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야 했다.
 

2일차 코스 : 신도림~잠실~강남~신도림. (지도:네이버 맵)

 

2일차 : 자전거 출근의 맛을 깨닫다
 
그렇게 첫 날을 마치고 나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 수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자동차나 전철이 아닌 자전거로 하루 만에 이동했다는 성취감도 생겼다. 둘째 날의 일정은 아르바이트를 위해 잠실과 강남을 각각 경유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주로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면 빠르고 쾌적하게 이동할 수 있기에 수월했다. 때때로 비가 오기도 했지만 큰 무리는 없었다.
 
다만, 드문드문 끊어지거나 다소 비현실적으로 획정된 자전거 전용 도로가 아쉬웠다. 굳이 버스 정류장이 없는 곳에도 자전거 도로가 인도의 정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어 보행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는 일이 잦았다. 자전거 운전자가 최대한 조심한다 해도 어느 정도 이상의 위험은 항상 존재하는 셈이다. 기자 역시 갑자기 나타난 보행자로 인해 몇 차례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인도 한 가운데 좁게 나 있는 자전거 도로. 사실상 인도의 일부로 쓰이고 있다.


 
집 근처인 신도림에 이르러 바퀴의 상태를 점검해 보니 바람이 다소 부족해 보였다. 신도림역 광장에 위치한 자전거 주차장의 정비센터로 가니 일하는 분들이 친절하게 안내를 해주어 바람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사고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비교적 수월한 라이딩을 마치고 귀가한 저녁, 잠시 물건을 사러 자전거를 끌고 동네 마트로 가던 중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를 피하려다 넘어지고 만 것이다. 팔꿈치와 무릎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는데, 매우 짧은 거리라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자전거 이용시에는 항상 보호구를 착용합시다.


 

3일차 코스 : 신도림~신촌~신도림. (지도:네이버 맵)


3일차 : 걸어서 한강을 두 번 건너다
 
전날 밤의 사고로 마지막 날의 이동은 모두 보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이 날의 스케줄은 신촌에서 친구를 만나는 것뿐이었기에 걷기만으로도 소화할 수 있는 거리였다. 안양천이나 한강의 전용 도로를 이용하여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 자전거의 장점이라면, 보행의 장점은 전용 도로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지름길로 갈 수 있다는 데에 있었다.
 
비록 시간은 자전거에 비해 2배 이상 오래 걸렸지만, 체력 소모는 한결 적었다. 꽤 긴 거리지만 이틀에 걸친 자전거 생활로 어느 정도 단련이 되었는지, 수월하게 목적지인 신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체 그 거리를 왜 걸어 왔느냐’는 친구들의 비아냥도 문제는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돌아갈 때 내리던 장맛비였다. 저녁이 되자 빗줄기가 거세지며 천둥까지 치기 시작했다.

다시 한강을 건너가기 위해 양화대교 입구에 다다랐다. 조금 전까지도 천둥이 쳤는데, 주변에 건물이라곤 하나 없는 양화대교 위를 홀로 걸으려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다행히도 우의가 있어 우산을 접고 우의를 쓴 뒤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빠른 걸음으로 양화대교를 건넜다. 벼락을 맞을까 불안에 떨며 간신히 양화대교를 건너 집에 도착해 젖은 몸을 씻으며 든 생각은 ‘석유가 있어 참 다행이다’였다.

자전거 주차 공간이 없어 도로변에 묶여 있는 자전거들


3일간의 체험에서 느낀 가장 큰 점은, 아직까지 서울에서는 확실히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한 출퇴근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었다. 물론 한강을 비롯한 하천변의 잘 닦여진 자전거 전용도로와 몇몇 군데에 설치된 자전거 주차장, 청계천 등지에서 실시되는 ‘차 없는 거리’ 등은 친환경을 강조하는 서울시 당국의 의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서울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시내 곳곳을 자유롭게 다니기에는 장애물 또한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있다. 자전거 전용도로의 비현실적인 구획, 한강 다리의 좁은 인도와 보행자에게 지극히 불리한 다리 진입로, 자전거를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내 중심부의 상황 등이 그것이다. 특히, 자전거와 도보를 막론하고 진입로에서의 빠른 속도의 차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한강 다리를 건너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레저 수단이 아닌 교통 수단으로서의 자전거와 보행에 대한 인식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4대강 자전거 길과 각종 올레길 등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인프라 구축 노력 역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전거나 보행을 의미있는 교통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의 수는 매우 작다. 잡코리아(www.jobkorea.co.kr)가 직장인 1,2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전거나 도보로 출근하는 직장인의 비율은 5.3%에 그쳤다. 아직까지 많은 시민들이 선뜻 자전거나 도보를 이용한 출퇴근을 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최악의 전력대란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점차 커져가는 이 때, 기존의 생활 패러다임으로부터의 작은 탈피가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보여주기식 행정, 프로젝트성 사업이 아닌 실제 시민 생활에서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정책을 기대해 본다.
 
자출족을 위한 커뮤니티/사이트
 
http://bike.seoul.go.kr/
서울시 자전거 종합 홈페이지. 서울시내 자전거 시설 현황과 자전거 지도 등의 정보가 있다. 특히 자전거 교통 지도와 자전거 주차장의 위치는 자출족이라면 꼭 확인해야 할 요소. 유/무료 자전거 대여 장소도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bikeseoul.com/
서울특별시 공공자전거 홈페이지. 자전거 무인 대여/반납 시스템에 대해 안내하고 있다. 현재 자전거 무인 대여/반납 시스템은 여의도 지역에 25개소, 상암동 지역에 18개소 설치되어 있다(유료).
 
http://www.gpson.kr/
GPS On. 자전거 여행자들이 GPS 로그를 모아 놓은 사이트. 각 코스의 위치, 거리, 고도 등을 알 수 있다.
 
http://gall.dcinside.com/board/lists/?id=bicycle
DCinside 자전거 갤러리. 디씨의 특성 상 친절한 대답은 기대할 수 없지만 효율적이고 나름의 전문화된 정보를 기대할 수는 있다.
 
http://www.bikey.co.kr/new/board.php?board=courseqna
자전거 업체 ‘바이키’의 묻고답하기 게시판. 잘 모르는 도로나 코스를 물어보면 친절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