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칼바람은 회사에만 부는 것인 줄만 알았었다. 구조조정이라는 말의 뜻도 모른 채, 그저 구조조정이라고 하면 우리 아빠가 혹은 친구의 아빠가 회사를 옮기게 될 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1997년, 신문이며 뉴스에서 떠들어대던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꽤나 깊게 머릿속에 박혔었고 이후로도 경제지표가 요동칠 때면 심심치 않게 들어 왔다. 그것의 본질은 ‘효율’을 앞세워 자본주의의 논리에 움직이는 자본주의 십계명의 제 1항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은 대학생들조차 ‘구조조정’의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그들의 전공이 비인기 과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라 전체가 효율을 외치며 사기충전하고 있는 마당에, 대학이라고 빠질 수 없는 노릇이다. 한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공부를 하지만, 소위 말하는 ‘유망한’ 학과와 그렇지 못한 학과의 희비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중앙대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두산기업이 중앙대를 인수한 직후, 새로 임명된 박범훈 총장은 ‘명문화’라는 기조 아래 작년 12월부터 야심차게 구조조정의 틀을 마련했고 지난 4월 8일 이사회에서 구조 조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에 있던 18개의 단과 대학, 77개의 학과(부) 체제에서 10개의 단과 대학, 46개의 학과(부)로 대폭 통폐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모든 화살은 비인기학과로 날아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안동대와 더불어 전국에 2군데 밖에 없었던 민속학과도 역사학과로 흡수된다. 2008년 교내 최우수 학과로도 선정된 바 있는 민속학과가 단지 ‘인기’가 없다는 사실만으로 폐지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내고 같은 이름의 학교를 다니지만, 학교는 그들의 학습권을 보호해 주지 않는다. 본인이 중앙대 민속학과 재학생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중앙대가 구조개혁안을 통해 SKY에 버금가는 명문대로 성장하는 것은 저 또한 중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바라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전공이 하루아침에 폐지되거나 다른 과에 흡수 통합될 경우의 아픔을 생각해 보았냐?”며, 전공에 큰 뜻을 품고 입학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학교의 무책임한 처사에 다른 학우들의 관심을 호소했다.


<건국대 히브리중동학과 학생들이 천막 수업을 하며 학교의 결정에 반발했다.(2008)
하지만 결국 건국대의 학제개편안은 통과되었다>

비단 중앙대만의 일이 아니다. 사회의 전공수요가 줄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이유로 많은 학교에서 학과폐지를 꾸준히 실행해오고 있다. 건국대의 경우, 2008년 서울캠퍼스의 히브리어 중동학과와 EU문화정보학과를 폐지했으며, 충주캠퍼스에서는 2011년부터 13개 학부 6개 학과 소속 42개 전공, 학과를 10개 학부 13개 학과로 바꾸는 구조 조정안을 확정해 도입할 예정이다. 과들이 통, 폐합됨에 따라 대학 총 정원은 줄 예정이지만 자율전공학부등의 인기학부 입학정원은 65명에서 225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건국대학교 측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대학 경쟁력 강화와 대학의 효율적 자원분배를 위해서는 일부 전공 폐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선택받지 못한 학과는 제 목소리를 짓밟힌 채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한편 레이싱 모델 학과라는 이색학과 신설로 관심을 모았던 아주자동차대학도 정원을 채우지 못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까지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과를 일방적으로 폐지해 버렸다. 충분한 조사와 수요에 대한 예측 없이 선행되지 못한 대학의 성급한 행동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피해가 되어 돌아갔다. 학과개설을 추진했던 고광호 교수는 “학과가 정원이 채워지지 못해 학과가 폐지된 것에 대하여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이 학과는 신입생을 5명밖에 받지 못했다.

꾸준히 학과가 통, 폐합되는 동안, 한편에서는 새로운 학과들이 신설되고 있다. 건국대는 중동학과와 EU문화정보학과를 폐지한 이후, 영어교육학과와 기술교육학과를 신설했고 아주대는 제반 금융문제에 관련된 학문을 배우는 금융공학부를 신설했다. 금융권의 중요성 상승과 사회적 관심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숙명여대와 성신여대에도 각각 글로벌 서비스 학부와 글로벌 의학과가 생겼다. 하지만 숙명여대에서는 학교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학생들과 교수들의 의견 수렴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제를 개편해 학생들과 교수의 반발을 산 바 있으며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학과의 선택은 개개인의 적성과 환경을 고려한 선택 이였음에도 결국 대학교의 논리에 의해 학생들은 루저와 위너로 나뉜다. 대학교간의 레벨 경쟁에 지쳐버린 학생들은 이제 학교 안에서의 학과의 전망을 놓고 또 한 번 경쟁을 벌여야할 태세이다. 이미 거대한 4년제 학원으로 전락한 대학교. 대학교는 배움의 장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 일까? 대학에서 지도자의 자질도 학문이라는 본질도 배우지 못해 온 비인기학과 학생들은 결국 학교에서 애물단지로만 취급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