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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이란 말에 우리는 몸서리치지만, 동시에 차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다. 참으로 다양한 차별이 있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결코 쉽게 근절되지 않을 차별의 요소가 있다면 단연코 ‘학벌’ 차별을 들 수 있겠다. 학교 졸업장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자기 삶에 충실했는지를 보여 주는 지표가 되고, 그 지표는 취업 시에도 유용하게 쓰인다. 학업 영역을 벗어나 사회인이 되는 과정에까지 학벌은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취업 지원 시 받은 차별 종류 1위가 학력(49%), 2위가 학벌(47.2%)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2009년 1월 취업포털 사람인의 설문조사-.

 우리는 어릴 적부터 높은 성적 예찬론, 명문대 예찬론에 쉽게 노출되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명문대가 가져다주는 혜택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 좁은 문 안으로 들어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능력이 조금 더 뛰어나거나 남들보다 노력을 더 많이 한 소수만이 안정권에 든다. 안정권에 못 들 경우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한다. 차별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는, 현재 상황보다 더 나은 쪽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노력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더 높은 레벨의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재수, 반수, 편입을 하고- 같은 학교 내에서도 더 흡족한 평가를 받는 과에 들어가려고 복수전공, 부전공, 전과를 한다. 

 2009년 6월 취업포털 커리어의 복수전공 현황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7.5%가 복수전공을 하고 있거나 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복수전공을 하려는 이유 1위는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학문의 범위를 넓히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2위를 차지했으나 이후 순위권에 든 대답이 보통 복수전공이 ‘필요’하거나 ‘요구’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대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복수전공 과목은 상경계열(50%)이었고, 인문어학계열(13.7%), 사회계열(8.0%)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약 4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만 보아도 특정 과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경영, 경제가 포함된 상경계열이 유독 사랑받고 있는 까닭은 '향후 취업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채용 담당자들 역시 복수전공을 한 지원자에게 가산점을 주고 있다(40.6%)고 밝혔는데, 가산점 대상 상위권도 상경계열(68.3%)이 차지했다. 실제로 채용 과정에서 학과에 따른 차별의 가능성이 존재했고, 구직 중에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대학생들은 취업에 유리한 과를 복수전공하며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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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다 혁신적이고 한 차원 높은 변화를 원하는 이들은 편입의 길을 택한다. 공고하게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2년제보다는 4년제, 지방대보다는 수도권 대학, 수도권보다는 서울 내 학교 졸업장이 더 위력을 펼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 까닭이다. 당연히 학생들은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 쪽으로 몰려든다. ‘2007년 시ㆍ도별 대학 편입생 현황’을 보면 전체 3만4,451명의 편입생 중 서울 지역이 8,142명으로 24%를 차지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서울권 대학들의 일반편입 경쟁률도 평균 20대 1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편입은 종종 수능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난이도 면에서 대단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훨씬 더 어려운 시험으로 평가받는다. 그만큼 준비 기간이 많이 필요하며, 경쟁률도 상당히 높아 성공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대학생들이 악착같이 학점 관리를 하고 편입 학원에 다니며 편입영어와 편입수학을 공부한다.

 물론 복수전공, 부전공, 편입 등으로 위치 변화를 꾀하는 이들이 전부 ‘취업’만을 위해 해서 고군분투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 계열, 학과별로 사회적 평판이 저마다 다르고, 특히나 대학에 대해서는 더 가차 없는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때의 평가는 다른 것과의 비교 후에 나오는 상대적인 평가를 의미한다. 평가를 통해 높낮이가 결정되면 상위권은 보다 후한 대우를, 하위권은 그보다 소홀한 대우를 받는다. 이런 점을 무시할 수 없기에 대학생들은 위와 같은 방법으로 차별에 대응하는 것이다.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인지하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기특하지만 어쩐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개인이 손쓸 수 없는 구조적 문제라고 해서 모두가 꼭대기만을 바라보며 멈추지 않고 달려야만 하는 걸까? 만연해 있는 학력, 학벌로 인한 부당한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은 결국 본인이 노력해 더 나은 환경으로 편입하는 것 오직 하나뿐일까? 자신의 내공을 쌓기보다는 (학력이든 학벌이든 거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더 쓸모 있는 '화려한 자격요건' 하나를 위해, 쉼 없이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모습일까 의문이 든다. 능력 안에서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차별에 적극적으로 맞선다고 믿었던 우리는 사실, 사회가 만들어 낸 차별의 그물에서 나 혼자만 벗어나면 된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