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시청광장에서 2013 서울 마을박람회가 열렸다. 마을주민이 만드는 라디오방송과 연극, 사진전, 협동조합 등 다양한 마을활동이 전시되었던 행사장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만화 속에서 갓 나온듯한 캐릭터들이 행사장 한편에서 시민들과 즐겁게 얘기하고 있었다. 이들이 차지한 부스의 이름은 ‘코스프레 인식개선 축제’였다. 코스어(코스프레 플레이어)들이 모여 만든 자리다. 수십 명의 코스어가 코스프레 분장소품과 의상, 그동안 찍은 사진 및 활동내역을 준비해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부스를 방문한 일반인들은 코스프레 분장소품을 직접 착용해보기도 하고 코스어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코스프레 인식개선축제의 주최자 와링(16)씨는 중랑구 마을공동체 달팽이마을과 협력해 이전에도 비슷한 취지의 행사를 개최하는 등 코스프레 인식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는 “대부분 어린 연령층인 코스어는 부모님이나 일반인에게 우려스러운 시선을 받는다. 이번 행사를 통해 그들에게 청소년이 건전하게 즐기는 문화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이번 코스프레 인식개선축제의 목적을 말했다.

코스프레 인식개선 축제에 참가한 다양한 모습의 코스어들. ⓒ고함20


코스프레는 1990년대 중후반 국내에 소개된 이후 꾸준히 성장해왔다. 현재는 '코사모'(코스프레를 사랑하는 모임)나 '코스피스'같은 네이버 카페를 중심으로 10만여 명 가량이 활동 중이다. 코스어들이 주로 참여하는 행사로는 대표적 아마추어 만화행사인 코믹월드와 네이버 카페에서 주최하는 소규모 촬영회가 있다. 코믹월드는 한 두달에 한번 정도 열리며 매회 1000여명 가량의 코스어가 참여하는 국내에서 가장 큰 코스프레 관련 행사다. 네이버 카페에서 주최하는 촬영회도 한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열리는 등 이들의 활동은 매우 활발하다.

코스어는 코스프레에 많은 정성을 쏟는다. 참가자 리니(15)씨는 “하나의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 보통 두세달을 준비한다. 캐릭터와 의상 선택, 제작, 연출까지 하려면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의상을 자체제작하는 참가자도 있지만, 보통은 구매한다. 대부분이 10대인 이들은 한 벌에 3만원에서 많게는 70만원에 달하는 코스프레 의상을 구매하기 위해 오랜 기간 용돈을 모은다. 코스어는 이렇게 완성된 복장으로 한달에 한두번 코스프레 관련 행사에 참가한다.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코스프레는 아직까지 비주류 문화다. 폐쇄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두룸두룸(16)씨는 “일반인에게 코스프레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 언론에 의해 왜곡된 원인이 크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볼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며 코스프레 문화가 아직까지 음지에 머무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코스프레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은 코스어를 상처입힌다. 대부분의 코스어에게는 주위의 시선 탓에 상처입은 기억을 한둘쯤은 있다. 참가자 리니(15)는 “코스프레를 꺼려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나 모르는 사람에게도 오타쿠나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며 왜 하냐는 소리를 들을 때 힘들다.” 라며 상처입은 기억을 털어놓았다.


축제 장소에서 박원순 시장과 코스어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고함20


많은 이들의 우려와 달리 이날 행사에 참가한 코스어는 모두 코스프레를 통해 긍정적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참가자 두룸두룸(16)씨는 “원래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다. 하지만 코스프레를 할 땐 자신감이 생기고 굉장히 즐겁다.”라며 본인이 코스프레 관련 행사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다른 참가자 연극소녀 판다쉬(19)씨는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자괴감도 들던 시간이었지만 코스프레를 하면서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알게되었고 자신감도 회복했다. 화장을 배우고 의상을 꾸미면서 ‘나도 예뻐질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2013 서울 마을박람회 관계자는 “코스프레를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니고 행사장에 나쁜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도 아니다. 허나 코스프레를 바라보는 시각은 아무래도 좋지 않다. 성숙한 사람이라면 자기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째서 무분별하게 비판을 하는가. 이제는 마을이 그런 우리 아이들을 품어야 한다”고 전하며 마을박람회에 코스프레 행사를 채택한 배경을 밝혔다.

와링 씨를 비롯한 참가자는 한목소리로 “우린 이상하거나 무서운 사람이 아니다. 코스프레는 평범한 청소년이 즐기는 문화다.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푸는 방법이다.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라며 일반인의 코스프레에 대한 인식개선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