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섹스(Sex)는 인류가 존재하는 한 만고불변할 초미의 관심사다. 지금으로부터 약 3300년 전 무렵에 발행 된 파피루스(과거 이집트에서 파피루스 풀줄기의 섬유로 만든 종이)에도 성교육서가 따로 있을 정도니, 이쯤 되면 인류의 테마는 하나로 압축 할 수 있다고 해도 비약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섹스는, ‘금기시 되어야 할 것’ 중 하나로 치부 받으며 다소간 운신의 폭을 제한받았다. 특히 문명화된 사회일수록 섹스는 계도, 억압 받아야 할 대상으로 강력히 소구되었다. 그러나 억압이 있는 곳엔 반드시 코미디가 있었다.

진격의 SNL과 신동엽, 하지만 그 전엔

바야흐로, ‘신동엽’의 시대가 진행 중이다. 한 동안 광풍처럼 몰아쳤던 ‘리얼 버라이어티’의 흐름에서 멀어지며 마치 ‘퇴물’처럼 느껴졌던 그가, 지금은 명백히 판을 주도하는 위치에 서 있다.

그의 별칭인 ‘동엽신’처럼, 뛰어난 연기력과 능구렁이(?)같은 그의 특유의 말솜씨는, ‘성인코미디’라는 다소 섬세한 지점이 필요한 장르의 특성과 최고의 궁합을 자랑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SNL(Saturday Night Live)에서의 그는, 과거 ‘헤이헤이헤이’를 통해 시도했던 성인 코미디보다 더 높은 수위의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흥행열풍 속에서 ‘신동엽’의 위상과 더불어, 이런 종류의 코미디에 다소 관대해진 사회 분위기 또한 무시할 수 없다. SNL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직설’이었다. 사회, 문화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성(性)적 담론을(특히나 지상파 방송에서) 성(聖)역 없이 해방시키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게다가 공중파에선 볼 수 없는 높은 수위의 섹스코드는, 진짜 ‘성인’들을 위한 코미디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자칫 독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이쯤에서 우리는 故김형곤의 존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섬세함’이 살아있었던 김형곤의 성인 코미디

 

2006년 3월 11일, 아침 운동을 마치고 나오던 그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당시 30kg 이상 감량에 성공하며 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던 중 터진 비보였어서, 대중들은 더욱 안타깝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몇몇 유명 인사들은 한국 풍자 코미디계의 큰 별이 졌다며 슬픔을 감추지 않았다. 그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등 1980년대 당시로는 드물었던 시사 코미디 분야에서 발군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잘 돼야 될텐데’, ‘좋습니다’ 등의 많은 유행어의 배출과 함께 정치·사회·경제 현안과 관련해 여러 촌철살인들을 던지며 대중의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그의 코미디는 청중의 의표를 찌를 줄 알았고, 몇몇 사람들에겐 날카로웠다. 특히 ‘억압’받는 것들을 향해 그의 혀끝은 늘 날카롭게 서 있었다. 1980년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의  ‘시사코미디’가 그랬고, 민주화 이후 쏟아져 나온 여러 담론들 중 한국 사회 특유의 근엄함에 억압받고 있었던 ‘성인코미디’가 바로 그랬다.

그 전까지만 해도 성인 코미디라 함은,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낮은 수준의 음담패설이나 단순한 희롱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흥미 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면서도, 가감 없이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성인 코미디의 가장 큰 매력은 지금의 SNL처럼 ‘거침없이’ 드러내는 데에 있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적나라함이 전부인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포르노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포르노를 보며 미소 짓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김형곤의 코미디는 이전과 조금 달랐다. 서민적인 주제에서 비롯되는 대중과의 폭넓은 ‘공감’이 가능했고, 날카로웠지만 어느 정도의 ‘선’을 조절할 줄 아는 미덕이 있는 코미디였다. 일종의 은유인 셈이다. 사람들은 전라의 상태보다 살짝 가렸을 때 더욱 야릇함을 느낀다. 바로 ‘상상’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신동엽의 코미디는 김형곤과 비슷한 접점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섬세함’은 이후 신동엽 등의 걸출한 코미디언을 통해 성인 코미디를 대중화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90년 후반부터 김형곤은 국내 최초로 성인 코미디 클럽을 운영하고, <병사와 수녀>, <아담과 이브>, <여부가 있겠습니까?> 등의 성인 공연·스탠딩코미디의 효시가 될 만 한 공연들을 기획/연출하며 성인 코미디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힘써왔다. 그러니 한국의 성인 코미디는, 전부까진 아니더라도 적지 않은 부분을 김형곤에게 빚지고 있는 셈이다. 

벌써 그가 떠난 지 7년, 하지만 여전히 그리운 이유  

어느 새 그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째다. 그의 전문 분야였던 시사 풍자와 성인 코미디는 현재 활황을 맞고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성인들이 제대로 웃을 수 있는 코미디가 없음에 아쉬움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그의 노력과 조금 더 자유로워진 분위기 덕분에, 성인들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는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 그의 장기였던 풍자 정신과 날카로움은 조금 무뎌진 듯 하다. ‘섬세함’과 ‘촌철살인’은 그의 코미디가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성인코미디의 본령은 자극적, 원초적, 적나라함에 있지 않다.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을 억압하는 사회를 풍자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수단이 본질을 잠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 섬세했던 신동엽 조차 말이다.

7년이 지금 지금도, 여전히 김형곤이 그리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