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비가 내리는 지난 8일,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한 극장 정미소에서 ‘국제 장애인 연극제’가 열렸다. 장애인 연극이란 장애인이 배우로 무대에 서거나 장애 관련 소재를 이야기로 다루는 연극을 말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어울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통하는 것이 장애인연극제의 목표이다. 올 해 처음 개최되는 ‘국제 장애인 연극제(이하 연극제)’에는 국내 연극과 해외 연극 각각 세 편이 무대에 올랐다.

2013년 국제 장애인 연극제 포스터.


한국장애인문화협회는 ‘2004 나눔 연극제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사업들을 진행해 왔다. ‘장애인문화예술대상’, ‘전국장애청소년예술제’, ‘지역문화축제체험대회등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행사에서 장애인 연극을 알리는데 애쓰고 있다. 지금까지 지속해온 데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을 듯 했다.

장애인 연극제는 인터뷰를 하는 기자에게도,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도 낯설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 이 행사를 주관하는 한국장애인문화협회 안중원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어떻게 ‘국제 장애인 연극제’를 개최하게 되었나?

장애인 연극제가 올해 처음은 아니다. ‘2004 나눔 연극제’가 시작이다. ‘2004 나눔 연극제’는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선발하고, 몇몇 극단들을 초청해 극을 올리는 등 정식 절차를 거쳐 진행됐다. 초청 극단은 장애인이 무대에 서거나 장애 관련 소재를 다루는 극단을 대상으로 했다. 당시에는 장애인 연극 자체가 걸음마 단계였기 때문에 자리를 잡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래도 연극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가 가진 문제의식에 함께 공감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장애인을 알아야 하고, 장애인은 사회를 알아야 한다

답변 중인 한국장애인문화협회 안중원 회장. ⓒ고함20



Q. 행사 소개에는 ‘신체적 기능적 장애를 가진 이들의 불편함 속의 문화보단 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불리의 면에서 야기되는 불소통’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나와있다. 좋은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이게 한 문제의식은 어떤 지점인가? 

결국은 ‘소통’이다. 연극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할 창구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소통의 기본은 많이 부딪히고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역시 서로 알아야 소통할 수 있다. 장애인 연극을 본 많은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보다 더 많은 감동을 받고 가더라.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해 더 이해하고 익숙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래서 우리 사회의 일부분임을 알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것, 그것이 우리 활동의 목표이다.


Q. 문화를 통해 소통하는 방법에는 춤, 노래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왜 하필 연극인가?

연극은 춤, 노래, 그림 등 모든것을 안을 수 있다. 또 배우의 몸짓과 말투 등 몸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래서 연극은 종합 예술인데 장애인 연극제는 아무도 하지 않더라. 장애에도 여러 장애가 있다. 지적장애,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 등 다양하다. 장애인 배우는 특정 배역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극 중, 무표정에 아무 말 없는 배역이 있었다. 우리는 오디션을 통해 어떤 표현도 할 수 없고, 아무 표정 없는 장애인을 뽑았다. 그 때 깨달았다. 연극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나 할 수 있더라. 연극은 여러 가지 의미로 종합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무대 위에서는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니다. 모두 '배우'이다.

 


Q. 많은 이들의 뜻이 모여 시작한 행사이지만 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듯 한데?

어렵다. 일반 연극계도 어려운데 장애인 연극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날씨는 춥고, 사람들은 관심도 없으니까. 사람들의 관심뿐만이 아니다. 장애인 연극단이 설 자리가 없는 것도 문제다. 연극을 올릴 무대가 없다. 장애인 연극의 위상이 높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연극의 메카, 대학로에조차 진출하지 못했다. 대관이나 무대를 마련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연극의 질이 떨어진다든가 극장 세팅 등의 문제로.

물론 극장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번거롭다. 장애인 연극을 위해서는 분장실에서 무대로 오는 길이나 장애인 관객을 위한 좌석 등을 위해 따로 공사를 해야 한다. 그런 모든 부대 비용을 우리가 지불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은 싫어하더라. 같은 조건(공연 기간, 대관료 등)으로 대관을 하려고 해도 어렵다. 그렇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Q. 금전적으로는 어떤가? 심지어 이번 연극제는 무료로 진행한다.

말해 무엇하나. 당연히 금전적으로도 어려움이 많다. 운영비가 충분하지 못하다보니 홍보도 어렵고 스탭들 잘 챙기기도 힘들다. 적자도 많이 나고. 대체로 지원은 문화 관련 단체에서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Q. 법적·사회적 지원의 수준은 어떠한가?

문화예술진흥법 15조에 관련된 두 개의 조항이 있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그 외에 장애인 복지법, 차별복지법 등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직접적 지원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법적 근거 없는 지원은 없기에 입법 활동에도 노력 중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비슷하다. 아직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장애인 문화 지원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번 연극제는 문화 관련 단체 19개 중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았다. 이런 기회가 좀 더 확대되었으면 한다.
 

문화예술진흥법 15조 2의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 관련 법령
제15조의2(장애인 문화예술 활동의 지원) 
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문화예술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고 장애인의 문화예술 활동을 장려·지원하기 위하여 관련 시설을 설치하는 등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
②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의 문화적 권리를 증진하기 위하여 장애인의 문화예술 사업과 장애인 문화예술단체에 대하여 경비를 보조하는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


Q. 내년이면 장애인 연극제가 시작한지 10년을 맞는다. 올해로 9년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장애인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것인데 그 이상을 뛰어넘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무대에서 연극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런데 가능하더라. 놀라웠다. 상상 이상이었다. 또 장애인 연극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숫자도 꽤 많아졌고.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제 1회 국제 장애인 연극제'의 주역들 ⓒ고함20

 

Q. 한국 사회에서 장애는 아직 모두에게 익숙하지는 않다. 장애와 비장애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있는 그대로 봐 달라. 우리를 이해해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장애인도 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부분이다.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 같은 조건에서 살기는 어려우니 함께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그들과 접촉해서 그들에게 도움을 주라.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라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생각하다 보면 도움 줄 기회를 놓치게 된다. 생각에서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라. ‘도와드릴까요?’보다 ‘도와 드릴게요’라고 말하라.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태도로 대하면 그들도 고맙게 도움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