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길호(책의 저자)가 디시인사이드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인류학을 시작하던 그 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한 사람의 갤러였다. TV프로그램 <쇼바이벌>의 팬으로서 방송 날이나 녹화 날이면 쇼바이벌 갤러리(‘쇼갤’)에 접속해 열심히 ‘눈팅’을 했다. 온라인상으로 어떤 커뮤니티 내에서 사람들과 친밀감을 나누어 본 경험은 디시 이전에도 있었다. 나는 PC통신 ‘하이텔’을 9살 때 시작했는데, ‘21/설(서울)/대딩/남’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9/절(전라북도)/초딩/남’ 이런 식으로 소개를 하면서 나름의 대화를 했었다. 온라인 타자게임 ‘다다닥’의 길드 ‘엽기패밀리’ 멤버들은 brabo123이라는 내 아이디에서 ‘라버’라는 별명을 만들어줬다. 초등학교 때는 개인 홈페이지 ‘라버랑닷컴’을 운영했는데 그 때 광주에 사는 ‘샌디’의 개인홈페이지에 자주 드나들며 ‘샌디 패밀리’에 소속되었다. 중학교 때는 ‘제로보드’라는 툴을 사용하여 개인홈페이지를 만드는 사람들의 커뮤니티였던 ‘NZEO’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는 입시 커뮤니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때의 관계들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꽤나 있다.

굳이 갤질을 포함해 사이버스페이스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던 이야기들을 꽤 길게 적은 것은 내가 사회화되는데, 그러니까 사회라는 곳이 어떤 공간인지를 익히는데, 이 가상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경험들이 꽤나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9살 때 PC통신을 통해서 이미 나이, 지역과 관계없이 통신망 너머의 존재와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들끼리 만들었던 커뮤니티의 사람들을 어쩌면 학교에 있는 친구들보다도 더 챙기면서 살았다. 멤버들의 생일, 고입 시험, 홈페이지 방문자수(만힛, 이만힛, ...)는 물론이고 아주 사소한 일상들까지도 말이다. 내가 보았던, 익혔던 ‘사회’가 기성 혹은 일반적으로 정의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맞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나는, 그리고 거기에서 함께 커나갔던 우리들은 그런 방식으로 사회를 배워나갔다. 이것은 인터넷에서의 단순한 소꿉장난이 아니라, 보아가 ID Peace B라는 노래에서 노래했듯이 매우 진지한 의식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화의 경로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이러한 사회화의 범위는 ‘정치적인 것’으로도 확장된다. 나의 경우에는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대학교 2학년 즈음까지) 활동했던 한 입시 커뮤니티에서 이러한 경험을 크게 겪었다. 사람들은 단순히 게시판을 이용하면서 정보를 공유하거나 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내부에 하나의 사회를 건설해나가기 시작했다. 일정한 과정을 거쳐 클럽장/부클럽장 선거를 치러 운영진을 구성하고 초창기의 운영진들은 회원들과 머리를 맞대 (특히 법대생들의 주도로) 매우 긴 분량의 자치 규약을 완성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내부의 수직적 위계화에 대해 불만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래서인지 항상 분쟁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누군가는 신입 회원들이 버릇이 없다며 제재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또 반대편에서 ‘올비(뉴비의 반댓말)’의 친목질이 심해서 뉴비들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고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런 게 민주주의인가, 정치인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반복했던 경험이 있다.



『우리는 디씨』의 수많은 사례들에 나오는 언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진지’해서 웃음을 자아낼 때가 많다. '공화국, 연방' 같은 용어의 사용이나 혁명 때의 행동강령을 적어놓은 형식이 너무 잘 갖춰져 있는 모습 등은 의외성의 재미를 준다. 왜 전혀 평소에는 진지하지 않은 애들이 ‘진지 빨고 있냐’ 는 의미에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국가를 비롯한 공식단체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아주 소규모의 커뮤니티에서 이렇게 ‘진지하게’ 자신들 내부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모습은 디시인사이드가 아니어도 세상의 모든 소집단에서 볼 수 있다. 한 학번에 20명밖에 안 되는 특정 학과의 ‘기수 모임’에서도, 아파트 내의 동장 모임에서도, 이러한 소집단 정치는 항상 이루어지고 있다. 그 안에서는 매우 진지하고 공식적이고 형식적인 용어가 등장하는 장문의 글들이 소통된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정치 사회화되는 공간은, 다시 말해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하는 곳인지를 배우는 공간은, 교과서나 미디어 속에서의 간접체험이나 선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소규모 집단 정치에서의 직접경험을 통해서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디씨』라는 단행본이 갖는 중요성은 사이버스페이스를 실재하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인간이 급증하고 있다는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다. 오프라인에서 개인들이 공동체 내부로 묶여 단체생활을 하는 상황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경험은 상대적으로 그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정치 사회화 과정을 겪는 인간 행위자들의 모습을 두껍고 심층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디시인사이드 회원들(그중에서도 특히 코갤러들)이 극단적 평등주의라는 이념 아래에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친목질/여성갤러/허세를 배척하고, 그러한 평등주의 대신 수직적 위계의 관념이 정착한 다른 커뮤니티들을 비웃으며, 나아가서는 김유식과 디시인사이드라는 절대적 국가에 대한 전쟁을 수행한다. 사이버스페이스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과 사회 시스템의 관계를 사유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즐거움의 포인트다. 그러니까 사이버스페이스와 디지털네이티브라는 개념이 오늘날 새로운 정치를 사유하는 데 있어서 중요성을 갖는다면, 그것이 ‘촛불소녀’와 같이 특정 이념에 맞게 정치화된 세대를 낳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식의 분석은 소위 ‘깨시민’이라고 불리는 특정 정치 세력의 ‘희망’이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정치 사회화의 경로가 기존과는 다르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맞는 분석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묘사하고 있는 전쟁, 극단적 평등주의, 수직적 위계 분화, 친목질과 파벌 형성 등은 실제로 사이버스페이스의 곳곳에서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는 ‘정치 구조적인’ 양상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이버스페이스 커뮤니티 내의 사건들과 관점들과 ‘주의(ism)’들은 유저들의 실제 신체 속에도 각인되어 가상이 아닌 현실 공간에서의 정치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디시인사이드의 코미디프로그램 갤러리가 갤러들이 이러한 관점을 체화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경우이겠지만, 특히 상대의 조건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온라인 환경에서 ‘극단적 평등주의’는 이미 매우 익숙한 관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 역시 점점 더 사이버스페이스 내에만 한정된 개념은 아니게 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이런 극단적 평등주의의 입장에 서 있는 멤버들의 ‘얼마나 공동체에 기여하였거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의무를 다했느냐와 관계없이’ 자기 권리만 찾으려는 모습에 대해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권위적이고 합리적이고 타당한’ 절차에 의해서 만들어진 권위나 권력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식으로 나오는 공동체의 일원들은, 공동체의 운영에 어떤 커다란 혼란을 주기도 한다.



디지털 세대가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겪고 있는 새로운 정치사회화의 양상들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인지,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으며 함부로 말하는 것이 거만한 태도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 판단과 관계없이 분명한 사실인 것이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 정치 사회화된 개인들의 집합이 분명히 기존의 정치 과정을 통해 만들어져 어느 정도 합의된 상태라고 믿어지는 그 ‘대의민주주의’의 규칙들을 여러 측면에서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 이념뿐만 아니라 그동안 사회에서 받아들여져 온 수많은 암묵적인 규칙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적용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스페이스의 작동 원리를 인류학적으로 탐구한 『우리는 디씨』의 시도는,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그와 상호작용하는 인간이 새로운 종류의 정체성과 행동 양식을 어떻게 계발해 가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작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