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서양음식의 ‘근본’에 관한 이야기 <외식의 품격>

흔히 ‘맛은 주관적’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겐 지상 최고의 음식이, 또 다른 이에겐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맛집을 찾아다니고, 어디가 맛이 있는지 떠들어대지만 실상 자기 혀 이외에는 맛을 판단할 명확한 기준도 없다. 유명 음식 블로거들, TV 맛집 프로그램들을 많은 사람들이 참고하지만 그것도 신통치가 않다. 어디까지나 그것도 한 인간의 ‘혀’에 의존하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음식’인가, 음식의 완성도를 규명하는 일은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다. 원칙은 분명하다. 재료의 특성을 이해한 올바른 조리법(재료의 맛을 끌어올리는)을 사용했고, 그에 맞춰 음식의 고유한 특징 (맛·식감·목넘김 등) 얼마나 잘 살려 냈는가, 로 판단하면 된다. 이 원칙을 먼저 고려할 수 있다면 맛은 어느덧 주관의 영역에서 객관의 영역이 될 수 있다.

<외식의 품격>은 원칙에 관한 이야기다. 열여덟 가지 종류의 서양음식들에 대한 올바른 조리법이나 음식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적 배경등을 담아냈다. 동시에 음식의 원칙을 못 지키고 정체불명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한국의 음식 시장을 향해 날리는 강력한 독설이기도 하다. 온갖 다양한 재료를 토핑으로 올려놓은 피자, 국물로 가득찬 뚝배기 파스타, 컵에 손도 못 댈 정도로 뜨거운 커피, 물기가 많은 샐러드 등 우리 외식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음식들이 왜 ‘못 만들어진 음식’인지 지적한다.



<외식의 품격>(이용재 지음, 오브제 펴냄). ⓒ오브제



우리는 ‘근본 없는’ 음식을 먹고 있다

“파스타를 삶은 뒤 흥건한 국물에 비벼버리면 물에 헹궈 전분 끼를 씻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면은 면대로, 국물은 국물대로 따로 놀 수 밖에 없다” (135p)


우리나라에서 자주 보이는, 국물이 많은 파스타가 왜 문제인지 설명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국수는 연한 밀, 파스타면은 듀럼 (단단한 밀)로 만드는데, 국수와는 달리 파스타면에는 전분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러니 맛이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재료를 맛있게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고, 또 배우지 않다보니 오히려 맛을 해치는 조리법을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러한 한국 음식문화의 문제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 번째는 다른 나라의 음식이 갖고 있는 문화와 원리에 대한 이해의 부족, 두 번째는 조리 과정 자체에 대한 무지와 무시, 세 번째는 맛에 대한 데이터를 무시하며 저울이나 온도계 등을 사용하지 않으며, 과학이 제시하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것이다.

책에서 세 가지가 결합하여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것은 ‘커피’였다. 먼저 볶는 과정에서 너무 강한 열을 가해서 향이나 고유의 신맛은 날라가고 오로지 쓴 맛만 남는다. “구수함은 쓴맛의 다름 이름이기 때문이다. 모두 날아가고 남은 쓴 맛을 희석하면 그 좋다는 구수함이 된다. 숭늉을 생각해보자 (중략) 우리가 굽고 가루를 내서 추출해 마시는 것의 실체는 과실의 씨앗이다. 커피에도 신맛이 돌아야 자연스럽게 더 본질에 가깝다” (286p)

조리 과정에선 결정적으로 ‘온도’ 문제를 이야기한다. 커피는 수프처럼 서양음식이기 때문에, 받아서 바로 마실수 있는 수준의 60도 대가 먹기에 적당한데, 커피 전문점에서는 입에 바로 대면 뜨거울 정도로 나오고 있다. 반면 불필요한 ‘정드립’ (커피를 내릴 때 물줄기가 반드시 소용돌이를 그려야 한다)같이 오히려 맛과 관련 없는 속설만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비싼 기계를 사용하는 곳이더라도 온도계나 저울을 사용하는 것에 인색하다고 말한다. 정작 실무자들이 감에 의존해서 커피를 만든다는 것이다. 물의 온도 커피의 양 추출률 3요소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도구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올리브유 치킨’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발연점이 낮기도 하거니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기름은 특유의 알싸함을 지니고, 가열할 경우 더 쓰거나 아린 맛이 날 수도 있다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음식 문화의 질적 저하를 가져오고 있다는 내용은 이 책의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건강해 보이는 음식, ‘잘 만들어진’ 음식은 아냐

“스테이크는 튀기듯이 구워야 제대로 익는다. 높은 열량과 지방으로부터 피할 길이 없다. 모 아니면 도, 조금 덜 기름진 스테이크를 찾느니 차라리 다른 음식을 알아보는 편이 낫다" (p.199)

이 책은 요즘 유행하는 ‘웰빙’이나 건강을 생각한다고 만든 조리법이 결정적으로 음식의 완성도를 해친다는 점도 이야기한다. 가공육 부분에서는 햄에는 아질산염과 인산염이 들어가는데, 특히 아질산염은 부패 방지, 발색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햄에서는 무조건 쓸 수밖에 없다. 건강햄이랍시고 인산염과 아질산염등을 안 넣은 햄을 먹어봤지만, 그것은 엄연히 말해 햄이 아니며, 맛도 없다고 한다.

햄버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온 “건강한 버거는 버거가 아니다”라는 말은 인상적이다. 콩고기 패티 버거는 어처구니가 없다며, 고기와 갖가지 채소가 빵 속에서 어우려져 빚어내는 풍성함의 버거의 본질이며, 고기가 빠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건강식품인양 구는 빵이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려준다. 자연발효종으로 만들어진 빵은, 반죽이 시기 때문에 보다 더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전혀 검증이 안 됐다고 한다. 또한 채식 제빵은 가짜란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식사빵’에는 버터를 비롯한 유제품이 들어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편견은 거두고, 원칙은 살리고

음식에 대한 다양한 편견을 깨는 작업도 이 책은 빼놓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위스키를 묘사한 부분이다. 하루키는 위스키에 대해 ‘심플하고 친밀하고 정확하다’고 말하지만, 실상 위스키는 ‘한없이 복잡하고 낯선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스테이크에 대해서도 편견이 존재한다. 스테이크의 겉면을 지져야 육즙이 빠져나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실험 결과 아무 근거가 없는 이야기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속설을 믿고 있다. (물론 육즙때문이 아니라, ‘마야르 반응’으로 맛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스테이크는 지지는 게 필요하다고 한다.)

'음식문화의 상향평준화‘ 저자의 집필 의도이자 목표다. 음식에 가지고 있던 무지와 편견을 거둬내고, 음식에 대한 원칙을 지키는 식당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적어도 지금보단 '근본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지금이 ‘맛집’을 찾을 때가 아니라, ‘음식을 제대로 만드는 가게’부터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