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2 !

수많은 언론들에서 날이면 날마다 다뤄지고 있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들. 20대를 주목하고 다그치고 때로는 힐난하는 기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요?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20대를 요리하는 키보드 위의 손끝들을 20대의 손으로 처단합니다! 매주 20대, 청년, 대학생 키워드로 보도된 기사들 중 어떤 기사가 왜 나쁜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보는 ‘언론유감’ 연재입니다.


이번주 BAD 기사: [함인희칼럼] 스마트폰과 경로석 (세계일보)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3/10/20/20131020002982.html?OutUrl=naver

스마트폰에 몰입 중인 이들을 관찰해보면 개인차는 물론 있겠지만 대체로 남성은 게임에 몰두하거나,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보거나,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거나, 만화보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반면 여성은 카톡류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드라마 보기에 심취해 있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채 음악에 빠져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조금 더 편한 자세로 스마트폰의 재미를 즐기려는 젊은이 마음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요, 사생활은 간섭이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받아 마땅한 권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편의와 권리만 내세우는 행태는 필히 반성이 요구된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 시선은 아랑곳없이 얼굴 화장은 물론이요, 눈 화장까지 일삼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는 현상이나,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애정표현을 일삼는 연인이 늘고 있음 또한 사생활을 명분으로 실상은 공공의 예절을 범하는 무례함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일이다.
(중략)
대중교통 이용 시 지켜야 할 예절을 보다 철저히 홍보하거나 아니면 지금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경로석을 늘리는 것을 숙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필자가 자주 들어가는 인터넷 커뮤니티엔 가끔 지하철 양보와 관련한 하소연이 올라온다. 아침부터 이어진 연강에 지칠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한 손엔 무거운 전공책을 든 채 집으로 가던 길이다. 몸이 너무 힘들어 지하철 일반석에 앉아 쉬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타더니 자신의 앞에 서서 발로 툭툭 치더라는 것이다. 놀라 고개를 들어보면 할아버지가 왜 안비키냐는 눈빛을 보내고 있단다. 그 정도 되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일어서야 한다. 한 마디라도 잘못 했다간 공공장소에서 그것도 자신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분에게 자칫 대드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른에겐 말대꾸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국 사회의 풍토에선 싫은 내색조차도 할 수가 없다.

하나의 사례가 아니다. 자다가도, 정말 아파 일어서있을 힘이 없는 경우에도 노인들의 당연한 자리양보 요구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양보를 해야 했던 젊은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야 속상한 마음을 내비친다. 자신은 평상시에 자리 양보도 잘하는 편인데 몸이 너무나 피곤하거나 아픈 상태에서까지 자리양보를 강요받으니 너무 서럽다는 것이다. 게다가 노인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를 비킬 것을 요구하거나 욕설을 하는 경우도 많아 평소에 노인공경을 하던 마음마저 사라진다고 말한다.

어떤가? 위의 사례만 보면 나이를 앞세워 자신들의 권리만 내세우는 노인들이 너무 뻔뻔해 보이지 않는가? 그러나 일부 지나친 노인들의 사례일 뿐이다. 함인희 교수가 겪은 사례 역시 일부 예의 없는 젊은이의 사례에 불과할 것이다. 대부분의 노인들과 젊은이들은 서로를 배려하며 양보한다. 자리싸움이 간혹 일어나긴 하지만 매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도 그건 드문 일에 속한다. 공공장소에서 젊은이들이 양보를 권하는 어르신에게 핀잔을 주거나 막말을 하는 모습은 더더욱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심지어 지하철 경로석에 젊은이들이 버젓이 앉는 경우도 잘 보지 못했다. 간혹 장을 보느라 짐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앉을 뿐이었다. 오히려 노인들이 경로석 앞에 서있는 젊은이들에게 앉으라고 권하는 모습을 더 많이 목격했다.

한마디로 일반화의 오류다. 지하철 꼴불견으로 꼽히는 드문 현상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함 교수는 일반적인 예를 들어 근거로 사용하고자 했으나 예시로 가면서 함 교수의 논리는 더 흔들리고 있다. 함 교수가 문제 삼은 것은 노인에 대한 젊은이들의 공경이 약화되었다는 것. 그러나 예시로는 공공예절과 사생활의 충돌을 들고 있다. 물론 노인공경이 넓은 범위에선 공공예절의 한 부분에 속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 과다 사용이나 얼굴화장이 노인공경과 긴밀한 상관성이 있다고 보긴 힘들다. 더군다나 스마트폰 사용은 공공예절과 상충하는 것도 아니다. 

단편적인 사례를 들고 와 예절교육을 주장하는 교수의 모습이 전형적인 꼰대로 느껴지는 것은 예의 없는 젊은이의 치기어린 반항심일 뿐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