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 언론을 향한 쓴소리, 언론유감 시즌2 !

수많은 언론들에서 날이면 날마다 다뤄지고 있는 20대, 청년, 대학생 관련 기사들. 20대를 주목하고 다그치고 때로는 힐난하는 기사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요? 20대에 대한 왜곡된 시선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20대를 요리하는 키보드 위의 손끝들을 20대의 손으로 처단합니다! 매주 20대, 청년, 대학생 키워드로 보도된 기사들 중 어떤 기사가 왜 나쁜 것인지 조목조목 따져보는 ‘언론유감’ 연재입니다.


이번주 BAD 기사: [대학생 칼럼] 모욕과 불친절 … 좋은 고용주가 돼 주세요
http://joongang.joins.com/article/092/13030092.html

얼마 전 단순노동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몇 달 했다. 2시간 과외 수업을 하면 받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했다. 대학에 다닌다고 말하기 곤란해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본의 아니게 ‘위장취업(?)’을 했던 셈이다.
(중략)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하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좋은 머리로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진심으로 궁금해하던 사람들을 보며 느낀 곤란함도 그 부끄러움 때문이다.


이번 언론유감이 다루는 글은 기성세대가 20대에 대해 쓴 글이 아니다. 20대 대학생이 스스로의 아르바이트 경험을 바탕으로, 매주 토요일 중앙일보 오피니언 란에 올라가는 [대학생 칼럼]에 기고한 글이다. 그러나 이 글은 20대가 20대를 바라보는 시선도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언뜻 보면 이 글은 별문제가 없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느낀 부조리를 이야기한다. 파견·도급, 중개인들의 과다한 수수료 챙기기 등을 지적하는 한편 현장에서의 모욕적인 대우와 일상적인 불친절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풀어내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거창한 기부가 아니라 좋은 고용주가 돼 좋은 직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기본 아닐까"라는 결론도 모범적이다.

하지만 이 글의 시선은 오만하다. 글쓴이는 잠시 '아르바이트 체험'을 하러 갔을뿐이고, 원래는 그렇게 힘든 일을 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2시간 과외 수업을 하면 받는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 했다"는 것을 굳이 말할 필요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또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힘들어서 의자에 앉았다는 내용은 아르바이트 현장의 불합리함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겠지만, 사실은 '체험하러 온 사람'의 여유를 보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본문에 나온 고등학생처럼 계속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마음내키는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부분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추측건대 비교적 저렴한 뷔페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A 레스토랑의 이야기일것이다. 그런데 A 레스토랑이나, 비슷한 종류의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는 미성년자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대학생이 등록금이나 용돈 마련을 위해 일하고 있다. 누구를 대상으로 "이렇게 평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로 지칭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을 통해 글쓴이가 그들과 자신을 구분 짓고 있다는 게 은연중에 드러난다. 말은 부끄럽다고 하지만, 사실은 서비스 업종이나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타자화시키며, 자신은 '좋은 머리'를 가지고 있기에 더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글쓴이의 경험담에선 몇 달 동안 '서민 체험'하고 왔다는 뉘앙스가 풍겼다. ⓒ 오마이뉴스


상당수의 대학생에게 아르바이트는 '체험할 것'이 아니라 일상이 돼버린 경우가 많다. 고작 몇 달이 아니라, 대학교에 다니는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인생 경험을 쌓는 게 아니라, 정말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들의 마음을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한' 사람이 알 리가 없다. 

이 글의 원제는 '책을 덮고 배운 삶의 현장의 경영학'이었다고 한다. 경영학은 말 그대로 기업의 경영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는 것이다. 경영학도인 그가 책을 덮고, 실제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부조리함을 겪어보면서 "고용주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글쓴이는 지극히 경영학적인, '예비 CEO'의 관점을 벗어나진 못했다. 몇 달 동안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노동자가 아니라는 자각이 있었으니 끝까지 체험자의 '오만한 시선'을 버리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