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언론의 ‘국민참여재판 때리기’가 한창이다. 지난 10월 24일,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신청으로 국민 참여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부는 배심원 측의 평결을 따라 무죄를 선고했다. 다음날 중앙일보는 "나꼼수 무죄, 법리·팩트보다 감성 평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 역시 "상식에 어긋나는 국민참여재판의 '나는 꼼수다' 무죄"라는 제목의 사설을 냈다. 국민참여재판에 참가한 배심원의 판단은 정말 감성적이며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을까. 실제 재판 과정을 되짚어 국민참여재판의 평결의 합리성을 알아보았다.

ⓒ 고함20 블루홀



김어준 발언 일부 신동욱 재판 내용과 달라
나꼼수의 왜곡 보도? 검사의 왜곡 판단도 있어

김환수 부장판사는 “해당 사건은 액자소설 형식”과 같다고 설명했다. ‘액자틀’은 나꼼수 측의 보도이며 ‘그림’은 신동욱 재판의 정황이었다. 나꼼수 측의 보도 내용의 타당성을 증명하기 위해 신동욱 재판의 정황을 살펴 신동욱, 박지만, 박용철 세 사람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김 씨의 발언 중 신동욱 재판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검찰 측은 김 씨가 나꼼수 방송을 통해 “(박지만을 옹호하던) 박용철이 갑자기 입장을 바꾼다”고 말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박용철이 “‘박지만 회장님의 뜻’이라고 말한 녹음 파일이 있다”고 이민경 육영재단 관계자에게 말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용철은 신동욱 재판에서 “박지만의 뜻이라고 한 것은 신동욱 살해가 아닌 육영재단 소요 사태를 말한다”고 자신의 진술을 해명했다. 박 씨의 진술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박 씨는 재판에서 박지만 씨를 옹호하는 일관된 입장을 보였다.

검찰 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다. 검찰 측은 나꼼수 측이 박용수가 소지했던 칼이 2개였는데도 사용하지 않은 칼만 언급해 왜곡 보도를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 과정에서 검찰 측이 증거로 제출한 나꼼수 방송 편집 파일은 나꼼수 측이 칼 2개를 모두 언급한 부분을 누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측이 박용철 씨가 죽기 전 증언을 앞두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 역시 사실과 달랐다. 검찰은 박용철 씨를 증인으로 소환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신동욱 재판 당시 신 씨를 변호했던 조성래 변호사가 박용철 씨를 재정증인으로 신청한 바 있음이 밝혀졌다. 재정증인은 일반 증인과 달리 소환하지 않고도 심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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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측 수사 vs 주진우 취재, 치열한 진실 공방
“수사 당일엔 이상한 점 못 느꼈다” 강력 팀장 진땀 흘려

박용철, 박용수 씨의 죽음에 대한 경찰 측의 수사 결과와 주 씨의 취재 내용은 크게 엇갈렸다. 박용수 씨의 유서 필적을 두고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검사 측은 박용수 씨가 남긴 유서의 첫 줄은 본인의 필적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 측은 유서의 둘째 줄의 필적은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서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해 달라’는 유서 의 내용이 청부 살해의 증거를 은폐하려는 의도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박용철 씨의 휴대폰의 현장 발견 여부를 두고도 접전을 벌였다. 휴대폰엔 ‘박지만 회장님의 뜻’이라는 내용의 녹음 파일이 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휴대폰이 현장에서 사라졌다면 박지만 씨가 박용철, 박용수 씨를 청부 살해했다는 의혹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검사 측은 현장에서 갤럭시 탭 한 대만 발견되었으며 휴대폰은 애초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측은 박용철 씨의 부인 이금란 씨의 진술을 제시하며 반박했다. 이 씨에 따르면 경찰 측은 “갤럭시 탭과 핸드폰 두 대를 주려고 했는데 핸드폰을 분실했다”고 말했다.

박용수 씨가 죽기 전에 먹은 정장제도 문제가 되었다. 검사 측은 박 씨가 평소 위장이 약해 정장제를 먹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측은 과민성 대장을 가진 사람이 설사를 유도하는 정장제를 먹은 점,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죽기 직전에 약을 먹었다는 점이 이상하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측은 주 씨의 취재 내용 외의 증거를 추가로 제출해 수사 부실을 증명했다. 변호사 측은 경찰 측이 살해 현장에 동네 주민과 관계자만 열 수 있는 출입 차단기가 있음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 측이 박용수 씨가 머물던 여관, 박용철 씨와 박용수 씨가 죽기 직전에 들렸던 술집의 CCTV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점, 박용수 씨가 살해에 이용한 칼의 지문 감정을 의뢰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박용수 씨 시체에 남은 반점 역시 목을 매단 사람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변호사가 추가로 지적한 박용수 씨의 목에 걸려있던 빨간 두건은 재판장을 술렁이게 했다. 박용수 씨가 목을 매단 밧줄 위로 빨간 두건이 걸려 있었다. 변호사 측은 목을 매단 후 두건을 두른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 측의 증인으로 출석한 백기관 강북경찰서 강력 팀장은 “수사 당일엔 두건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수사 결과에 허점이 있을 수 있다”며 한발 빼는 태도를 보였다. 검사 측은 “주 씨의 보도 외의 내용이므로 재판과 관련이 없는 증거들”이라고 비판했다.


변호사 측, “비방 아닌 언론 기관으로서 정당한 역할”

검사 측은 2011년에 벌어진 사건인데도 주 씨가 2012년 대선 직전에 보도했기 때문에 당시 후보였던 박 대통령을 낙선시킬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사 측은 탐사보도란 특성상 심층적인 취재를 위해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검사 측은 나꼼수 측이 해당 사건을 보도하면서 “문재인이라도 넘어갔을까,” “자신을 위해 투표하라” 등 대선 관련 발언을 했음을 지적했다. 변호사 측은 나꼼수의 모든 회에 나오는 말이며 대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어서 언론 기관으로서 고위직에 오를 사람을 검증하는 것은 정당한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변호사 측은 주 씨가 진보 성향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의 비리 역시 보도했음을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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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6:3, 8:1의 평결, 재판 내용 그대로 반영한 판단

이날 나꼼수 측은 배심원 평결에 의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배심원은 나꼼수 방송, 시사인 보도, 출판기념회 발언 모두에 무죄를 평결했다. 나꼼수 방송을 통한 보도는 무죄가 5, 유죄가 4로 무죄 평결을 받았다. 김 씨의 일부 발언이 실제 재판 내용과 달랐던 점이 반대 의견이 다소 높은 것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신동욱 재판에서의 박용철 씨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믿기 힘든 점, 박용철 씨가 신 씨의 변호사 측 증인으로 출석한다면 박지만 씨에게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고려해 나꼼수 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보인다.  

주 씨의 시사인 보도에 대해선 무죄가 6, 유죄가 3으로 무죄 평결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주 씨가 제기한 의혹이 사실이라고 단정할 순 없었으나 합리적 차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증인 심문에서 박용철, 박용수 씨 사건을 담당한 강력팀장이 수사의 부실함을 인정할 정도로 의혹 제기는 설득력 있었다. 주 씨의 출판기념회 발언은 8대 1의 압도적인 표차로 무죄 평결을 받았다.

배심원의 평결은 감정적이지도 비상식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세 가지 사안에 대한 평결 결과는 재판의 심리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보수 언론은 배심원의 평결 결과가 실제 재판 내용에 부합하는지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하고 있지 않은지 자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