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 또 하나의 바람이 같이 불어오고 있다. 바로 ‘종북’ 바람이다. 달리 말하면 ‘통합진보당 때리기’다. 11월 5일,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했다.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정당보조금 수령 등 정당 활동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신청,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도 함께 청구했다. 법무부는 보도 자료를 통해 “개별적 처벌과 국회의 제명 및 자격심사만으로는 반국가 활동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어, 반국가활동의 토대 붕괴가 필요”하다며 ‘정당해산심판’이란 강력한 카드를 꺼낸 이유를 설명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너무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그야말로 LTE급이다. 11월 5일 오전, 법무부가 긴급안건으로 국무회의에 상정한 청구안은 곧바로 심의와 의결을 거쳐 통과됐고, 오후가 되기도 전에 헌법재판소에 제출됐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어느 정당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는 진지하게 여러모로 토론해야 할 문제다. 예고도 없이 긴급안건으로 상정한 뒤 하루 만에 처리할 만한 문제가 아니다. 과연 통합진보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또한 일종의 자유라고 볼 수 있는가 등에 대해선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 연합뉴스


각 정당의 반응도 극명히 엇갈렸다. 새누리당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고 그 집행마저 방해하는 정당은 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며 “대한민국을 수호하려는 불가피한 선택”이라 말했다. 반면 노동당은 논평을 통해 “민주주의와 정치사상, 정당 활동의 자유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라며 “정당 및 정치세력에 대한 판단은 국민의 선택에 의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정반대에 가깝게 의견이 나뉘는 상황인데도, 박근혜 정부는 무작정 헌법재판소에서 판결을 내리려는 것이다.

법무부에서 밝힌 통합진보당 해산 요구의 근거 중 몇 가지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일하는 사람(민중)이 사회생활 전반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진보적인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이란 통합진보당의 강령이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국민주권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며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았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민중은 사회주의적 개념”이란 말까지 더했다. 그럼 ‘민중’이란 용어를 사용해온 사회학자들은 죄다 헌법을 위협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 청구서 ⓒ 연합뉴스


국가보안법 폐지와 주한미군 철수 관련 강령이 해산 요구의 근거로 꼽힌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자유민주주의 부정으로 연결 짓는 생각은, 교실에서의 체벌 반대를 학교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 짓는 생각만큼이나 한심하며 시대착오적이다. 주한미군 철수 강령을 대한민국 체제 파괴의 의도로 보는 것도 어이가 없다. 동맹국의 군인들을 국내로 더 불러들이자고 주장하면 건실한 애국자라고 칭찬해줄 기세다.

위기의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종북 논란을 일으키며 국면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은 국가정보원을 넘어서 군 사이버사령부, 국가보훈처, 안전행정부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11월 4일에는 조용히 간을 보던 안철수 의원이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개입 의혹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정도로 대선 개입 의혹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고, 물결은 박근혜 정부를 향하고 있었다. 그 물결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을 붙들고 종북 논쟁을 벌이려는 것이다. 지난 8월 말에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이 커지고 있던 때,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음모 수사가 시작됐다. 곧바로 국정원의 댓글 관련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종북 논란이 여론을 잠식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효과를 내보려는 심산이다. 올 겨울은 종북 논쟁과 함께 맞이해야 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