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정치’만 정치인 줄 안다. 직업이 ‘정치인’인 본인들만 정치를 하는 줄 안다. 주입식 교육을 받은 사람도 ‘정치’의 개념을 저렇게 한정하진 않는다. 토론교육만 제대로 받았다면 이런 코미디같은 주장은 할 수가 없다.

‘나꼼수’, ‘안도현 시인’ 재판 결과를 두고 새누리당에선 국민참여재판에서 정치적 사건을 배제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배심원들이 야당지지자라고 단정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문재인 의원이 재판 방청객으로 앉아있어 야당에 유리한 판결을 내렸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일단 모두 차치하고 주장 그 자체만 보더라도 웃긴 말임이 분명하다.

뭐가 웃길까. 일단 ‘정치적 사건’의 개념부터 확실히 하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라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이해관계가 다르기에 발생하는 갈등이다. 한 쪽이 피하지 않는 이상 갈등은 해소되어야 하며, 그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결국 한 쪽에게 명백한 죄가 있는 것이 아닌 이상 가치관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사건은 모두 ‘정치적 사건’이 된다.

이해관계가 첨예할 때 이를 해결하는 주체는 단연 사법부이지만 사법부는 선출되지 아니한 권력이므로 갈등해소과정에서 국민은 쉽게 소외될 수 있다. 갈등의 주체는 국민이지만 갈등해소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게 되면서 ‘국민의 자기지배’라는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사법부라는 절대권력 앞에서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는 국민에게, 법정은 때때로 갈등해소창구가 아닌 갈등증폭창구가 될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이 부분에 있어 갈등해소과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얻기 위해 도입됐다. 국민이 직접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어 결과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물론 배심원의 결정이 모두 절대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법 역시 절대 진리가 아니요, 국민적 합의의 결정체다. 법 제정 주체가 국민이라면 법 해석의 주체도 국민이 되는 것이 민주주의 정신이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은 법이 지니는 성격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2008년 처음 실시된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후보들이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본다면 새누리당의 주장과는 반대로 오히려 정치적 사건에서의 국민참여재판은 더욱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실제로 2011년 법무부 차관이 국민참여재판 대상 사건을 확장시키자는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우리 사회는 국민참여재판을 넓혀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만에 하나 새누리당이 국민의 정치적 신념이 그렇게도 걱정됐다면 국민참여재판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배심원 선정 방식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주장했어야 한다. 국민참여재판을 정치적 사건에서 제외하자고 주장하는 일부 국회의원들은 ‘정치적 사건’에 대한 개념정리가 되지 않았거나, '무지몽매한 국민이 재판에 참여하면 물을 흐린다'는 엘리트주의 사고에 빠진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혹은 이를 논란삼아 정치적 실익를 챙기려 했거나.

어떤 경우든 어리석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 이 주장을 제기한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수능 사회탐구영역 <법과 정치>를 배워볼 것을 추천한다. 주입식 교육이라 단편적인 개념잡기일진 몰라도 당장 시급한 기초개념은 알 수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