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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말이 전도돼도 단단히 전도됐다. 여권이 종교계의 시국선언은 정교분리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법이 현실사회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해석의 차이가 생길 여지가 있지만, 이렇게 본말을 뒤집는 해석은 용인의 수준을 넘어선다. 헌법이 엿가락도 아닌데 정치적 상황에 따라 늘였다 줄였다 할 순 없다.  

정교분리의 원칙이 헌법에 명시된 취지를 되새겨야 한다. 헌법 제 20조 2항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분리의 주체는 국가와 종교이다. 즉, 국가가 국교를 정하여 종교적 권위를 갖고 타종교를 배척하거나 국민의 인권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종교적 권위와 국가권력이 결합할 때 어떤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유럽의 역사는 똑똑히 보여주었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특정 종교인에 대한 국가의 특혜나 탄압을 막기 위해 탄생한 유럽 역사의 산물이다.

따라서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인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불간섭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종교인이 특정한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창당 혹은 정당 활동에 나서는 것은 종교정신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천주교의 시국미사나 종교계 전반에 퍼진 시국선언이 ‘이익’을 취할 목적이라 볼 순 없다. 오히려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개입을 규탄해 사회 정의를 바로세우는 것은 종교정신에 부합하는 행위에 가깝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발언을 할 수는 있으나 사제단은 그 수위가 지나쳐 갈등을 조장하고 국론을 분열시켰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박근혜 대통령 퇴진’ 주장은 ‘너무 나갔다’는 말이다. 이는 협소한 시각에서 나온 주장이다. 당장의 갈등이 싫으니 대의를 버리자는 주장이다. 국가기관 대선개입은 1년째 지지부진하게 끌고 있으며 그 배경엔 박근혜 대통령의 ‘나몰라라식’ 대응도 큰 영향을 줬다. 그 뿐인가. 권은희 수사과장과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양심선언을 통해 경검찰 지휘부의 수사압력도 작용했음이 드러났다. 여기에 청와대만 쏙 빠져있었다고 믿을 국민은 거의 없다. ‘나는 모르니 빠져있겠다’는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 박근혜 대통령이 너무 나간 것인지, 더 이상 민주주의의 훼손을 막기 위해 퇴진을 요구한 사제단이 너무 나간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다.

본론으로 돌아와 정교분리 원칙을 이유로 종교인의 시국선언이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해관계에 얽혀 특정 정파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적 가치가 무너지고 정의가 바로서지 않는 상황에 대해선 종교가 선지자적 역할을 하는 것이 종교계의 사명이기도 하다. 유신체제 하에서 민주화투쟁을 벌였던 종교계의 모습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