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학과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구조조정의 대상이 된 학과는 인문계열이 대다수였다. 경남대 철학과, 동아대 국문학과·문예창작학과, 목원대 독일어문화학과·프랑스문화학과, 배재대 국문학과·독일어문화학과·프랑스어문화학과, 중앙대 비교민속학과·아시아문화학부, 한남대 독일어문학과·철학과 등 열거하기 벅찰 정도로 많은 인문계열 학과가 통폐합됐다. 인문계열 학과의 낮은 취업률이 주요한 원인이었다. 배경에는 취업률을 중심으로 한 교육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이 있었다. 이러한 비판이 이어지자, 올 7월 교육부는 대학평가 때 인문계열 학과에 대해선 취업률 지표를 반영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계열 학과 구조조정은 2014년에도 이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학과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서강대학교 ⓒ베리타스알파


2014년 인문계열 학과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은 서강대학교다. 지난 11월 28일, 서강대학교 제29대 국제인문학부 학생회 ‘오늘’은 “서강의 위기입니다. 국제인문학부의 위기입니다”라는 제목의 호소문을 발표했다. 호소문에 따르면 ▲국제인문학부, 사회과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 등 인문사회계열 학부의 통폐합 ▲국제인문학부 정원 축소 ▲기초교양과목의 대대적인 축소를 위한 물밑 작업이 진행 중이다. ‘오늘’은 호소문과 함께 11월 13일에 작성된 서강대 국제인문학부 교수 일동의 성명서도 공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서강대 학교본부는 무한경쟁시대에서의 ‘생존’과 ‘효율성’을 명분으로 국제인문학부의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서강대 학교본부는 학과 구조조정을 ‘선진 학제개편’이라 부르며,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라 말한다. 그러나 서강대에서 선진화, 경쟁력 강화를 취지로 벌인 일들을 돌이켜 보면,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가 계속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올해 취임한 서강대 유기풍 총장은 등록금 의존율을 낮추겠다며 창업투자회사 운영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립금 금융투자는 엄청난 손실로 이어진 바 있다.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이 교육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강대는 지난해에 29억 5천만 원의 투자 손실을 냈다. 서강대 브랜드를 강화하겠다는 사업에도 의구심이 든다. 올해 초 서강대 교수협의회는 유기풍 총장이 산학부총장 시절 개발한 ‘서강라면’에 투자된 금액과 투자회수금액의 공개를 요구했지만, 학교본부는 이럴타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서강대는 2011년에도 25억 3600만원의 투자손실을 냈다. ⓒ한겨레


학생들의 의사도 철저히 무시됐다. 서강대 유기풍 총장은 SNS를 통해 학생과의 소통을 활발히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유기풍 총장은 단순히 서강대 학생들과 페이스북 친구를 많이 맺고, 학교 소식을 직접 전할 뿐이지 학생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있진 않다. 서강대 남양주 캠퍼스 착공을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남양주 캠퍼스 착공에 많은 학생이 반대 의사를 나타내왔다. 그런데도 유기풍 총장은 12월 3일에 보도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 구성원들이 큰 방향에는 동의하지만 정작 미래가 가까워 오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남양주 캠퍼스 설립의 장점만을 늘어놨다. 인문계열 학과 구조조정 소식을 들은 서강대 학생들이 유기풍 총장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에 대한 답변에서도 마찬가지 태도를 볼 수 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유기풍 총장의 답변에는 ‘대학 경쟁력 강화’를 골자로 한 말만 가득했다. 답변 중에는 “사실과 다른 정보를 의도적으로 퍼트리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검토를 통해 엄격히 대응하고자 한다”는 무서운 말도 포함돼있었다.

유기풍 총장은 '대화'란 게 뭔지 모르는 걸까? ⓒ서강학보


선진화, 경쟁력 강화를 취지로 이뤄지는 대학의 기업화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백번 양보해서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란 말은 철 지난 옛이야기고, 현실을 받아들여 대학은 기업처럼 변해야 한다는 말이 옳다고 치자. 그런데 이상하게도 학생들은 대학이란 기업에 하염없이 등록금을 투자해주는 역할만 한다. 투자는 하지만 투자이익 따위는 얻을 수 없다. 더군다나 학생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드높여도 학교는 학교본부의 의지대로만 굴러간다. 학교본부가 추진한 사업이 실패했을 때의 책임을 학생들이 져야 한다는 점은 더욱 이상하다. 학생들은 학과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자신의 과를 잃어버리고, 학교에 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등록금을 더 내야 한다.

기업화된 대학에서 학생은 학교 구성원이 아닌 소비자에 불과하다. 소비자 중에서도 아낌없이 등록금을 퍼주고 피해만 보는 ‘호갱님’이다. 학생이 호갱님으로 전락하는 일은 비단 서강대에서만 발생하는 일은 아니다. 2013년 전국의 여러 대학에서 이뤄졌던 학과 구조조정은, 이미 많은 대학생은 호갱님이 됐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서강대에서 이뤄질 인문계열 학과 구조조정은 2014년에 더 많은 대학생이 호갱님으로 전락할 잿빛 미래를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