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정: 2013년 12월 4일 오후 7시 14분 

한 유명 채식 시민단체 대표 성희롱 의혹

지난 8월, 여대생 한 모 씨는 채식 관련 인터넷 카페에 가입했다. 그리고 해당 카페에 하우스메이트(housemate: 가족이 아닌 집을 같이 쓰는 사람을 이르는 말)를 구한다는 공고를 냈다. 본인이 채식을 하는지라, 같이 사는 사람도 채식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한 씨에게 한 유명 채식 시민단체 대표 이 모 씨가 '옆 방이 비었다'고 연락을 해왔고, 두 사람은 신촌 모처에서 만나 이야기를 한다. 한 씨는 이야기 도중 이 대표가 자기는 '집세를 받을 생각이 없다'며 방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유명 채식 관련 시민단체 대표이고 이미 두 사람은 채식 관련 모임에서 몇 번 만나 얼굴 정도는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한 씨는 이 씨와 하우스메이트가 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한 씨가 이 대표와 주고 받은 문자 캡쳐본. '하메'는 '하우스메이트'의 준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관련 이야기를 하고 이내 헤어졌다. 다음날 밤 한 씨는 이 대표로부터 문자 한 통을 받게 된다. ‘낯선 사람과 한 공간을 쓴다는 것이 저에게 여전히 부담이 되네요ㅜ 하메로 있을 동안만 사귈까요.. 아니면 저는 다른 분께 양보할께요..’라고 문자를 보낸다. 하우스메이트로서 방을 무료로 빌려주고 그동안 자신과 사귀자는 뜻이었다. 한 씨는 거절 답장을 보낸다. 

이후 다른 채식 관련 모임에 참여한 한 씨는 이 대표가 과거 자신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행동을 다수의 여성에게 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할까. 한 씨는 고민하던 중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발생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더 이상 상처받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며 해당 카페에 그 날 있었던 일들을 모두 밝혔다. 이 대표가 자신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려고 했으며, 방을 빌려주는 대가로 사귀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가 글을 작성한 이후, ‘자신도 이 대표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증언들이 터져 나왔다. “2년 전 채식을 처음 시작하려고 나간 모임에서 이 대표를 만나게 됐다. 그가 자주 연락하자, 식사하자고 그러는 것도 이 씨가 대표로 있다던 채식 시민단체 관련된 일로 내게 도움을 주려는 줄 알았다. 그러더니 사귀자더라”는 증언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카페에 ‘모든 것을 실수했고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사과한다. 앞으로 카페 활동은 중지하겠다’고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한 씨가 '카페 활동을 중지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느냐'며 다시 반박하자 이 대표는 한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다. 사건이 커지자 한 씨를 필두로 해당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이미 이 대표가 2004년부터 비슷한 성희롱 추문에 여러 번 연루된 것이 밝혀졌다. 2004년 당시 “(이 대표가) 나에게 은근한 스킨십을 유도했다. 처음에는 내가 동생같이 여겨진다고 했다. 게임을 하던 중 내게 강제로 키스했는데 너무 당혹스러워 가까운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이 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 대해 믿음과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는 증언도 존재했던 것이다. 

한편, 가해자로 지목된 이 대표는 <고함20>과의 인터뷰에서 의혹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자신은 단지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려 했고, 호의적인 행동이 ‘은근슬쩍 스킨십을 시도했다’는 것으로 노골적으로 묘사됐으며, 자신의 행동이 “어떤 의도가 없었고 그렇기에 성희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는 “내가 미안하다는 사과문을 게재한 이후에도 한 씨는 나를 계속 비방했다. 이는 나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민‧형사 소송을 준비하기로 했다. 지난 10월 소장을 제출했고 현재 경찰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책위원회 관계자 조상우 씨는 “(이 대표가) 본인을 한국 채식의 대표자인 양 행세하고 다니는데, 채식계에서는 이 대표의 행동이 굉장히 심각한 일인 거다. 대표라는 지위를 이용하는 건데, 사람들이 채식 자체를 어떻게 생각하겠나”고 우려했으며, “일단, 이 씨가 대표로 있는 단체가 비영리단체라고는 하지만, 정작 어떤 관련 일도 하지 않는다. 민원을 넣어 이 단체 자체를 취소시킬 것이다”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을 법여성학 연구자 A씨는 “이를 계기로 성희롱이 일상의 문제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상기됐으면 좋겠다. 성희롱이라는 게 단순히 남녀의 문제로만 여겨지고 있는데, 이로 그치는 게 아니라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시사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이 현행법상 성희롱으로 인정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3년 롯데호텔 성희롱 사건의 판결을 내렸던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피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던 가해 남성과 손해배상액을 늘려달라는 피해 여직원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기 때문이다. 동국대 법과대학 강동욱 교수는 2012년 「직장내 성희롱에 대한 결정 등의 성격 및 성희롱의 적용 범위」라는 논문을 통해 '개인에 대한 인격권의 침해 방지를 중점에 두고 있는 형사법상의 성 관련 범죄의 경우와 달리 성희롱이 성립 요건으로는 '지위를 이용하거나' 또는 '업무와 관련한' 개념으로 고용환경의 문제로 인식하고 종사자들의 근무여건 개선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적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를 성희롱으로 인정할지 그 범주가 모호하며 불명확하기 때문에, 해당 사건의 최종 판결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