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정식 첫 선거의 기억은 아마도 초등학교, 혹은 국민학교 시절일 것이다. 우리는 학급회의시간에 한 학기의 반장을 뽑는 선거를 하곤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초,중,고 시절 중 초등학교 반장선거의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것 같다. 아이를 학교에 갓 보낸 부모들에게는 우리 아이가 ‘반장’이라고 하는 것만큼 자랑스러운 것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장선거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공약부터 그렇다. 선거 전에 한명씩 교탁 앞에 서서 하는 한 마디는 이런 것들이었다. 피자냐, 치킨이냐, 햄버거냐. 혹은 어린이날에 무슨 선물을 할 것인가. 공약을 듣는 반 아이들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이러한 공약과 관계없이 반장을 뽑았더라도, 다른 반은 무엇을 먹었는지는 금새 소문이 났고, 토요일 끝날 무렵에 다른 반 아이들이 피자파티를 하기라도 하면 일찍 집에 가게 된 반의 철없는 아이들은 자신의 반장 부반장에게 직접적으로 혹은 은연중에 압력을 넣곤 했다. 반장 되었다고 쏴도 안 쏴도 그만이었겠지만,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반장은 어린 마음에 다른 반에 음식이 배달되는 토요일이 불안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공약을 하는 후보들이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학생이나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은 잘 살기 때문에 더 크게 쏠 것으로 예상되는 후보를 밀었다. 어떤 아파트에 사느냐가 반장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셈이다. 이처럼 돈이 있어야 권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에서 첫 선거를 했다.

학급 임원이 몇 명의 독점이 되자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달마다 반장 부반장을 새로 뽑는 것이었다. 2학년 아래 다른 지역의 기자는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는 걸 보면 일괄적으로 이루어진 전국적인 시도였던 것 같다. 남녀 각각 회장 부회장을 뽑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반장 부반장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달마다 햄버거 파티를 하는 것이었다. 9월에는 급기야 아이들이 장난으로 여론몰이를 하여 정신지체아를 반장으로 만들기도 했었다. 모든 학생이 공평히 임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한턱 씩 쏴야 하는 제도가 되어버렸고, 중우정치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었기에 1년 뒤에는 본래의 체제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았을 때 가장 이상한 부분은 선생님들이 그런 공약들을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꽤 시간이 흘렀을 때는 선생님들이 학급 임원들이 의례로 돌리는 음식을 금지하기도 했지만, 비뚤게 보면 소풍이나 운동회 때 담임선생님들이 모여서 먹던 음식은 언제나 각반 임원들 어머님이 모여서 맞춘 고급 음식이었다. 또한 학급임원의 어머니는 학부모회 가입과 학교 발전기금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학부모회 가입이 반에 몇 명 할당된 담임선생님에게, 학급 임원의 부모님은 아마 좋은 표적이었을 것이다.

중학생이 되자, 돈이 아니라 성적이 감투를 쥐어주었다. 후보는 추천제가 아닌 성적순이었고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5명을 끊어 선거에 강제로 나가게 했다. 나는 그런 활동들이 귀찮아 선거에서 빠지겠다고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내가 이기적이라고 꾸짖으며 출마시켰고, 나는 몰래 날 뽑지 말라는 선거유세를 하다가 걸려 4월 내내 학생부실에 담임선생님과 함께 해야했다. 피 참정권자를 설정하는 과정부터가 비민주적이었던 탓에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경제적인 부담은 덜해졌던 것 같다. 철이 든 학급 친구들이나 행사 중심이 아닌 학교 분위기가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고등학교에서는, 지각비를 비롯한 벌금을 걷어 반 전체가 회식을 하는데 쓰는 등 자치적인 예산을 사용하여 반의 친목을 도모하는 문화가 발전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학교에서는 반에 학기당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화가 굳이 반장/부반장을 동원하지 않도록 만드는 지도 모른다.
 

이러한 바람직한 문화를 뒤로하고, 초등학교에서는 담임선생님의 배달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관행상 혹은 아이의 급우들에게 잘 보이려는 욕심으로 음식 공세를 하는 엄마들 때문에 한턱 쏘기 풍토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초등교육과에 다니는 내 동생은 토요일 수업을 없애거나, 토요일에도 점심 급식을 하고 운동회날은 저녁까지 학교에서 제공하는 등의 예산이 나오는 것이 좋을 것같다고 했다.. 또한 고등학교 일부 학급에서 자치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벌금 제도는 아직 사회적 관습에 익숙하지 않은 초등학생들에게는 잘못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잡힐 수 있고 용돈이 정착되지 않은 어린 나이의 학생들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어린 학생들에게 선거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공약과 인물의 성실도 등을 항목별로 자신이 자기소개를 쓰듯 써서 1주일간 게시판에 붙여놓는 방법이 이야기 되고 있다고 말한다.

유쾌하지만은 않은 나의 첫 선거가 현재 나의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한 끼 더 좋은 식사를 먹기 위해, 그냥 한 번 웃음거리를 만들기 위해, 혹은 무작정 공부를 잘하는, 나와 더 친한 친구를 뽑았을 지도 모르는 12년간의 선거가 현재의 나에게도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닌가 고민해 보고, 초,중,고등학생의 선거 역시 더 좋은 문화로 발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