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민영화 반대로 시작한 철도 파업이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심각한 국면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강력한 공권력 행사다. 경찰은 22일 ‘노동운동의 성지’로 여겨지는 민주노총 사무실에 공권력을 투입했다. 이것은 언론이 ‘민주노총 18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 혹은 ‘MB정권도 하지 않았던 노동운동의 심장부를 짓밟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상징적인 일이었다.

문재인 의원이 박근혜 정부의 초강수에 대해 “대화와 협상이 먼저여야지 공권력이 먼저여서는 안 된다. 공권력 투입은 마지막 수단이어야 한다”고 비판한 것처럼 이번 파업기간 동안 철도 노조와 정부 간엔 이렇다 할 생산적인 대화는 전무했다. 국토부는 철도 노조원들의 주장에 대해 ‘민영화가 아니니 어서 파업을 끝내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입장을 발표한다면서 국토부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완벽히 똑같은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적어도 정말 국민 불편을 우려해서 파업을 빨리 끝내게 만들고 싶었다면 쇼윈도 식으로라도 철도 노조 대표를 만나 노정 대화를 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국토부는 ‘민영화가 아니’라고만 하며 뒤로 빠져있고, 이사회를 열어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의결한 코레일은 ‘우리에게 권한이 없다’며 책임 전가하는 상황에서 철도 노조원들이 무작정 파업을 포기하길 바랐다면 큰 오산이다. 게다가 국민 여론도 녹록치 않다. 정부는 ‘불법 파업’이라는 프레임으로 철도 파업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고자 했지만, 예상치 못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으로 그것마저도 전혀 소용없게 됐다.


에어매트를 설치하고 민주노총 입주건물에 진입을 시도하는 경찰 ⓒ 중앙일보

철도 파업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촛불시위를 하는 모습 ⓒ 뉴시스



박근혜 정부의 막무가내 태도는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조금만 진행 상황을 둘러보고 여론을 파악했다면 이렇게까지 막갈 순 없을 것 같다. 이는 마치 북한이 막무가내로 핵을 만들겠다고 선포하는 모습과 같지 않은가. 이렇게 이해되지 않는 막무가내를 벌일 수 있는 기저엔 이런 인식이 깔려있다. 이렇게 세게 나가야 상대방이 나를 얕잡아보지 않고 나중엔 알아서 기게 된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의 불법 대선 개입의 정황이 하나 둘 실체를 드러내면서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많이 약화됐음을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천주교 사제단은 직접 나서서 ‘박근혜 하야’를 요구했다. 소수의 진보정당이 ‘박근혜 하야’를 외치는 것과 종교계가 그것을 외치는 것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종교계의 하야 외침이 국민에게 미친 영향력은 종북프레임으로도 무마할 수 없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터진 철도파업이다. 약화된 정통성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라도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을 것이다. 또 파업이 길어짐에 따라 국민들이 체감하는 불편함도 커지면 파업의 지지도 상당히 떨어질 것이라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리수를 뒀다. 박근혜 정부는 나가도 너무 나갔다. 생각보다 민영화에 대한 국민의 반발은 크고 이는 파업으로 인한 불편함을 충분히 감수하고도 남을 정도다. 게다가 체포영장이 발부된 지도부를 체포하겠다며 민주노총 사무실에 무리한 공권력을 투입했음에도 정작 지도부는 그곳에 없었고, 경찰은 위법 논란만 일으켰다. 정권 초기부터 계속된 박근혜 정부의 타협 없는 강경책에 대해 국민이 느끼는 피로도도 상당하다. 때로는 물러설 줄도 알아야 국민도 정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텐데, 지금 이 상황은 ‘정부나 국민 중 한 쪽이 죽지 않는 이상 끝나지 않을 게임이구나’라는 인식만 심어주는 꼴이다. 알아서 기는 게 아니라 죽기살기로 저항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로 이제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냐 아니냐는 더 이상 중요치 않게 됐다. 국민이 이렇게 원하지 않는데 민영화든 아니든 굳이 해야 하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철도 노조에 대해 강경하게 나갈수록 국민적 반발은 갈수록 더욱 거세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