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고함20과 자치언론 네트워크 주최로 서강대 한 강의실에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학생위원회의 정나위, 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의 이아혜, 청년좌파의 김대환 씨가 참석한 가운데 운동권 좌담회가 열렸다. 이번 좌담회는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에 대한 운동권의 목소리를 들어보고자 기획되었다. ‘안녕들’ 대자보가 화제로 떠오르기 전까지 대학 안팎의 정치·사회 문제를 이어주던 매개체는 대개 조직적인 운동을 전개하던 운동권, 혹은 이들과 연대한 총학생회였다. 하지만 개인이 모여 만든 ‘안녕들’ 흐름은 운동권이 주도하던 운동의 방식과는 달랐고, 운동권이 하지 못한 학생과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대자보 열풍과 민주노총 총파업으로 이어진 흐름 속에서 운동권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고 운동권의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운동권은 ‘안녕들’ 현상 속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더불어 운동권 내부에서는 운동권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이들이 전망하는 학생운동의 미래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안녕들’, 조직보다는 개인으로 참여

세 단체 모두 ‘안녕들’ 대자보 열풍 속에서 운동권이 무기력하지만은 않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정 씨는 “운동권이 작년 진행한 캠페인이나 서명 운동 등을 통해 철도민영화에 대한 국민 인식이 생겨났다”며 "'안녕들' 대자보 속 기본 메시지는 기존 운동권이 내왔던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이 씨도 “운동권이 자보전, 강연회 등을 통해 일찍이 캠퍼스에서 펼친 민영화 저지 운동에 대한 노력이 '안녕들 하십니까'의 토양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안녕들’과 운동권을 비교·분석한 언론을 언급하며 "기존의 운동 조직이나 방식을 협소화하거나 부정하는 쪽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운동권이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은 일면적 시각이다"며 “운동권 단체는 이번 대자보 열풍을 주도하기도 하고, 동참하는 일부가 되기도 했다”며 대자보 최초 작성자이자 노동당 당원인 주현우 씨를 언급했다.

이 씨가 말했듯이 운동권은 대자보 열풍 안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조직보다 개인으로서 ‘안녕들’ 물결에 뛰어들었다. 이 씨는 이번 현상을 “겉보기에 특정 세력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던 까닭은 개인적인 표현을 앞세우는 방식의 운동이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 씨도 “개인의 자발성을 의식적으로 추구했고, 개인으로 용해되어서만 그런 활동을 했을 때 자발적 개인처럼 보일 수 있다”며 이번 흐름은 자발적 개인이 동력임을 강조했다. 김 씨는 "'안녕들'이 특정 단체가 들어가 조직하지 않은 것뿐이지, 그 안에서 개인들이 하나의 조직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안녕들’ 현상이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기존의 편견을 깨뜨렸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흐름의 지속가능성이나 방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한다. 운동권이 주도권을 잡고 ‘안녕들’을 지속해서 세력화할 생각이 없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정 씨는 "'안녕들'은 현상이나 흐름이기 때문에 하나의 단체가 이를 전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단체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고 대답했다.

왼쪽부터 고함20 박정훈, 청년좌파 김대환,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이아혜,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학생위원회 정나위 ⓒ고함20


결코 가볍지 않은 한국 사회 속 운동권의 존재

90년대 들어 운동권의 이질적이고 급진적인 구호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이 많아졌다. 오늘날에도 운동권 밖 사람들은 운동권에 흔히 ‘좌빨’과 같은 부정적인 낙인을 찍고 있다. 

세 단체는 운동권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보였다. 이 씨는 “무슨 일만 터지면 학교에서 입장을 내고 활동을 벌이니, 쟤네는 나대서 싫다, 좌익이다 등의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발생하면 우리를 찾는다”며 운동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모순적임을 지적했다. 이어서 “존재가치를 드러낸다면 누구도 그 단체의 존재가치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다”며 꾸준한 활동을 통해 단체의 존재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학생 단체들이 범했던 잘못도 있지만, 모두를 ‘운동권’이라고 통칭하는 것도 문제다”라고 했으며 “여론에서 조장된 측면도 많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덧붙여, “장애인 엘리베이터나 소폭이나마 인하된 등록금 등은 요구와 단결된 힘의 성과이다”며 대중에게 함께 나서면 할 수 있다는 경험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김 씨는 우파가 대중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하면서 운동권의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었다며 “우리가 대중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면서, 대중의 의식을 다시 운동권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대중이나 청년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탈이념화나 이념적 색깔을 약화하려는 생각이 없느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모두 웃으며, 이념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김 씨는 “청년좌파의 의제 중 하나인 최저임금이 청년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민중과 만나려면 의미가 전달되도록 이념을 보여줘야 한다. 감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위기일발 운동권의 미래

박근혜 정권의 종북몰이 등 진보세력이 위축되고 분열된 현 상태에서, 운동권의 위기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운동권의 위기 속에서도 급진적인 새내기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청소년과 같은 새로운 주체를 주목하고 있다. 반면, 이 씨는 “진보정당이 분열되고 협소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며 단결된 진보적 제안을 제시할 수 있는 당의 출현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당 간 불신이 깊은 현재 상황에서 신뢰 회복을 우선으로 보고 있다. 김 씨는 “2014년 전망은 어둡다”며 “운동권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했다.

운동권은 좌익이라는 비난을 듣고 내부 갈등, 정부 탄압 등의 위기를 맞으면서도 꾸준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번 운동권 좌담회를 통해 운동권은 자신들에 대한 기존의 편견과 오해를 풀고, 운동권의 또 다른 모습과 고민을 보여주었다. 고함20과 자치언론 네트워크는 대한민국 구성원 그리고 20대 청년 일부로서 운동권이 내는 목소리가 조금 더 비중 있게 사회에서 다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