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마음이나 눈치가 서로 통했을 때 ‘눈이 맞다’라는 관용어를 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데 그 눈이 충혈되어 있으면 어떨까. 안경사와 안과 의사 사이의 영역 다툼과 실정에 맞지 않는 법 때문에 국민들의 소중한 눈은 다치고 있다.

대학생 장혜성 씨(24․여)는 지난 3월, 평소 소프트 렌즈를 착용하다 충혈과 함께 통증을 느껴 안과를 찾았다. 안과에서 결막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의사의 설명을 듣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과 의사는 장 씨가 착용하던 소프트 렌즈가 결막염의 원인이라고 말하면서 렌즈를 어디서 맞췄느냐고 질문했다. 장 씨가 안경원에서 맞췄다고 하자 의사는 원래 안경원에서 렌즈를 조제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경사와 안과 의사 간 영역 다툼, 불씨는 일반인들에게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료기사법’) 제 13조 2항에 따르면 안경사의 업무 범위를 시력보정용 안경의 조제 및 판매업과 콘택트렌즈의 판매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안경사가 안경의 조제는 가능한데 하드렌즈와 소프트 렌즈를 포함한 콘택트렌즈는 조제가 불가능하고 ‘판매’만 가능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렌즈 조제란 시력 검사로 자신의 시력에 맞는 렌즈를 처방받는 것을 의미한다.
 
의료기사법 제 17조의 4항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콘택트렌즈를 환자에게 장착시킬 때는 렌즈의 위치와 상하움직임이 올바른지를 살펴야 하고 여기에는 안과의 전문적인 진료 행위가 요구되며 렌즈의 장착 상태가 바르지 못할 경우 각막 및 결막의 질환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지식이 없는 안경사의 콘택트렌즈 조제를 금하고 그 판매 행위만을 허용하고 있는 것.
 
안경사들은 이에 대해 국민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1993년 안과의사가 안경사의 시력검안이 자신들의 업무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청구한 헌법소원심판에서 대한안경사협회는 “전국의 안과의원수는 501개 소이나, 484개소가 시 단위 지역에 집중돼 있고, 불과 17개소만이 군 단위 지역에 집중돼 있어 모든 안경이나 렌즈의 조제에 안과의사의 처방을 필요로 한다면 날로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고 일반국민의 의식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라고 의견을 밝혔다.
 
문제는 일반인들이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 소프트 렌즈를 착용한다는 대학생 박소정 씨(23․여)는 안과 의사만 렌즈의 조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몰랐다. 어차피 평소에 눈이 나빠서 안경 쓰는데 렌즈 맞출 때도 굳이 먼 안과보다는 가기 편한 학교 안 안경점에서 맞췄다.” 라고 의견을 밝혔다.
 
경제적인 문제도 일반인들이 안과 대신 안경원을 찾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렌즈나 안경을 처방받기 위해 안과를 방문하면 처방전과 별도로 진료비가 발생한다. 안경원에서는 시력 검사를 포함한 진료비가 안경이나 렌즈 가격에 포함되어 있어 추가 부담이 없다.
 

현실에 맞지 않는 법 체계도 혼란 가중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법 조항도 렌즈를 처음 맞추는 일반인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대학생 이미선 씨(24․여)는 “법대로라면 안과에서 시력검사를 하고 안경원에서 렌즈를 맞춰야 한다는 얘긴데 실제로 두 군데를 들르는 것은 불편하다. 안경원에서 두 개를 한 번에 하는 게 더 편하다.” 라며 불편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신촌 새빛 안과 김영진 원장(47․남)은 “법에서 국민의 건강을 위해 안경사의 렌즈 조제는 금지해 놓고 막상 판매는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경사가 렌즈를 조제할 수 없는데 판매가 어떻게 가능하냐. 법이 실정에 맞지 않는 것 같다.” 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안경사들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서울시 종로구 A 안경원을 방문했다. 렌즈 조제는 안과에서만 가능하다고 들었다고 하자 익명을 요구한 안경사 김 모씨는 "누가 그래요?" 라며 안경사도 렌즈를 조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렌즈 수요 증가로 인한 현실에 맞게 법도 바꾸어야
 
그렇다면 국내 렌즈 수요는 어떨까. 렌즈 수요는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식품의약품안전청(청장 이희성)이 2012년 의료기기 허가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의료기기 허가는 3,100건으로 2011년보다 6.9%(201건) 증가했으며, 그중 일회용소프트콘택트렌즈가 두드러지게 급증했다. 특히 일회용소프트콘택트렌즈의 경우 컬러렌즈 등 개인선호도로 인한 다양한 제품의 수요증가에 따라 11년 대비 26.8% 증가했다.
 
이처럼 렌즈 수요는 증가하는 데 비해 렌즈를 공급하기 위한 관문인 안과의 수요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동네 근처에 방문 가능한 병원을 검색해 주는 사이트에서 대표적인 서울의 중심지 중 하나인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를 검색해 보았다. 검색 결과 안과는 한 군데가 나왔다. 그나마 중심지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같은 서울 종로구인데도 부암동, 청운동, 계동, 가회동 같은 주변부 동네는 아예 검색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방의 경우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전국의 안과의원이 시 단위 지역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군 단위 지역에서는 안과를 찾아가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 
 
이 같은 현실에 비추어 볼 때, 현행 의료기사법은 실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법은 사회생활의 필요에 의해 사람들이 만들어 낸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 사람들의 편익이 중요한 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경제적인 문제와 접근성이라는 현실적 요소를 반영하는 쪽으로 법이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