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주제가 어떻게 형식을 통해 표현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소설을 펼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중첩된 이야기의 구조로 한 편의 동화와 같은 모험담을 들려준다.

이야기는 어느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녀가 소설책을 펼치면서 시작한다. 소설 속에서 작가는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 무스타파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스타파가 작가에게 해준 이야기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회상이다.

어느 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단골이자 대부호인 마담 D가 사망하고 유언장에 따라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은 애인이었던 구스타브에게 상속된다. 어머니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드미트리는 그림을 빼앗기 위해 킬러를 고용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찰은 구스타브를 살인 용의자로 추격한다. 구스타브는 당시 로비보이였던 제로 무스타파와 함께 누명을 벗겨줄 마담 D의 집사를 찾아 도망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라는 몇 개의 껍질을 가진 구조는 독특한 효과를 낸다. 구스타브의 이야기에 몰입하다가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인물이 바뀔 때마다 관객은 이야기의 안팎을 오가게 된다. 불쑥불쑥 등장하는 호텔의 주인이 된 무스타파나 노인이 된 작가의 모습으로 관객과 영화 사이의 거리가 변화하며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무스타파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의 세계는 동화 속 세상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분홍색과 빨간색이 화면을 채운다. 캐릭터들은 위기의 상황에서도 태연히 시를 읊고 향수를 뿌리고 무대 위의 배우들처럼 어딘지 과장되고 비현실적이다. 삼중 구조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으로 그려지는 구스타브 세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살인과 전쟁으로 가득 차있다. 하지만 동화 속 이야기 같은 화면과 캐릭터들은 이런 잔혹함을 그저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한다. 현실보다 더 격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세상이지만 비현실적인 연출로 관객들에게는 그저 영화 속 이야기로만 존재한다. 


영화에서 각 이야기 속 주인공의 이름은 영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된다. 바깥쪽에 있는 이야기일수록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이 모든 이야기를 담은 책을 읽고 있는 소녀는 이름조차 나오지도 않고 책의 저자인 소설가는 그저 작가로 등장한다. 반대로 가장 안쪽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로비보이의 이름 무스타파는 호텔 지배인의 이름인 구스타브와 닮아있다. 특히 무스타파의 이름인 제로는 동시에 숫자 0을 의미한다. 구스타브가 무스타파의 면접을 보는 장면을 코믹하게 그리면서 제로라는 이름의 의미를 암시한다.

회상을 마친 무스타파는 로비에 들어가서 작가에게 객실 열쇠를 준다. 로비에는 ‘사과를 든 소년’ 그림이 걸려있다. 그것도 비뚤어진 채로. 그토록 엄청난 사건을 불러일으킨 문제의 그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무렇게나 걸려있다. 영화의 결말에서 무스타파는 구스타브에 대한 기억 때문에 호텔을 선택했느냐는 젊은 작가의 질문에 “그가 생각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야. 다만 그는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멋지게 살다가 갔지.”라고 대답한다.

마지막에 가서야 무스타파의 이름이 제로라는 사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구스타브의 이야기에 대한 것일 수도 있고 무스타파나 작가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또 삶 자체에 대한, 혹은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감독의 인식일 수도 있다. 결말은 열린 결말을 향한다. 관객은 중첩된 이야기의 형식을 통해서 결국 소설책을 보는 소녀를 바라보는, 가장 바깥의 이야기가 된다. 진실은 허구와 실재의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는 현실까지 이야기에 포함하며 주제를 효과적으로 표현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