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감히 연세대 동문 동문 거리는 놈들...” 이라는 제목의 기사와 그 기사에 관한 담론들을 비판하기 위해 쓰였다. 기사는 정시냐 수시냐, 재수냐 현역이냐, 신촌이냐 원주냐에 따라서 연세대 내에서도 학생들을 알게 모르게 차별하고 배제하는 ‘카스트 제도’가 정교해지고 있다는 분석을 적고 있다. 기사의 작성자는 대학언론네트워크와의 협업에 기반해 최근 한겨레21이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연세대학교 자치언론인 연세통의 학생기자들이 쓴 것이어서 더 큰 현장감 혹은 신뢰감을 주고 있다. 

(원문: http://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4939.html?_fr=mt1)


한겨레 홈페이지 7월 1일자 메인화면 캡쳐.


최근 소위 명문대학 내에서의 비뚤어진 차별이 여러 차례 논란이 된 바 있다. 서울대학교 학생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서 비서울대 출신 대학원생들의 출입이 불가능한 게시판을 신설하려 했던 것이 논란이 되었던 것도, 또 사회학자인 오찬호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에서 포착했던 것도 ‘연세대 카스트 논란’과 비슷한 맥락에 있었다. 이 글은 이 모든 논란들을 싸잡아서 함께 논의하고자 한다. 일단 필자가 연세대학교의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밝혀 둔다. (불과 2년 전까지 연세대에 재학했으며, 현재도 같은 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 해서, 이 글에서 필자가 특별히 연세대를 변호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연세대는 백양로 공사나 송도캠퍼스 등과 관련해서 재단의 밀어붙이기식 불통이 계속되는 등 문제가 많은 사학재단 중의 하나다.)


첫째, 카스트는 실재하는가?

아니다. 연세대에 카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이 소속된 매체인 <연세통>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하마터면 제가 성골인 것도 모르고 졸업할 뻔 했습니다”라며 연세대 재학생이 조롱조의 게시물을 작성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골’은 한겨레21에 게재된 기사에 등장한 표현으로, 해당 기사에 인용된 분류법을 따르면 편입/재수 등을 하지 않은 신촌캠퍼스 정시/수시 합격생만이 가질 수 있는 칭호이다. 


연세통 페이스북 페이지 캡쳐


그러나 이 카스트의 실제가 어떠한지는 앞서 인용한 재학생의 게시물이 잘 보여주고 있다. 연세대 재학생 대다수가 아예 알지도 못했던 명시적인 차별의 존재를 기사가 끄집어내서 과장한 것이다. 기사는 ‘몇 년 전’에 연세대학교 학생커뮤니티 ‘세연넷’에 올라왔던 글 한 개를 굳이 끄집어내어 그것이 연세대 학생들 다수가 그러한 차별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기사에 인용된 글이 올라왔다는 세연넷의 익명게시판은 연세대 내에서 마치 일베와도 같이 악명이 높은 소수의 공간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가 연세대 재학 중에 경험한 바로도 이러한 차별은 실재하지 않는다. 주변에,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이 조모임을 하는 학생들 중에 수많은 원주캠퍼스 학생, 편입생, 지방대의 학점교류생, 장수생 등이 있었지만 기사에서 묘사하고 있는 식의 차별이나 배제가 일어나는 일을 본 경험은 전혀 없었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서울대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타대 출신 대학원생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학부생들의 경우 일단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다. (대학원생에 대해 또 그들 내부의 문화에 대해 학부생들은 기본적으로 별 관심이 없고 정보도 없다.) 상식적으로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누군가가 그러한 이유로 대놓고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을 쉽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당사자들에게 직접 그 문제에 대해 물어보라, 열에 아홉 이상은 질문하는 사람의 불순한 의도를 반박하는 아주 상식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둘째, 차별과 서열화는 최근의 일인가? 이는 20대가 괴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가?

물론 그러한 차별이 없었다는 것은 철저히 필자의 경험에서 나온 매우 주관적인 주장이다. 또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개인들의 내밀한 어떤 곳에 차별과 서열화의 논리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이 익명게시판 같은 곳을 통해 터져 나왔다는 식의 가정을 해 볼 수도 있다.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차별과 서열화의 논리는 최근에 갑자기 생겨난 것인가? 이는 20대가 괴물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인가? 아니다. 이러한 차별과 서열화의 논리는 한국사회에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존재했던 것이며, 20대에게 특별히 유난한 논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20대는 사회성을 잃은 돌연변이 괴물도 아니고, 경쟁사회의 유일한 피해자도 아니다.)

아주 가까운 과거, 필자가 연세대학교에 들어가던 2008년에 필자가 속한 A학과의 입시 결과는 소위 ‘빵꾸’라는 단어로 정리됐었다. 평년의 커트라인보다 훨씬 낮은 성적의 지원자들이 입시에 성공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해에 중앙도서관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면, 08학번 A학과를 ‘학교 망신’이라거나 하면서 욕하거나 놀리는 낙서들을 수도 없이 찾아볼 수 있었다. 두 해 전에는 다른 B학과의 입시 결과가 ‘빵꾸’였는데, 06학번 B학과에 대한 낙서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그러한 말도 안 되는 비난은 매해 입시 결과와 함께 켜켜이 그 낙서판 속에 쌓여 있었다. (물론 이러한 말도 안 되는 비난 역시 모두의 무의식이 아닌 매우 일부의 무의식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매년 입시철만 되면 ‘배치표’랍시고 전국의 모든 대학과 모든 학과를 서열화하는 표를 만들고, 선생과 부모, 학생들이 모두 공부하는 나라에서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내면에 새겨진 잠재적인 차별과 서열화 논리는 최근의 경우에도 대학 내부, 20대에게서 특별히 두드러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명문대학 나왔다고 학벌로 사람 판단하는 게 일상이던 부장이 최근 이직해 온 같은 학과 출신 직원 때문에 쩔쩔매더니, 알고 보니 그 명문대학에 제 때 입학한 게 아니라 편입으로 들어가 졸업만 한 것이어서 그게 알려져서 망신당하고 따돌림 당했다더라.’ 이런 얘기는 직장인 386세대들이 하나쯤은 알고 있을 법한 흔한 일화다. 심지어 사회 세계에서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나왔느냐, 서울 캠퍼스냐 지방 캠퍼스냐, 편입이냐 아니냐 하는 이런 요소들은 은근한 차별이기나 하면 다행이지 취업과 승진과 이직의 모든 기회를 결정짓는 잣대로 작용하는 게 현실이다.


셋째, 그렇다면 이런 기사는 도대체 왜 생산되는가?

나도 그게 참 궁금하다. 왜 실재하지도 않는 카스트 제도 같은 것을 파헤쳐 내서, 차별과 서열화의 원리가 사회 운영의 원리인 현실은 지적하지도 않은 채 20대, 대학생만 문제인 것처럼 욕하게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났는지 말이다. 20대 언론에서 글을 쓰다 보면, 그냥 20대나 대학생이 만만할 뿐인가? 아니면 한겨레 같은 나름 ‘진보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언론에서도 20대는 장사하기 위해 팔아먹어야 할 재료 취급밖에 못 받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더불어 이 기사를 직접 처음 작성한 연세통의 학생기자들에게 유감이다.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보았던 자치 언론이었기에 실망감은 더욱 더 크다. 기사 전문을 직접 작성한 것인지, 초고를 한겨레에서 윤색한 것인지는 추후에 기자 본인들의 해명이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기자들이 할 일이지, 익명게시판의 글 하나를 가지고 ‘사람들은 이런 못된 생각을 가지고 사는구나 이런 건 비판해 줘야지’ 하면서 대중들을 물어뜯으며 도덕적 우월감이나 느끼는 것이 기자가 할 일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