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the jungle _ 현대미술(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유병서 - 아트스타 코리아 방송화면 캡쳐


작품 1. 전시장 바닥에 꿈틀대는 벌레들이 마구 돌아다닌다. 밀웜들은 자신의 예술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무명작가들을 상징한다. 뱀, 단상, 두 개의 초와 같이 무언가 경외감을 일으키는 오브제들은 무명작가들이 범접할 수 없는 초-유명작가들의 비유다. 바닥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밀웜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햄스터는, 무명작가들을 위협하는 예술계의 온갖 ‘자율성의 위협물’들이다. 


미술 만다라 / 신제현 - 아트스타 코리아 방송화면 캡쳐


작품 2. 바닥엔 사탕가루를 부셔 쓴 글씨들이 배열되어 있다. 그 글씨들은 예술가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전시공간들의 이름을 가리키고 있다. 수조 안에 있는 작가 자신은 그 안에서 자신을 알리는 작업을 수행한다. 작가가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수조 안의 물이 흘러넘치게 되고 사탕가루로 쓰인 전시공간의 이름들은 물에 녹아 버린다. 작가는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모래 만다라’의 형식을 빌려 미술계와 그 안의 작가 자신을 수행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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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아트 서바이벌’로 관심을 모았던 스토리온 채널의 <아트스타 코리아>가 신제현 작가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프로그램의 시청률과 화제성과는 별개로, 만약 이 프로그램이 기획된 목적 중의 일부분에 ‘예술의 대중화’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예술, 특히 현대미술의 난해함 탓에 그것과의 거리감을 느꼈던 수용자들도 TV 프로그램이라는 친숙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예술에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특히 이 프로그램의 강점은 작가들의 작품 제작 과정, 그 이후의 비평 과정과 심사 과정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것인데, 이를 통해서 시청자들은 예술이 어떤 고민들의 부딪힘 속에서 생산되는 것인지를 알게 되고 예술 감상의 폭이나 방법을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진행될 파이널 전시에 진출할 TOP3를 가리기 위한 열 번째 미션은 이 프로그램이 줄 수 있는 예술 경험의 재미가 극대화된 에피소드였다. 특히 아직 무언가가 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수많은 ‘무명’들에게는 더욱 큰 예술적 체험이나 울림을 줄 수 있었던 한 회였다. ‘현대 미술계를 비판하는 작품을 하라’는 미션에 대한 도전자들의 답에는 미술계를 비판해야 하지만 미술계를 갈망하고, 동시에 미술계에서 아직은 주변화 되어 있는 존재로서의 도전자(작가) 자신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미술계 청년’들이 만들어낸 작품과 그 작품을 만드는 수행 과정은 언론계, 영화계, 학계, 정치계, 시민사회계, 경제계 등등 수많은 위치에서 작가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는 ‘무명의 청년들’에게 큰 공감을 얻을만한 것이었다.



(좌측상단) grouping / 이현준 (좌측하단) identity / 홍성용 (우측)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계속된다: double frames / 구혜영 - 아트스타 코리아 방송화면 캡쳐.



유병서(작품 1)와 신제현(작품 2)의 작업은 특히 도발적이다. 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 중의 한 마리에 비유되는 무명작가, 전시공간을 갈망하지만 수조 안에서 발버둥만 칠 뿐 그 갈망하는 곳에는 닿을 수 없는 무명작가의 모습은 ‘무명’으로서의 작가 자신에 대한 통찰이면서 동시에 무명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렇게 생겨먹은’ 미술계에 비판의 칼날을 겨눈다. 이현준의 작업도 비슷하다. 학연, 지연 또는 혈연 등으로 맺어진 미술계 내의 집단의 외부에 있었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계를 비판한다. 구혜영과 홍성용의 작업은 다른 의미로 날카롭다. 구혜영은 큐레이터와 작가의 관계가 역전된 미술계의 현실을, 홍성용은 외국(특히 서구)의 현대미술을 그대로 베껴 수용하고 작업하는 미술계의 분위기를 꼬집었다.

도전자들의 예술가로서의 정신이 반영된 작품들 자체도 재밌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강렬한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순간은 심사의 순간이다. 미술계를 당돌하게 자신들만의 언어로 비판해내던 도전자들은 심사위원들의 긍정적인 비평, 찬사를 들으면서 감출 수 없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주로 어린 신참자인 무명에게 전시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이나, 초-유명작가들의 존재가 무명작가들을 비존재의 위치에 놓는 상황들을 비판하던 도전자들은 결국 이름 있는 심사위원들의 심사 과정과 승인을 통해서만 무명의 자리에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다. 심사위원 홍경한은 신제현의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현실에 아파하지만, 그의 다음 행동은 미술계라는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아니라 신제현에 대한 찬사를 통해 그를 미술계의 내부자로 승인하는 차원에서 그친다.


도전자 신제현의 작품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심사위원 홍경한(좌), 홍경한의 칭찬에 미소를 감출 수 없는 도전자 신제현(우) - 아트스타 코리아 방송화면 캡쳐.


어쩌면 오디션, 서바이벌 형식을 취한 이 프로그램 전체가 알게 모르게 의미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어떤 공간에서 이름을 얻기 위해 투쟁하는 무명들은 어쨌든 결국 그 공간의 구조 자체에 복속당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 그들이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이미 이름 있는 누군가가 정해 놓은 정당한 구조를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정당한 승인을 받는 방법뿐이라는 것, 이미 만들어진 이 구조는 무명들이 쉽게 부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심지어 미술계처럼 내부의 폐쇄성이 강한 어떤 세계일수록 변화는 어렵고 구조는 무명에게 한없이 불리할 뿐이라는 것 말이다. (아트스타 코리아가 예술의 대중화를 이야기하며 예술을 시청자들이 향유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무엇이 좋은 예술이고 누가 아트스타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슈퍼스타K가 하는 그 방식처럼) 대중에게 주지 않고 전문가라고 불리는 심사위원들에게 준 것은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