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방학의 문이 열렸다. “방학만 해 봐! 누구보다 멋지고 알차게 살아주겠어!”라던 그대들의 다짐은 어떤가? 공부, 연애, 여행, 공모전 등 원대한 계획들이 방학 시작과 함께 이불속으로 직행하고 있지는 않나? 자, 그렇다면 차라리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영화 한 편 보자. 영화 속에서 내가 살지 못 한, 미처 생각 못 한 다른 청춘들의 모습을 보자. 여기 오늘밤 무엇을 할지 몰라 갈팡질팡 하는 그대들을 위한 청춘 영화가 있다.

 

‘EASRY RIDER(이하 이지라이더)’는 데니스 호퍼의 1969년 작품이다. 이 영화가 단순히 영화 이상으로 칭송받는 이유는 청춘의 방황과 혼란을 담은 본격 청춘영화이자 로드무비의 전형이요, 무엇보다 미국 영화 최초의 독립영화기 때문이다. 또한 감독이자 주연으로 출연한 데니스 호퍼, 피터 폰다, 그리고 잭 니콜슨의 풋풋한 시절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웨트와 빌리라는 인물은 가진 건 오토바이밖에 없는 청년들이다. 둘은 별 다른 계획도 목표도 없이 무턱대고 미대륙을 횡단하기로 한다. 그리고 여행 동안 히치 하이커, 히피, 남부의 백인 노동자, 매춘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인 만남은 잭 니콜슨이 열연한 변호사 조지다. 조지는 두 청년의 자유분방함이 좋아 여행에 동참한다. 그러나 무전취식중에 조지는 습격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웨트와 빌리는 조지의 지갑을 빼 여행을 다시 하는데 둘의 여행은 갈수록 방향을 잃는다. 심지어 둘은 마약과 매춘에 취하고 여행은 점차 혼돈으로 얼룩진다.

 

 

‘이지라이더’는 청년주도의 ‘저항문화(Counter Culture)’라고 불리던 1960년대 미국 문화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다. 일단 이 영화는 미국 최초의 독립영화다. 자본의 흐름과 기존의 헐리우드 문법을 탈피하여 ‘이지라이더’는 주류에 신명나게 저항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가 다루는 인물들은 특별하다. 남부에서 일하는 백인 노동자, 매춘부, 마약 달러, 히피 등 ‘이지라이더’의 등장인물들은 당시 베트남전, 흑인인권운동 등 혼란과 역설로 가득 찬 미국 시대상을 상징적으로 잘 대변한다. 그리고 이 혼란의 중심에는 두 청춘 웨트와 빌리가 있다.

두 주인공은 이 혼란 속에서 오토바이 하나를 타고 미대륙을 횡단한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서 이들은 달릴까? 영화는 그 답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는다. 이들이 찾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즉, 이 영화는 ‘허무’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주된 정서인 ‘허무’에도 이 영화는 왠지 모를 짜릿함을 준다. 남들에겐 허무하고 무모해보일지라도 어쨌든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여행을 계속한다. 남들의 손가락질이 무서워 걸음걸이도 조심하는 게 요즘의 흔한 모습이기에 멈출 줄 모르는 주인공의 오토바이가 부럽기까지 하다. 여기서 관객들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령 무시당하고 실패하면 어떤가? 내가 좋으면 그만이다. 결과론적인 담론에서 벗어나 행위 그 자체로써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청춘의 특권을 이런 식으로 이 영화는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영화에 다른 나라 얘기라 처음엔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의 주인공들은 왠지 모르게 친숙하다. 무능력에 찌들어 다른 무언가를 갈망하면서도 뜻대로 안 되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고 나쁜 마음까지 먹는 모습들이라 더욱 그렇다. 이 영화는 실패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영화를 보다보면 당장 자리를 벅차고 일어나고 싶다. 일단 나는 ‘저들처럼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가?’ 라는 의구심 때문이고, 둘째는 나는 ‘저들처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방학이라 더욱 무얼 할지 몰라 자괴감에 빠지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이 영화를 보자. 진짜 비극적 실패를 맛보자.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차분히 머리를 비우고 생각해보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모르겠다고? 그렇다면 일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주인공들처럼 오토바이는 없을지라도 일단 동네 앞 골목길이라도 횡단해보자. 쉽게 답이 떠오르진 않겠지만, 그래도 더운 여름 방구석에서 삐질삐질 땀 흘리고 있는 것보단 분명히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