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쪽으로 튀어>


개인정보가 유출되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찾아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주민등록번호일 것이다. 연 초부터 거듭된 개인정보 유출로 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포털사이트부터 시작해서 통신사에서 카드사에 이르기까지 각종 분야에서 그야말로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이로 인해 2014년 최고의 수출품은 주민등록번호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생겨났다. 

카드번호나 휴대폰 번호는 임의적으로 부여되는 숫자이며 얼마든지 새로운 번호로의 발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주민등록번호는 그렇지 않다. 의미 없는 숫자도 아니며 새로운 번호로의 교체가 불가능하다. 주민등록번호는 출생신고를 하는 그 즉시 부여되며 생년월일과 성별 뿐 아니라 태어난 지역과 그리고 몇 번째로 출생 신고를 하였는지까지 표시되는 번호이다. 개인정보 유출에 있어서 주민등록번호의 정보 축적성은 수정 및 교체 불가능성과 함께 문제가 된다. 간단한 포털사이트 가입부터 여권 발급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주민등록번호가 만능 키처럼 사용되고 그를 통해 모든 정보의 열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민등록번호가 유출되면 나의 과거부터 현재, 앞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할 미래까지 고스란히 내어주는 셈이다.

개인정보 유출에 관련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는 그 뿌리를 볼 때 상당한 문제가 있다. 현재 주민등록번호의 근간이 되는 주민 등록제는 과거 군사・방위의 목적으로 도입되었다. 주민등록증 자체는 군사정권 당시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색출하여 반공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제도이다. 결국 주민등록증은 국가에 의한 국민 통제가 목적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가는 성장했고 시대와 사회 분위기가 변했다. 현재의 입장에서 군사 정권 때 도입된 주민등록증을 통해 당사자의 주거 등록, 주민등록번호를 집약시키고 국민을 관리한다는 것은 전체주의 질서를 긍정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주민등록번호의 광범위한 사용과 정보 집약성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의 기원과 그 안에 내포된 전체주의의 성격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한다. 범죄 수사의 효율성과 같은 국가 안보와 사회 방위를 이유로 들며 주민 등록제를 옹호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의 제도이고 본인인증이라는 명목 하에서 그저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불변하는 열세자리 숫자들이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집약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 뿐 아니라 지문 날인까지 포함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를 강요당하고 그것이 없으면 내가 ‘나’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현재의 주민등록제 자체가 갖는 부당함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못한다는 소리다.


ⓒ 다큐멘터리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실제로 지난 2001년 영화인 이마리오씨는 주민등록증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날인된 열 손가락 의 지문 삭제와 반환 요청에 대한 거부를 취소하는 소송을 걸었다. 그는 주민등록증 없이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없고 본인 인증도 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또한 주민등록증을 위해 필요한 강제 지문 날인과 고유번호에 수많은 정보가 집약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국가의 보이지 않는 통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리오씨가 소송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에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행정관들은 주민등록증 자체가 국가의 제도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반응했다. 결국, 2002년 이마리오씨의 소송은 각하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에 대해 부당함을 주장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출생과 동시에 고유번호를 부여받고 만 17세가 되면 지문을 찍는다. 여기저기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당하고 실시간으로 ‘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축적 중이다.  

이제는 개인정보 유출을 넘어서 열세자리 주민등록번호가 우리에게 불안감을 가져다주는 진짜 이유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이다. 문제는 단순한 유출에 있지 않다. 나의 정보가 집약된 열세자리 숫자가 유출되는 그 순간 나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국가만이 아닌 사사로운 개인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다. 결국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의 근원은 단순한 유출 문제가 아닌 주민등록번호에 내포되어 있는 전체주의 특성에 있게 된다.

우리는 개인을 식별하는 번호가 모든 삶이 기록되고 수정이 불가한 고유번호여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기본적인 인권보다 행정상의 편의를 앞세운 채 강요되는 지문 날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개인에게 당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보이지 않는 통제와 감시가 국가라는 이유로 허락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