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그룹 4minute의 멤버 현아가 위와 같은 옆이 트인 티셔츠를 입고나왔다. 이 차림을 본 사람들은 현아를 크게 비난했다. 내가 자주 방문하는 여초카페에서는 댓글로 어떻게 저런 옷을 입을 수가 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아가 미성년자라는 사실도 한 몫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해변에서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비키니로 중요 부위를 모두 가리고, 위에는 티셔츠에 바지까지 입은 의상이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속옷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속옷 좀 보이면 안돼?

외출 시 브래지어 착용률이 100%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브래지어를 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도 없다. 바지 위에 팬티가 보이는 패션도 이미 예전에 지나간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브래지어 때문에 이렇게 피곤하게 살아야 하나? 남의 시선을 이렇게나 의식하고 평범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는지 감시하는 시선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은 남들의 시선 때문에 옷 입기의 규범에 시달리고, 자신도 남들을 옭아맨다.

현아와 비슷한 패션을 작년 영드 <스킨스>에서 보았었다. 에피역을 맡은 '카야 스코델라리오'분이 입었던 옷은 더 과감했다. 위의 왼쪽 사진의 옷인데 저 옷에 바지도 입지 않아 팬티까지 보일 수 있는 코디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아에게는 무자비했던 같은 게시판에서 '카야 코스텔라리오'는 패션과 외모로 매우 칭찬받는 대상이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역시 미성년자이고. 이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속옷이 보이는 옷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나라 사람에겐 덜 관대할 뿐.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은 우리나라의 이런 분위기에 진절머리를 친다. 유학 갔을 때 아침에 세수만 한 맨 얼굴로 속옷에 민소매 하나 입고 끈이 흘러 내려도, 옷과 신발이 어울리지 않아도 쳐다보는 사람 하나 없던 그 시절이 그립다고들 한다. 그냥 한국에서도 그렇게 살라고 하니 친구들이 물정 모르는 사람 쳐다보듯 이야기 한다. “싸 보인다는 말 바가지로 들을 일 있니?”

‘속옷의 노출’과 ‘싸 보인다’라는 기표와 기의의 연결도 잘못되었지만, 여성 편의의 부분을 도덕의 범주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이 문제다. 민소매라도 입으려면 레이스 끈을 불편한 투명 끈이나 패션 끈으로 바꾸어 주어야 하고. 노브라는 절대로 안 되고, 흰색 셔츠에 검정 브라는 금물이다. 치마 안에 속바지는 기본이고, 겨울에 맨다리는 금물이다. 패션의 미추를 떠나서 브라 끈 좀 흘러내린 것 가지고 다수에게 도덕적 판단을 받아야 하는 우리 사회는 분명 문제가 있다.

누군가 문화상대주의를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패션을 포함한 의식주가 거의 서구화 되었고, 서구의 패션문화를 여러 문화를 통해 접하면서도 그것을 직접 마주치는 것만은 못 참겠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걸 꺼린다. 성 문화가 다른 나라보다 아주 보수적인 것도 아닌데, 드라마에는 아직도 19금 표현은 등장할 줄을 모르고, 여성들은 끈 하나 때문에 평생 신경을 쓰며 살아간다.
 


물론 작년부터 거센 시스루(See-through)패션에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4년에만 해도 드라마 <풀 하우스>에서 한은정씨가 란제리 룩을 입어 큰 비판을 받았던 걸 보면, 과감한 시스루 룩을 입어도 크게 비판받지 않는 2010년은 사고방식이 더욱 개방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인이 입는 시스루 룩은 여성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고, 시스루를 위해 나온 옷이 아니면, 속옷을 숨기기 위해 여전히 애를 쓴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노브라 운동에는 훨씬 더디다. 심지어 잘 때도 브래지어를 하는 사람들이 놀랄 만큼 많은 것이 우리나라다. 우리나라의 브래지어 착용률은 98%, 잘 때도 착용하는 비율은 66%에서 80%나 된다고 한다. 하지만 브래지어를 착용할 경우 유방암 발병률이 125배나 높아지고 수족냉증이 심화된다. 담배 흡연자의 경우 폐암 발병률이 10배~20배 높아지는 것을 본다면 놀라운 수치이다. 건강과의 이러한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노브라는 쉬운 여성의 대명사다. 여성들은 코르셋에서 해방되었지만 브래지어에서는 아직도 해방되지 못했다.

여성의 지위가 쉽게 좋아지지 않은 것 처럼, 패션에서의 여성의 진보도 먼 일인가 보다.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옷을 입을 수 있는 인식이 오기 기다리기보다, 여성들이 먼저 하나씩 규칙을 깨보았으면 좋겠다. 처음은 어려워도 작은 규범을 한번 깨면, 두 번은 쉬울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다른 여자들의 옷 입는 모습을 보고 도덕적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이렇게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시선에서 조금 자유롭게 옷을 입게 되면 사회도 그것을 익숙해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