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악플을 기대한다.

 

지난달, 한 아이돌이 sns에 올린 사진이 화제를 모았다. 방탄소년단 멤버 진이 숙소에서 요리를 하며 찍은 사진이었다. 공식 블로그에 멤버가 직접 올린 해당 사진이 논란이 된 건 다름 아닌 ‘콘돔’ 때문이었다. 사진 속에서 육안으로 바로 확인하기는 힘들지만, 한 네티즌이 사진을 확대하여 콘돔으로 추정되는 제품을 포착했다. 주황색 포장지로 감싸진 콘돔에는 ‘King Size’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방탄소년단 블로그


순식간에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 아이돌 숙소에서 콘돔 발견”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고, 인터넷 뉴스로 기사화되며 논란이 확산되었다. 사진에 나온 콘돔의 제품 사진까지 친절하게 첨부된 글들에 달린 네티즌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이돌 숙소에서 콘돔이 나오다니!” 인터넷 기사들도 ‘충격’, ‘이럴 수가’, ‘세상에’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어떻게 ‘아이돌’ 숙소에서 그런 물건이 발견될 수 있느냐는 어조를 담아냈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측에서 콘돔이 맞고, 팬이 선물한 것이라고 발 빠르게 해명함으로써 ‘아이돌 콘돔 사건’은 금세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웃어넘기기에는 마음 한구석의 찝찝함이 남는다.


원인은 사람들의 반응에 있다. 아이돌에게 콘돔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시선. 콘돔의 주인(?)으로 오해받은 방탄소년단 진은 잠깐이지만 수많은 네티즌의 비판을 받았으며, 심지어 성적인 희롱이 섞인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제품이 킹사이즈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수위가 지나친 댓글들도 종종 눈에 띠었다. 설령 그 콘돔이 정말 해당 멤버의 소지품이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그를 비난하고 조롱할 권리가 있을까.

 

ⓒ 네이버 뉴스캡쳐

ⓒ 네이버 뉴스 캡쳐

섹스는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영역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성에 대한 이중 잣대가 존재한다. 대중들은 이제 우리도 개방적으로 성에 대해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며, 방송에서 떠드는 ‘낮져밤이’, ‘낮이밤져’ 따위의 말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연예인 개인의 성생활, 특히 아이돌 가수의 성생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고 이를 하나의 상품으로 이용하는 건 용인할 수 있지만, 실제로 섹스를 하는 건 실망이라니. TV 속에 존재하는 아이돌의 환상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말로 들린다.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간다만 이성적으로는 전혀 논리가 없다.

‘공인이기 때문에’라는 말도 소용없기는 매한가지다. 대중에게 보여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을 대중이 평가하는 게 당연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돌은 특히나 10대의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도박을 안 하고 폭언이나 폭행을 하지 않고 음주운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성생활을 조심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성은 나쁜 것도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미혼남녀가 성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실망’이라며 비난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게 얼마나 불합리하고 폭력적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성은 개인의 욕구와 관련된 문제이며 스스로의 자기 결정권에 근거한 자유이다. 그러나 아이돌들은 그러한 자유를 너무 쉽게 박탈당하는 듯하다. 남자와 함께 침대에 누워 있는 사진은 순수한 여동생(아이돌)의 이미지를 타락시키는가. 콘돔을 들고 다니는 20대 남자(아이돌)의 모습은 충격적인가. 언제쯤 우리 사회는 아이돌의 자연스러운 성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