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교육개혁안에 따라 학부제가 권장됨에 따라 대학 학부제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교육부는 학과제가 갖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학생들의 자율적인 전공 선택과 학과간의 벽을 넘어 다중 전공을 이룬다는 원대한 목표를 제시했었다. 현재 학부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대부분 대학은 신입생들을 학부에 소속시켜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듣게 하고, 1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학과를 선택하는 식으로 학부제를 운영하고 있다.


교육부는 학부제 도입이 학과제가 지닌 여러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주장 했지만 학부제는 또 다른 문제들을 낳았다. 먼저 학과제에 비해 전공에 대한 공부 자체가 미흡해졌다. 전공이 없는 1학년 시절에 교양 위주로 수업을 들어야 하는 학부생 때문에 기초 과목 수는 늘고 전공 분야의 이수 학점과 교과목은 축소되어 결과적으로 전공교육은 부실해지게 되었다.


학부제 학생들이 학과제의 학생들보다 전공 학과에 소속감을 갖지 못하는 것도 큰 문제이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학부제로 입학한 신입생들은 임시로 소속을 배정받으며 1년간의 학교생활 이후 2학년에 전공에 진입하게 된다. 이 본전공에 새로 배정되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소수로 찢어지기 때문에 이후 학생들 간의 상호 친목이 어려워진다. 2011년 고려대학교에 인문학부로 입학한 한 학생은 “1학년 때 임시로 배정받은 소속 반은 전공이 이미 배정된 학생 50%와 전공이 없는 학부생으로 구성되어 있다. 2학년 때 전공을 새로 배정받게 되지만 전공학과에는 이미 1학년 때 활동하던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어울리기가 힘들다”고 밝혔다. 또한 “2년차에 전공을 받은 학생들은 전공이 같은 학우들과의 인맥을 새로 쌓아야 한다는 점도 큰 문제”라고도 답했다. 물론 학교 학생회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알고 새로 전공에 진입한 학생과 기존 학생들의 만남을 위한 자리를 주선하려 노력하지만 참여율은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12년간의 경쟁 뒤에 찾아온 또 다른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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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이제 막 수능이란 경쟁에서 벗어난 학생들이 또다시 전공 선택을 위해 피 튀기는 경쟁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당시 교육부는 전공에 대한 아무 지식 없이 전공에 진입하는 것보다 1년간의 유예기간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학생들의 선택권을 넓혀줄 것이라 주장했다. 하지만 전공 배정을 성적순으로 하게되면서 학생들은 입학부터 학점 경쟁에 뛰어들게 되었고, 학점을 위해 수업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였다. 신입생들이 적성을 찾기 위한 강의를 선택하기보다 학점을 위해 ‘꿀강’만을 찾아 듣는 현 실태는 결코 교육부가 의도한 바가 아닐 것이다. 또한 경쟁에서 밀려나 학점 때문에 원하지 않던 전공에 배정된 학생들은 학부제가 제시했던 자율적인 전공 선택이라는 장점도 얻지 못하고 꾸역꾸역 졸업을 위해 학교를 다니는 현실에 처하게 된다. 전공 배정을 성적순으로 하지 않는 대학의 경우에는 또다른 부작용이 생겼는데, 특정 학과에 학생들이 몰리는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여 학과별 열세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렇듯 학부제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의도한 성과를 얻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학생들의 반발과 불만만을 낳았다. 이에 대학들은 차츰 학부제를 포기하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연세대는 2010년 입시부터 학부제를 폐지하고 학과제로 학생 모집을 실시하였으며, 고려대는 2014년 입시부터 학부제를 부분적으로 폐지하였다. 또한 2015년 입시의 경우 서울대가 13년 만에 사범대의 학부제를 폐지한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학부제를 유지하면 나오는 정부의 지원금, 새로 구조를 바꿀시 생기는 여러 문제점 때문인지 여전히 많은 대학이 학부제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부분의 대학 신입생들은 고등학교 시절의 처절한 경쟁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학교생활을 꿈꾼다. 이 희망이 그들을 밤늦게까지 공부하게 했던 원동력일 것이다. 하지만 학부제 하에서, 초‧중‧고 12년 인고의 세월을 대학에서 느끼는 자유로써 보상받겠다는 이 희망은 산산이 무너지게 된다. 파릇파릇한 자유를 누려야할 대학 신입생이 채워야 할 첫 단추가 학점과 경쟁이라는 사실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학부제를 폐지하면 남게 되는 학과제도 모든 대학생들이 만족하고 꿈꾸는 완벽한 전공배정의 방법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학과제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도입했던 학부제가 본래 의도한 취지는 살리지 못한 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고, 학과제의 주요 단점이라 지적된 ‘편협한 전공 교육’은 복수전공‧부전공 등의 제도를 통해 보완되고 있다. 대학에 첫 발을 딛는 신입생들에게 학과제는 학부제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이들을 위해서라도 학부제의 유지를 재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