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성북무지개행동은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사업을 불용한 성북구에 맞서 지난 20일 성북구청 아트홀에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도를 거쳐 선정된 이번 사업은 김영배 성북구청장이 “기독교 단체 성북교구협의회의 반발로 사업 원안을 서울시에 전달할 수 없다”며 해를 넘기면서 무산됐다. 지난해 논란이 일었던 서울시 ‘서울시민 인권헌장’ 폐기 결정에 이어 또다시 성소수자의 인권이 얼마나 쉽게 침해받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

  

민주적 절차 거친 성소수자 지원사업, 목사님 반대에 무 

 

“보이지 않았다고 해서 세월호 안에 학생들이 없던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 성소수자가 드러나지 못하는 이유는 차별 때문입니다. 선실에서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존재를 걸고 사투를 벌이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부디 '청소년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라는 구명정을 띄워주세요.” 오원식 성북구 교사가 지난 8월 '성북무지개와함께 지원센터' 사업촉구 기자회견에서 청소년 성소수자를 만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이처럼 말했다. 


‘서울시 성소수자 학생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5%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답했을 만큼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청소년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의 정욜 인권운동가는 "이번 사업은 기존 인권단체도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자치구에서 나서서 학교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직접 상담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다"며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성북구 주민들은 ‘주민참여예산제(서울시가 주민의견을 반영해 사업 제안부터 선정까지 직접 참여하는 제도)’를 통해 지난 2013년 4월 청소년 성소수자 상담교사를 확보하고 상담 메뉴얼을 제작·배포하는 '청소년 무지개와 함께 지원센터' 사업안을 발의했다.

 

ⓒ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처음 이 사업을 제안한 안영신 즐거운교육상상 활동가는 그 해 12월까지 서울시의회의 승인을 받아 진행을 앞뒀던 사업이 돌연 무산된 비합리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국민일보에서 ‘성북구에 혈세 5900만원 들여 ‘性소수자 상담소’ 설치 추진…’이라는 기사가 나가면서 성북교구협의회를 비롯한 보수 기독교 세력이 구청장 퇴진 시위를 하겠다며 반발했다. 결국 6·4지방선거를 염려한 김영배 구청장은 사업 집행 시기를 선거 이후에 집행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재선 후에도 ‘성소수자’와 ‘청소년’을 빼고 ‘위기 청소년 실태 조사’로 사업안 변경을 요구하는 등 사업 원안을 진행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동안 성북구는 2012년에는 인권증진 기본조례 제정하고, 2013년에는 성북구 주민인권선언에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선언하는 등 대표적인 ‘인권 도시’로 모범을 보여 왔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인권도시라고 칭송받던 성북구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불용시키는 있어서는 안 될 선례를 남겼다”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앞으로 성소수자 권리 보호에 나서겠는가”며 성북구청의 비민주적인 태도를 비난했다. 성소수자연대 김기민씨는 “사실상 이번 사건은 성소수자가 시민사회에서 차별을 받아도 되는 존재라고 낙인찍은 것"이라며 "성소수자는 2등 시민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 서울신문

 

토론회에서는 기자회견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비판도 뒤따랐다. 한 성북구 초등교사는 지난 2014년 12월 31일 기자회견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다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이번 토론회에서도 그는 그 때 다친 다리에 여전히 깁스 하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피켓도 들지도 어떠한 위협적인 태도도 취하지 않았다. 오직 나는 한 손에 바나나 하나만 들고 구청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경찰들이 유리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는 통에 그대로 손과 발이 끼어버렸다. 살려달라고 여러 번 소리 질렀지만 막무가내로 문을 닫았고 결국 아직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지난 1월 5일에도 성북무지개행동은 부당하게 무산된 사업을 촉구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성북무지개행동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 국가인권위에 제소할 예정이다. 또 관련 법규를 검토해 주민참여예산제도로 결정된 사업을 일방적으로 불용한 성북구에 법적인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