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익숙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창 밖에서 항상 같은 풍경을 마주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시간 속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무엇일까. [설익은 르포]는 당신이 미처 경험하지 못한, 혹은 잊고 지낸 세계를 당신의 눈앞에 끄집어낸다. 낯설거나 익숙하거나, 그것들과 함께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시작해보자.


누구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꿈꾸게 되는 소소한 로망이 있다. 그중 하나가 온전한 ‘나만의 공간’아닐까. 자신의 손끝에서 묻어 나온 인테리어로 가득한 곳. 그 안에 가까운 사람들을 초대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작은 파티를 여는 것.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상상해볼 만한 작은 일탈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그것이 참 요원한 존재임을 인식했다. 부모와 거주공간을 분리한다는 것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임을, 만약 독립하더라도 그 공간에서 작은 파티를 열기에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는 것만이 각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이런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군가 눈치챈 것일까. 신청만 하면 누구나 요리사가 되어서 하루 동안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일요식당’이 문을 열었다. 그 공간에서 일일 요리사가 된 이는 식당 내부를 소소하게 꾸며놓고 지인들을 불러 함께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다. 물론 '식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에 모르는 손님들도 잠시 들러 그들의 작은 파티에 동참하기도 한다. 


일요식당


음식에 담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


지난 2월 15일 종로구 옥인동 108번지에 위치한 동네부엌 일요식당을 찾았다. 그날 일요식당의 요리사는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안수빈 씨였다. 테이블에 앉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던 그녀가 직접 다가와서 인사를 건네 왔다.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고르는 과정은 생략됐다. 일일 요리사가 준비한 단 한 가지의 음식만을 팔기 때문이다. 생략된 시간은 그날 요리사가 준비한 요리인 '닭고기 야채 스튜'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듣는 것으로 채워졌다. 스튜와 함께 할 음료만 사이다로 달라고 주문하고 식당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메뉴판 대신 그날의 메뉴에 대한 소개가 붙어 있었다.


부드러운 닭 안심과 감자, 당근, 양파, 그린빈, 양송이를 아낌없이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 오리지널 레시피의 영양만점 토마토 스튜.

수제 코티지 치즈와 올리브 샐러드. 바게트빵


문득 음식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졌다. 딱 하루만 사서 맛볼 수 있는 토마토 스튜는 어떻게 완성된 것일까. 안수빈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지, 가장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일지, 아니면 어디서 맛있게 먹어본 경험이 있던 건 아닐지, 같은 사소한 물음들이었다.


“이 메뉴가 나오게 된 건 프라하 여행 중에 먹었던 굴라쉬(헝가리식 스튜)에서 시작해요. 그 경험으로 인해 학부시절 학교 앞에서 3500원에 밥과 빵, 수프를 무제한으로 주는 굴라쉬집 단골이 되었어요. 혼자 자주 사먹었죠. 지금도 집에서 자주 만들어 먹고, 가장 자신 있는 메뉴에요.”


 토마토스튜와 그릭샐러드, 바게트빵 


토마토 스튜 한 그릇은 그녀의 일상 그 자체였다. 자취를 하면서 한 솥을 끓여 놓고 조금씩 매일 먹는다는 말에서 분주했을 그녀의 아침이 그려졌다. 위장이 안 좋아 늘 소화 문제로 고생해서 속 편하면서도 따뜻한 한 끼가 절실했다는 웃음에서 밥 대신 수프를 파는 식당을 찾아다녔을 발걸음이 떠올랐다. 수프를 팔기에는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되지 않을까 봐 밥을 곁들인 스튜를 만들기까지의 고민도 들려왔다.


모든 경험들이 귀결되어서 탄생한 스튜 한 그릇은 그에게 단지 한 끼 때울 음식을 파는 것이 아닌, 그녀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나눈다는 의미에게 가까워 보였다. 그만큼 음식 하나하나에는 그녀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깃들어졌다.


“30인분 이상의 양을 준비한 건 처음이라 레시피를 만들어 정량대로 만들었어요. 레시피의 핵심은 소량이라도 샐러리가 들어가야 외국에서 먹은 그 맛을 낼 수 있다는 거예요. 집에서 먹을 땐 간단하게 먹지만 가격을 매기는 만큼 그 값은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릭 샐러드와 바게트 빵을 사이드로 함께 구성했죠. 샐러드에 들어가는 코티지치즈는 우유와 생크림을 끓여서 직접 만들었고, 바게트는 신선한 걸로 준비하기 위해 오늘 아침에 직접 동네 빵집에서 받아왔어요.”


아침에 받아온 바게트빵을 직접 썰고 있는 안수빈 씨(오른쪽) 


빈 공간, 모이는 사람들, 연결되는 네트워크


예쁜 그릇에 담긴 음식이 나왔고, 먹는 동안 손님 한 팀이 더 들어왔다. 안수빈씨의 초대로 온 듯 그들은 친숙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동안의 안부를 묻고는, 그전부터 와있던 안수빈씨의 다른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여느 식당과는 다른 분위기가 묻어 나왔다. 그릇이 비워져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손님이 또 다른 손님과 합석하여 서로를 소개하며, 혼자와도 여러 명이 와도 결국에 함께 대화를 할 수 있는 작은 파티였다. 안수빈씨도 일요식당의 의미를 이 지점에서 찾은 듯했다.


“무엇보다 서로 만나고 소개해주며 인간관계가 거미줄같이 연결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일요식당이 만들어 가는 것은 하나의 문화였다. 소소하게 집에서 해 먹는 음식을 일요식당이라는 공간으로 ‘초대’해서 같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요식당을 기획하는 김선문 씨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는 “식당뿐 아니라 모든 공간에는 휴일이 있잖아요. 이미 있는 공간이 비어있을 때 누군가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일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어요”라며 일요식당을 열게 된 시점을 복기했다.


원래 일요식당이 열리는 공간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영업은 하는 식당이다. 개인적 친분이 있는 식당 대표가 그와 생각을 함께 나누면서 일요식당은 시작되었다. 하루 동안 식당을 운영해서 얻는 수익은 일정 비율로 일일 요리사, 공간을 대여해준 식당, 김선문 씨가 가져간다. 하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얻게 되는 이익은 크지 않다. 일일 요리사가 쓰는 재료비, 인건비 등과 김선문 씨가 쓰는 홍보비를 비롯한 운영비 등이 수익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맛있는 스파게티를 먹으려면 손님들이 맛집을 찾아가지 굳이 여기 오시진 않을 것 같아요. 이런 식당이 운영되고 있는 것에 대한 기대감, 흥미로움으로 찾는 것 아닐까요. 일요식당이 가지는 생각이 참 좋다고 느끼고,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들여다보는, 그분들과 함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일요식당에 놀러온 안수빈 씨의 친구와 딸


그가 구상하는 커뮤니티화 계획은 첫 발을 내디뎠다. 일요식당을 거쳐 간 사람들과 함께 성북동에서 열리는 음식 다문화 축제 ‘누리 마실’을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요식당을 거친 이들은 작가, 디자이너, 영화인 등의 다양한 사람들이다. 접점이 없던 이들이 일요식당을 통해 모이고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일요일 하루, 빈 공간을 일요식당으로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관계망은 확장되고 있었다. 일일 요리사의 지인들이 한 곳에 모여 서로를 알아가며 작은 모임을 가지고, 친구의 음식을 먹으러 온 이들 또는 우연치 않게 식당에 들른 이들이 일일 요리사로 참여하고, 또 한 번의 작은 모임과 일일요리사가 생겨나는 선순환인 것이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들이 모두 모여 하나의 축제를 즐기는 것으로 이어진다.


일요식당에 일일 요리사와 연결고리가 없는 손님으로 방문한 이호정 씨는 “지인이 아닌 손님이라고 신경을 안 쓰는 것도 아니고, 즐겁게 친구들끼리 노는 분위기라 편안하고 좋았다”며 “기회가 된다면 나도 친구들과 함께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열린 마음과 즐길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일일 요리사로서 자격은 충분하다. 다가오는 일요일, 당신의 이야기를 담은 소소한 집 밥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