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7일·20일, 한국여성민우회는 ‘첫사람’ 양성 교육을 준비했다. 서울 광화문 센터포인트빌딩 대강의실에는 40여 명의 시민이 참석했다. 이들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공감하고 지지하는 ‘첫사람’이 될 예정이다. 첫사람은 성폭력 재판에 동행하는 활동을 한다.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를 비롯해 법정 분위기를 점검한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잘못된 통념을 확인하고 변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첫사람'이 확산돼 두사람, 세사람이 되길 기대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 재판과정에서는 2차 피해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2011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스스로 삶을 포기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피해자의 유서에는 판사의 모욕적 언행이 억울하다고 적혀있었다. 민우회가 첫사람 캠페인을 기획하게 된 이유다. 시민들은 이틀 동안 젠더 감수성에 대해 고민했다. 피해자에게 공감하기 위한 준비운동을 마치면, 형법에 관한 강의를 듣는다. 법이 가진 한계와 피해자의 권리를 많이 알수록 첫사람은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강간죄의 한계에 관해 이야기했다. 1993년 이전에는 강간죄의 보호 법익은 ‘정조’였다. 피해자가 법원이 보호할 만한 ‘정조’를 잃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장임다혜 위원은 “한 번이라도 성관계를 한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그 후 모든 성관계를 수락할 것이라는 과도한 가정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간이 침해하는 법익은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 결과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에 관한 죄”로 개정됐지만, 장임위원은 “여전히 남성 편향적 통념이 법원에 있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에 대한 강연이 계속됐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참석자들에게 “피해자”와 “생존자”의 차이를 물어봤다. 이 소장은 피해자라는 용어가 불쌍한 이미지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대신에 치유를 향한 용기를 내는 “생존자”라는 단어를 제시했다. “어떤 성(性)에도 편중되지 않은 용어를 쓰기 위해 노력합시다”는 이 소장의 말이 강의실에 경쾌하게 울렸다. 나아가 그녀는 피해자가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잘 지켜지지 않음을 강조했다. “피의자의 강요로 인한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규정이 없다”며 '한공주'로 영화화된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을 언급했다.
이미경 소장은 성폭력 2차피해를 막기위해서는 담당자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함20
이틀 동안의 강연에 모두 참석한 문서연 씨(41)는 “잠재된 나의 정의로움을 깨우는 자리였어요”라고 소감을 밝혔다. 배수현 씨(44)는 “공부하지 않으면 나도 당할 수 있다. 주변 엄마들에게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여성참석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가운데 남성참석자는 이날만큼은 소수자였다. 대학생 권준희 씨(24)는 “남자로서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권 군은 “이번에는 혼자 왔지만 다음에는 주변 친구들과 같이 가고 싶어요”라며 25일 재판에도 동행할 것을 밝혔다.
3월 20일, 첫사람이 된 이들은 앞으로 통념을 통념이라고 지적할 것이다. 변화를 위한 파문은 일상의 행동에서부터 시작된다. 왜곡된 편견에 대해 이야기를 시도하는 자체가 용기 있는 행동이다. “24년간 현장에 있으면서 많은 변화를 봤고, 앞으로 24년간 어떤 변화가 있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그 변화에 대한 희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미경 소장의 마지막 발언에 청중들은 박수를 쳤다. 첫사람이 된 이들은 그 발언의 깊이에 공감했다. 3월 25일을 시작으로 첫사람의 동행은 시작될 것이다.
다음은 성폭력피해자의 법적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민우회가 마련한 문항들이다. 문항을 토대로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법적 권리가 제대로 행사되었는지 점검한다.
<성폭력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자 권리 체크리스트> 문항
1. 재판 진행 중에 피해자의 인적사항(이름, 거주지, 주민번호 등)이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을 하였나요?
2. 가해자, 그 친족(지인 등)이 피해자, 그 친족(지인 등)에게 직접 접근을 시도하거나 연락을 하지 않을 것에 대한 주의를 주었나요?
3. 피해자, 친족 등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일정 기간 동안 신변안전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였나요?
4. 법원 내 피해자 지원과 관련된 안내문이 비치되어 있었나요?
<피해자가 증인으로 출석하는 경우 추가 체크 항목>
1. 해당사건과 무관하거나 불필요한 질문을 하였나요?
-잘못된 통념에 근거한 부적절한 질문
-피해자가 죄책감을 느끼도록 하는 질문
-과거 다른 사람과의 성적 경험, 품행, 직업 등에 대한 질문 등
2. 가해자의 변호사가 해당사건과 무관하거나 불필요한 반복 질문을 하였을시 담당판사가 적절하게 제지했나요?
3. 재판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격 보호를 위한 노력을 했나요?
-피해자에게 반말을 하였는지 여부
-추궁하거나 위협적인 태도를 보였는지 여부
4. 공판과정에서 피해자(증인)의 진술권이 잘 보장되었다고 생각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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