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걸리면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가고, 치아에 통증이 느껴지면 치과를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듯 신체에 이상 징후가 있을 때 사람들은 진찰과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게 된다. 하지만 특히 여성들이 가기 어려워하는 병원이 있다. 그 병원은 ‘산부인과’다. 


여성들을 위한 병원이지만, 일부 여성들은 가기를 망설이며 병원 방문을 미루고 미루다 정말 ‘어쩔 수 없이’가기도 한다. 왜 산부인과가 이 여성들에게 두려운 병원이 되었을까? 의문을 가지면서도 나는 본인이 그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지만 치료를 위해 산부인과를 가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려움의 원인들을 몸소 알아보기 위해 산부인과로 가는 발걸음을 나섰다


떨리는 산부인과 첫 방문


      

산부인과에 처음 방문하면 초진환자는 설문지를 받게 된다. 생소한 점은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등의 기본적인 인적사항과 함께 다른 병원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질문들이 적혀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혼 유무, 성관계 경험 유무, 마지막 생리일 등과 같은 질문이다. 이와 같은 문항들은 평소에는 개인의 민감한 사생활과 관련 있는 질문이기 때문에 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 생리일을 4개월 전으로 적자 간호사가 갑자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대뜸 “마지막 성관계일이 언제에요?”라고 물었다. 기자는 도리어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온 것이 아니라고 해명해야 했다. “그럼 상관없네요”라며 안도하는 그녀를 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가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게 큰일인가? 그녀의 우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근거 없이 오해받은 느낌이었다.


그 후의 과정은 다른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간호사가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 여부나 특정 약물에 부작용이 있는 특이 체질인지, 기타 병리적인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꼼꼼히 확인했다. 곧 안내를 받아 의사에게 진료를 받으러 들어갔다.


산부인과 진료는 과정을 예측할 수 없어 더욱 막연하게 느껴졌다. 진료실 공간에 놓인 진료의자가 눈에 띄었다. 여성들은 성병이나 염증 등의 진료를 위해 내진대라는 특수 의자에 앉아 검사를 받을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여성들은 속의를 탈의하고 다리를 위로 향한 채 앉아야 한다. 여성들은 이 순간이 굴욕적이라는 의미로 특수 의자를 ‘굴욕 의자’라는 은어로 부르기도 한다. 그 의자에 앉고 싶지 않았다. 제발 ‘간단한 상담’으로 진료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권유했지만 일단 주사를 처방해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의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거리끼지 말고 병원을 찾으라며 유도 주사를 처방해주었다. 진료비와 주사 비용을 합쳐 약 2만원, 다른 병원에 비해 다소 비쌌지만 약 일주일 후 산부인과를 간 것이 옳은 결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여성의 건강을 위해


산부인과 방문은 젊은 여성들이 성과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하고 성 질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남들에게 이와 관련한 얘기를 하고 싶어도 왠지 고민을 털어놓기 꺼려진다. 익명의 힘을 빌려 인터넷 게시판이나 지식IN 등을 이용해보아도 답변의 정확성이 의심되거나, 그 정보가 어느 정도 맞다하여도 그것이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가상의 공간에 기술한 증상들이 과연 나의 상태를 온전히 설명해 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성들은 산부인과에 가서 성과 관련한 편견을 깨우치기도 하고 자신도 알지 못했던 성 질환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기자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생리 불순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던 기자는 의사로부터 생리 불순이 지속된다면 피임약으로 생리 주기를 조절하는 것도 치료 방법 중 하나라는 조언을 받았다. 피임약이 호르몬을 인위로 조절하는 약이기 때문에 막연히 건강에 아주 나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약이 치료용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 의외였다. 

 

여성의 성 질환의 경우, 산부인과 방문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진다. 최근 빈혈 증세가 있어 병원을 찾았던 조현이 씨(21, 가명)는 건강 검진을 받은 후 갑상선에 호르몬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이번 일을 계기로 여자는 정기적으로 산부인과에 방문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평소 산부인과를 두려워하던 그녀지만, 이러한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들에게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들


산부인과에 가야할 필요성을 여성들 스스로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인정하더라도 막상 가기에는 다소 불편하고 두렵다. 산부인과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임신 혹은 출산 외의 문제로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들에 대한 불편한 낙인들을 감수해야 한다.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들의 심리적 위축을 개인의 성향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이유이다. 일부 의료진들은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들의 심리적, 신체적 다양성을 간과하여 여성을 배려하지 못하는 언행을 한다. 심지어 산부인과를 찾는 다른 여성들조차 같은 여성들에게 이러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 한겨레

한국 여성 민우회 이사인 한국방송통신대 백영경 교수의 ‘여성들의 산부인과 이용 경험과 접근성 문제'는 이를 방증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의 여성들이 산부인과 진료에 거부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임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은 여성은 응답자 중 47.2%로 절반 가까이 비중을 차지했지만, 생리 불순이 있거나 질염이나 성병이 의심돼서, 혹은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서 산부인과를 찾는 여성들도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응답 여성들의 61.5%가 산부인과에 가기 전 망설여졌다고 답했으며 그 중 90%의 여성이 이유로 ‘사회적 시선과 진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결혼여부에 떠나 여성들의 건강관리를 위한 검진과 치료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산부인과’라는 명칭이 주는 제한적인 이미지, 즉 ‘임신과 출산을 위한 병원’이라는 이미지는 다른 목적으로 찾는 미혼 혹은 비혼의 여성들에게 산부인과 방문의 커다란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한다. 여성의 성(性)에 대한 사회문화적인 편견은 이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면 성병이나 성 관련 질환들은 성적으로 문란한 여성들에게만 생긴다는 오해와 같은 것들이다. 


이와 같은 편견에 맞서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 스스로 여성의 몸과 건강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을 하는 여성만이 선택과 책임을 가지고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의료서비스와 치료를 제공받을 수 있다. 물론 산부인과의 의료진들도 이 질문에 신중하게 귀 기울여야 한다. 진료의 특수성 때문에 성경험 여부 등 구체적인 정보가 필요하지만 왜 이 정보가 필요한지, 진료과정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특히 여성의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진료행위가 집중되는 산부인과에서는 환자의 의료정보를 보호하고 개인의 특성을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산부인과에 대한 편견 없는 의식이 정착되고 의료문화가 갖춰졌을 때, 산부인과는 비로소 모든 여성들에게 ‘열린’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