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80원. 2015년 대한민국의 최저시급이다. <고함20>은 6월 29일, 내년도 최저시급 결정 일을 앞두고 최저시급에 대한 연재, "마지노선의 최저임금"을 시작한다. 연재는 현행 최저시급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해, 최저시급 인상안을 놓고 오가는 쟁점들을 짚어보고 최저시급에 관한 다양한 시각의 이야기를 다룬다. 5,580원. 2016 대한민국의 '마지노선'으로 충분한가?

 

‘최저임금 1만 원!’이라는 구호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현재의 최저임금으로는 못 살겠다는 호소는 더욱 낯설지 않다. ‘살 만하다’는 말이 귀한 시대다.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1만 원’이라는 수준이 적정한가에 대해선 논쟁이 거세다. ‘고용 영향’과 ‘내수 진작 효과’를 둘러싼 경제학적 대립이 첨예하다. 무엇보다 중소상인들의 생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1만 원을 가운데 두고 찬반 논리는 끝이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결국, 지금, 여기에서,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은 ‘경제 민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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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최저임금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고용에 어떠한 영향을 주며, 내수 진작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연구에서는 부정적이거나 또는 긍정적인 전망이 동시에 제기된다. 실증적 증거‘들’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확증편향(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은 더욱 깊어진다. 최저임금 인상을 경제 진영의 논리에 맡길수록 갈등만 커지는 모양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아무도 미래를 정확하게 재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에서 직관적으로 예측 가능한 영역은 중소상인의 생존 문제이다. 일상을 영위하는 모든 순간에서 우리는 자영업자와 함께 한다.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음식점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다양한 이유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신다. 약국, 옷집, 문방구, 화장품 가게 등 셀 수 없이 많은 상점들을 방문한다. 그 안에는 ‘스스로 벌어 스스로 먹고사는’ 자영업자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의 부모이거나 이웃이며, 동시에 알바 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을 충실하게 따라야만 하는 주체들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그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그들은 누구보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지지할 조건을 가지고 있다. 지난 14년 7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의 발표에 따르면 창업 후 5년 이내에 폐업하는 비율이 57.2%였다. 그중 71.4%는 폐업 이후 생활비 마련이 가장 큰 고난이라고 대답했다. 각자 살길을 찾아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그 수가 너무 많으니 서로 장사가 안 되는 형국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로 소득구조의 격차가 해소되고, 적절한 소득분배를 통해 소비여력이 창출되는 것은, 곧 그들의 매출이 상승함을 의미한다. 폐업에 직면할 정도로 어려운 자영업에 호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그들 중 아무나 붙잡고 “알바 노동자에게 시급 만원 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보면, 열에 여덟은 “우리 굶어 죽으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자영업자에게 ‘최저임금 1만 원을 지급하라’는 것은 ‘너희가 먹고사는 살림을 줄이라’는 소리와 등치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경험하는 생계의 어려움은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된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안에서 자영업자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 명 중 한명이 자영업자다. 그들이 경험하는 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는 대책이 선행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자영업자가 휘청거린다. 그 순간 우리 경제도 위기를 맞이한다. 장기적으로는 ‘소득재분배’, ‘빈곤 완화’, ‘내수 진작’ 효과가 있더라도, 단기적인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떻게 자영업자의 부담을 상쇄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자영업자에게 인상분만큼 지원해주는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저매출 자영업자들에 한해서라도 선택적 지원을 해줘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저매출을 정의하는 기준부터 마련해야 한다. 또는 카드 수수료·세금·전월세비 등의 기타 비용을 낮춰 높아진 인건비와 수평을 맞추는 것도 방편이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논의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으면, 답은 또 아닌 것 같다.

 

지난달,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다. ’토론‘의 장이었지만, 사실 임금 인상 운동의 당사자들만 패널로 참석했다. 첫 발제자가 자신의 한계에 대해 먼저 밝힌다고 하더니 “중소상인에 관한 쟁점은 다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제기에 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다른 패널의 입을 통해 '중소상인들의 생존권 확보'와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모두 당위론에서 그쳤다.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생계 보존을 위한 시장 정책이 필요하다"…

 

당위론에 그쳐서는 최저임금 현실화를 이룰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인상이냐 아니냐’의 차원을 넘어선 논의로 이어져야 한다. 소상공인들이 궁금한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내가 인건비 상승에 따른 부담을 덜어낼 수 있는가이다. 그 답을 알아야지만 그들의 자발적 지지와 참여를 이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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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최저임금 인상과 그에 따른 자영업자들의 대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 공정한 시장 경제를 위한 환경 마련이다. 2012년 대한상의주최 유통산업포럼 자료를 보면 대기업 3사의 대형마트 시장 점유율이 86%, 수퍼 점유율이 85%, 편의점 점유율이 91%, 온라인-홈쇼핑 등 무점포 판매 점유율이 96%였다. 대기업 가맹점들은 인테리어 비용이나 광고홍보비 전가 등 불공정한 갑을 계약으로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불황 속에서 서로 힘을 겨루는 중소상인들은, 시장을 지배한 재벌 유통업체에 함께 시장 밖으로 밀려버렸다.

 

재벌기업이 골목상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 정책이 시행되고, 공정한 시장 거래를 보호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여기서부터 소상공인들이 살아남는다. 그들이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생긴다. 물론 공정한 경제민주화와 최저임금 보장이 선후차가 있는 과제는 아니다. 함께 헤쳐나갈 수도 있는 문제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확장이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한다. 자영업자를 둘러싼 사회안전망을 확대는 기저에 있는 경제민주화 문제를 건드릴 일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궤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연대에 기초한 추진력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저임금 인상과 경제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이 정부를 비롯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이뤄지길 희망한다. 

 

글 / 아호(9208kjh@daum.net)

[마지노선의 최저임금] 기획/ 아호. 감언이설. 종자기. 상습범. 베르다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