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첫머리에 쓰여진 내용이다. 헌법에 쓰여 있듯이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화국이란 주권을 가진 국민이 직접 또는 간접 선거에 의하여 일정한 임기를 가진 국가원수를 뽑는 국가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정치체제와 관련된 전면적인 헌법의 개정이 이루어질 때마다 제1공화국, 제2공화국 등으로 차수를 높여 불러왔다.

제 1공화국
은 입헌 정부인 이승만 정부를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이 이승만 정부가 4.19 혁명으로 실각한 후 윤보선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이 정권을 잡고 대통령 중심제에서 내각 책임제로 헌법을 개정하는데 이를 제 2공화국이라고 한다.

이렇게 성립된 이른바 ‘장면 내각’ 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한 틈을 타서 당시 육군 소장이던 박정희가 5.16 군사 정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는데, 이 때 내각 책임제를 다시 대통령 중심제로 개정한다. 제 3공화국의 시작이다. 제 3공화국에는 통상 두 번의 개헌을 포함 시키는데 앞서 말한 대통령제 개헌과,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1969년의 3선 개헌이 그것이다.

제 4공화국도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 정권 대에 이루어졌다. 4공화국은 유신헌법으로 대표되는데, 이는 대통령에게 유례없이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골자로 이루어졌다. 입법 ·행정 ·사법의 3권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강력한 대통령제라고 할 수 있다. 이로서 총 세 번의 개헌을 통해 제 4공화국의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1/3을 추천하고, 국회해산권 ·긴급조치권 등을 가지며, 임기 6년에 중임할 수 있게 됨으로서 종신집권이 가능해졌다.

 

<유신헌법 공포식, 출처 : 보도 사진 연감>


제 5공화국은 12. 12 사태와 함께 태동했다. 12. 12 사태 이후 최규하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내각이 들어서나 실권자는 사실상 군부를 장악한 전두환이었다. 5. 18 이후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 된 전두환 정부가 완화된 대통령제 - 유신헌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됨. 이 때까지도 여전히 대통령 간선제를 고수- 를 골자로 한 5공화국 헌법을 발표했다.

제 6공화국은 6월 항쟁의 결과물이다. 6월 10일 ‘박종철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민주헌법쟁취 범국민대회’와 함께 시작 된 6월 항쟁은 당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로 하여금 직선제개헌과 평화적 정부이양, 대통령선거법 개정, 김대중의 사면복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선언을 발표하게 하는 성과를 거뒀다. 따라서 1988년 2월 25일 출범한 제 6공화국은 대통령 직선제로 출발하게 되었다.

위와 같이 대한민국은 격변기에 9번의 개헌과 6개의 공화국을 맞이했다. 독재자의 장기 집권을 수월하게 하거나 법을 통치 수단화하기 위한 개헌들이 대부분이었다.


시대의 철학이 담긴 정부 공식 명칭

1987년 제 9차 개헌을 마지막으로 20년이 넘게 더 이상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고무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대신 그 이후 들어선 김영삼 정부부터는 정부의 철학을 담은 한 마디를 정부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문민정부 (文民政府) (대통령 김영삼, 1993년 2월 25일 ~ 1998년 2월 24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기나긴 군인 정권을 끝내고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세운 정부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융실명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개혁안에도 불구하고, 측근 비리와 IMF 사태를 초래한 경제 분야의 실정과 국가적 사고와 참사가 연속되어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름에 걸맞게 1996년 전두환, 노태우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구속 수감 시키고 제 5공화국에 대한 평가를 시도했다.


국민의 정부 (대통령 김대중, 1998년 2월 25일~2003년 2월 24일)

새 정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북 송금 문제 김대중 전 대통령 가족 측근과 관련한 구설수 등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국민 권익 신장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여 정부 (대통령 노무현, 2003년 2월 25 ~ 2008년 2월 24일)

선거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과 선거운동이 대통령 당선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국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정부이며 앞으로 국정 운영에 있어서 국민 참여가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기 내내 정쟁으로 얼룩지고, 그로 인해 주요 정책을 제대로 실행해보지도 못하여 끝내 정권 말기 보수와 진보 야당과 여당 모두로부터 외면 받았다. 그러나 2004년 3월 12일, 민주당이 동조하고 한나라당이 참여한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 이후 벌어진 ‘촛불 집회’에서 다시 한 번 ‘국민의 참여’가 힘을 발휘한 바 있다.


 


<탄핵 당시 사진, 출처 : 한겨레 신문>


이렇듯 제 6공화국의 모든 정부는 정책의 성공과 실패, 순수성을 떠나서 저마다의 철학을 지니고 그에 따른 정치를 하며 그 의지를 국민들에게 관철시켜왔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가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이유이다.

대한민국은 2008년 2월 25일부터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를 맞이했다. 제 6공화국의 다섯 번째인 이 정부는 ‘이명박 정부’라는 이름을 달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이하 인수위) 시절 ‘실용 정부’등을 후보로 올리다가 정부의 이름을 미사여구로 치장한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는 것은 구태의연한데다 ‘실용’이라는 표현이 밋밋하고 의미도 다소 모호하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라 한다. 이렇게 하여 정부 공식 명칭은 ‘이명박 정부’가 되었지만 가끔 언론에 의해 ‘실용 정부’, '섬기는 정부‘ 등 기존에 거론되었던 명칭들이 쓰이곤 한다. 언론이 여론의 반영임을 고려해 봤을 때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를 거치면서 국민이 그만큼 
’정부의 철학‘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이행 여부를 감시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