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은 ‘한나라당 알바 vs 대남적화 사이버요원’이라는 오피니언을 통해 상대의 논리와는 관계없이 상대가 좌파인지 우파인지에 따라 비판 아닌 비난만 하는 온라인 토론장의 세태를 지적한 바 있다. 6.25라는 비극이 아직까지도 남한 사회에서 색깔론이라는 비논리적인 논리를 유효하도록 한다는 것도 한탄스럽지만, 더욱 한스러운 것은 좌파나 우파라는 개념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도 쉽게 그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아직까지 본인의 정치 노선이나 이념을 고민할 나이인 우리 20대들도 상대에 의해 찍힌 낙인으로, 혹은 이념에 대한 그 쉬운 오해들로 벌써부터 기존 사회가 생산한 좌-우파 담론 속에 갇혀버리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기존 사회의 담론이 사실상 매우 사이비적이기 때문이다. 과연 좌파, 우파라는 개념은 어디에서 출발했고, 그것의 현재 모습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고함20과 함께 알아보자.


좌-우 개념의 기원은 프랑스에서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는 좌-우의 개념은 혁명 당시의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혁명기에 1789년 직후 소집된 국민회의에서 의장석에서 보아 오른쪽에 왕권을 수호하는 왕당파가 앉게 되고 군주제를 없애려는 공화파가 왼쪽에 앉은 것에서 좌, 우파의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당시의 좌-우파 개념은 기본적으로 왕당파와 그 반대파를 지칭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즉, 최초의 좌파는 공산주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는 사회주의 사상이 제대로 정립된 시기와도 괴리가 있다.)




이후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며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되었고, 초기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마르크스의 저작 자본론이 유행하면서 서구 사회가 경제적 이념상의 새로운 지형을 갖게 되었다. 바로 한 쪽은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세력이고, 반대쪽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자들이었다.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정당은 우측에, 이에 반대하는 사회당이나 공산당은 좌측에 앉게 되면서, 이 결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광의의 좌-우 개념이 정립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현재 영국 의회에서도 보수당은 우측에 앉고, 노동당은 좌측에 앉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프랑스 혁명 당시 좌파로 불렸던 자유민주주의파가 사회주의, 그리고 노동당의 형성 이후에는 정통 우파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친나치 처형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정치인 역시 정통 우파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좌우 개념

전통적인 좌-우파의 서구적인 개념, 그 기원 등은 정확하게 합의가 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각 사회에 따라 좌우 개념은 매우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2010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의 좌우 지형도는 어떤 기준으로 파악해야 하는 것일까.

지난 3월, ‘한겨레21’ 800호에서 <당신의 정치인을 찾아드립니다>라는 커버스토리를 선보인 바 있다. 폴리티컬 컴퍼스를 이용하여 오피니언 리더 52명의 정치 성향을 좌표에 나타낸 것이다.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이념에 의해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정치인들이 당을 불문하고 모두 ‘좌파’로 분류된 것. 모두 다 우파도 아니고, 한나라당 의원들마저 대부분 ‘자유주의 좌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같은 테스트에서 권위주의 우파로 분류된 것에 비추었을 때 매우 놀라운 일이다.



* 이 글에 언급된 <당신의 정치인은 어디에 있나요?>의 원문은 이 링크를 통해 찾아가실 수 있습니다.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6850.html)


폴리티컬 컴퍼스 테스트의 이러한 결과는 좌-우파 개념이 한국에서는 매우 특수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이 외국의 그것보다 훨씬 좁고 경제에 대한 입장의 스펙트럼 역시 정치인들 간에 매우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그 대립이 매우 격렬하게 나타나는 것은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한 다른 변인의 존재를 보여준다.

짧은 민주주의의 역사, 지역주의, 1997년 이전까지 정권 교체가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과거 등 다양한 요인들이 한국의 정치 지형도를 형성하고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분단의 체험이다. 북한에 대한 입장 차, 일본․미국 등 주변 강국과의 관계들이 전쟁을 경험하며 큰 차이를 빚게 된 것이다.

따라서 서구 전통에 기반하고 있는 좌파-우파, 진보-보수의 개념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시켜 설명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리수’가 아닐 수 없다. 이를테면 친일파 청산에 적극적이지 않은 현재의 한나라당이 정통 보수인지는 의심해 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민주-진보 연합을 이끌고 있고,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있다고 해서 민주당을 정말 ‘좌빨’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마찬가지다.


좌우 스펙트럼은 기본적으로 선형적이다

이상에서 좌-우파 개념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그다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지 않으면서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상대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편 가르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이 온라인,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그 역할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더 ‘우파’적인 한나라당 앞에서 민주당이 ‘좌파’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사실상 좌우 스펙트럼은 비교적인 것이고 선형적인 것이다. 선형적이라는 것의 의미는 A 아니면 B로 딱딱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개별의 정치적 입장들이 모여 정치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게 됨을 일컫는다. 편 가르기를 통한 무분별한 비난으로는 건전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좌우 스펙트럼이 기본적으로 선형적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것이 좌-우파 개념을 아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