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쌤 다이어리는 이번 주부터 3주에 걸쳐 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서 찾을 수 있는 영어교육의 문제점들을 파헤칠 예정입니다. 이번 주는 영어교과서의 부실한 문법 설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어교과서에서 영문법은 왕따?

우리나라 영어교육에서 언제나 가장 강조되어 왔던 것은 바로 Reading(독해)과 Grammar(문법), Vocabulary(어휘)라고 할 수 있습니다. Listening, Speaking, Writing 등의 좀 더 실제 영어 ‘생활’을 위해 필요한 영어 대신 시험을 통해 평가하기에 용이한 영어에 교육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수업시간엔 긴 영어문장의 중간 중간에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를 치고 문법 용어를 적어가며 폭풍 필기를 하고, 쉬는 시간엔 한 줄에 네 칸이 되도록 접은 공책에 빼곡히 적어 둔 단어를 암기하는 게 전형적인 한국의 영어 학습이었죠.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lovetome73/100112616804)


어른이 돼서도 단어는 알고, 문법은 조금 아는데 영어가 들리지도 않고 어디 가서 말 한 마디도 못한다는 우스갯소리는 이제 물리다 못해 지겨울 정도인데요. 이것이 구시대적인 문법 위주의 영어교육의 폐해라는 지적에 따라 영어교과서는 조금 다른 모양으로 진화를 하게 됩니다.

제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던 시절에도 비슷했지만, 지금은 조금 더 문법이 교과서 내에서는 홀대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긴 본문 아래에는 문법에 대한 설명은 하나도 없고, 달랑 뜻도 안 써진 단어 몇 개만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과서 한 단원을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문법에 대한 내용은 길어야 3쪽, 짧으면 1쪽에 그칩니다. 8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중학교 영어교과서는 심지어 본 교과서와 ACTIVITY BOOK으로 분권되기까지 했는데도 말입니다.


자습서 사지 않고, 학원 안 다니고서는 공부할 수 없는 교과서

그나마 2~3쪽 나와 있는 문법 관련 페이지를 들여다보면 더욱 가관입니다. 애초에 Grammar라는 ‘어려운’ 단어가 책에 등장하는 일조차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엔, 'Study Points'와 같은 쉬운 단어로 순화되어 문법과 숙어가 혼재되어 제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Grammar라는 단어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문법적인 용어는 애초에 교과서에서 제외시켜버립니다. 이를 테면 주어를 보충하는 ‘보어’라는 문법 용어 대신, 주어의 상태를 표현하는 말과 같이 돌려서 표현하는 식입니다. 간혹 문법 용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애초에 우리들이 알고 있는 문법 체계와는 매우 거리가 멀고요. 게다가 Study Points란에는 애초에 이게 어떤 문법에 대한 설명인지는 쏙 빠져 있고, 몇 개의 문장만 제시되어서 스스로 어떤 문법을 설명하는지 캐치해내거나, 교사의 설명을 들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미지 출처 : http://happy_95k.blog.me/60113775964)


단원마다 3-4개의 문법적 사항을 매우 띄엄띄엄 배우도록 되어 있는, 그것도 문법 용어는 다 빠지고 문장을 통해서만 배우도록 되어 있는 현재의 영어교과서 만으로는 문법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해당 영어교과서의 자습서를 구매하게 되면, 문법 용어와 함께 책에 나오지 않은 문법까지 쫘르륵 다 설명되어 있네요? 학생들은 자습서까지 세트로 꼭 구매하라는 정부의 유혹이라도 되는 걸까요. 교실 현장의 선생님들도 자습서를 복사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주는 고육지책까지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습서만으로도 문법을 습득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애초에 국어로도 문법을 배워보지 않은 아이들은 문법 하나를 겨우 익히고 나면, 또 시험이 끝나고 오랫동안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문법을 계속 잊어가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to부정사의 명사적 용법은 1단원에서, 형용사적 용법은 5단원에서, 부사적 용법은 3,7,9단원에서 나눠배우도록 한 현재의 체계에서 문법은 어떤 체계 안에서 보이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분절되어 버립니다. 이 상황에서 결국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선택하는 것은 학원, 그리고 과외입니다.

교과서를 그렇게 만들어놨으면 수학능력시험이나 학교 내신에서도 문법이 아예 필요 없게 하던가 말입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신도 없으면서 교과서만 일단 무늬 맞추고 보니 힘들어지는 건 학생, 학부모, 교사 세 교육주체 뿐이네요.


우리가 영문법을 배워야 하는 이유

아니, 아무튼 영어 교육에서 문법의 비중을 줄이고 회화나 듣기의 비중을 늘렸으면 좋은 것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 언어를 배울 때 문법을 배우지 않으면 정확한 언어를 구사할 수 없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간단한 예로 피겨스케이팅 스타 김연아의 경우를 들어보죠. 

오랫동안 캐나다를 비롯한 외국에서 훈련을 하고 세계를 돌며 경기를 뛰었던 그녀의 영어 실력은 늘 화제가 되곤 했었습니다. 미국 방송이 진행하는 인터뷰에 통역 없이 영어로 곧잘 답하는 그녀의 영어 실력은 여왕의 품위를 한 단계 더 격상시켜 주곤 했죠. 그런데 지난 8월, 갑작스럽게 김연아의 영어 실력이 팬들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트위터에 올린 단문의 글 때문인데요. 


'김연아도 못 맞춘 문제'로 유명했던 짤방


바로 그 유명한 “Would you please stop to tell a lie, B?”라는 문장이 화제의 주인공입니다. 그녀의 전 코치인 브라이언 오서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모함하는 말들을 하고 있었던 정황으로 보아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 ‘거짓말을 그만하라’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트위터에 올라온 문장을 해석하면 ‘거짓말을 하기 위해 멈춰줄래요, B?’가 되고 마는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Stop이라는 동사 뒤에 to부정사를 쓰면 ‘~하기 위해 멈추다’라는 뜻이 되고, 동명사를 쓰면 ‘~하던 것을 그만두다’라는 뜻이 된다는 것은 중학교 1,2학년이면 영어교과서를 통해서 충분히 배웠을 내용입니다. 아무리 실생활 속에서 영어를 익혀왔어도, 원어민이 아닌 이상 문법을 통해 보완이 되지 않으면 정말 엉뚱한 영어를 사용하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걸 보여준 사례입니다.


문법은 정확한 영어 구사의 근본, 확실하게 가르쳐야

요즘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참 영어 오랫동안 배웠는데 별 건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영어 교육 열풍 때문에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영어 학원을 다녀와서 그런지 간단한 영어 표현들에는 매우 익숙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어 독해를 정확하게 하느냐, 원어민과 일정 수준에서라도 대화가 되느냐, 영어로 일기를 쓸 줄 아느냐 하면 절대 하나도 그렇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러한 문제가 문법 교육에는 소홀한, 표현 위주로 외우기에만 급급한 영어 교육의 상황에 있다고 봅니다. 물론 문법 용어들이 아이들에게 매우 어렵게 느껴지고, 가르치기에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고요. 문법을 알아야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건 문법이 이미 사고 체계 속에 자연스럽게 침투되어 있는 native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지요.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joonggonara/12510927)


문법을 알아야만 정확한 독해가 되고, 문법을 알아야만 정확하게 말할 수 있고, 문법을 알아야만 정확하게 쓸 수 있습니다. 요즘 중학생들요? 영어시험에서 나름대로 100점을 맞아오는 학생들도 ‘주어 - 동사 - 형용사 - 목적어’ 구조의 간단한 어순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나중에 문법을 잡는다며 어차피 토익 어학원에서 두꺼운 문법책 잡고 고생할 아이들입니다. 차라리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정확하게 교과서를 통해 배우게 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