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일부터 서울 지역 학교에 체벌 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오장풍’ 교사 사건 등 교사에 의한 도에 넘는 폭행 사건들이 불거져 나오는 상황에서 내려진 이 조치는 4가지 유형의 금지 사항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울시 교육청 가이드라인에 따른 4가지 금지 사항은 ‘도구를 이용한 체벌, 신체를 이용한 체벌, 반복적·지속적 신체 고통을 유발하는 기합 형태의 체벌, 학생들끼리 체벌하도록 강요하는 행위’이다.

이 같은 조치는 서울시 교육감으로 ‘학교 내 폭력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운 진보 성향의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될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되어 있었다.

이를 놓고 찬반 논쟁이 한창이다. 이번 조치를 떠나서 교사의 체벌 문제는 교육계의 오래된 화두이기 때문에 이 같은 논쟁은 앞으로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체벌 반대 의견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자유를 구속할 권리가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나아가 체벌이 학생 지도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춘기의 학생들을 비뚫어지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체벌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는 ‘사랑의 매’를 학생 교육의 수단으로 사용했던 국민 정서에서 기인한다. 더구나 교육 여건이 부실한 오늘 날 공교육의 현실에서 체벌은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며 이마저 없다면 학생 선도에 큰 어려움이 생길 거라는 주장이다.


당장 대안도 없이...

이렇게 양측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더 이상의 의견 조율 과정 없이 조치가 시행되자 일선 학교 교사들은 당장 혼란스러워 하는 분위기이다.

서울시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대안 없는 체벌 금지가 교육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손 안 대고 가르치고 싶죠. 하지만 그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인걸요? 요즘 아이들 영악해요. 이번 체벌 금지 조치 경우만 해도 시행되자마자 바로 학생 선도가 어려워 졌어요. 때릴 수 있으면 때려 보라는 거죠.”

갓 부임한 이 교사가 있는 초등학교는 대안으로 상벌점 제도를 시행 중이라고 한다.그러나 상벌점 제도 자체가 낡은 제도이고 큰 효과가 없음이 증명 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상벌점 제도는 여러 학교에서 시범적으로 시행 된지 오래된 제도로서 큰 효과를 보지 못 했다.

혼란스러운 것은 교사를 지망하고 있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지난 학기 교생 실습에서 학생들에게 된통 당하고 온 교육학 전공 대학생 역시 이 같은 조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나친 폭력은 저도 싫어요. 하지만 이번 조치는 단박에 폭력의 정도를 가리지 않고 일괄 금지 시킨데다가 ‘기합’도 주지 못하게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그것은 교육학적으로 그 효과가 입증된 ‘타임아웃’ 같은 방법도 시행하지 못 한다는 말 아닌가요?”

이렇듯 일선 교육 관계자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체벌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은 알지만 현실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들어요

그러던 와중에 체벌 문제와 관련한 서울시 곽노현 교육감의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북유럽 출장 중 체벌 관련 질문을 했다가 현지 교육계 인사들의 “구경한 적도, 당해본 적도 없다”는 답을 듣고 머쓱해 졌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의견에 따르면 이 같은 분위기의 핀란드와 스웨덴은 공교육에 크나큰 문제점이 생겨야 옳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위의 국가들은 내실 있는 공교육 환경으로 이름 높다.

이에 대해 이번 조치에 반대하는 이들은 두 나라의 교육계 환경에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교는 무리라고 말한다. 북 유럽 국가들이 체벌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한 학급당 학생 수나 평가제도 등이 체벌을 가하지 않고도 학생 선도가 가능하게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면 그 나라 아이들은 맞지 않아도 말을 듣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왜 우리 아이들은 맞아야만 말을 듣는다는 것일까?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중에서>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에게 구타가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지각하면 벌을 서고 숙제를 안 해오면 회초리를 맞으며 자란다. 교사는 그것을 당연한 권리이자 아이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맞으면서 자란 부모들도 아이들은 맞으면서 배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아이들이 매 없이 자발적으로 말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일까? 경기도 구리시의 한 고등학생은 선생님이나 할 법한 말을 서슴없이 한다.

"체벌 금지 조치가 시행되고 나니까 당장 수업 환경이 엉망 이예요. 젊은 여자 선생님이 들어오면 말도 안 들어요. 그런 애들 때문에 우리 수업 시간까지 뺏겨야 하나요? 그런 애들한테 체벌 하는 게 왜 나쁜건가요?"

이 학생은 공부를 아주 잘 하는 학생은 아니다. 그렇기에 학교 수업이 더 절실하다. 학원이다 과외다 하는 친구들과 달리 학교 공부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학생들마저 일부는 체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때리지 않으면 말을 안 듣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타가 학습된 아이들은 자기 자신도 맞아야 말을 듣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존엄성이나 자유의지,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 앵무새처럼 “한국 사람은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라는 논리를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기성 세대는 ‘우리는 맞아야 말을 들어요’ 라고 생각하는 아이들 앞에서 일말의 책임감도 느끼지 못 하는가?

‘물론 이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때리고 맞으며 관계를 맺고 싶지는 않다. ‘어쩔 수 없다’ 라는 생각에 이루어진 체벌들인 것이다. 체벌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잘잘못을 떠나서 우리는 변해야 한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갖기 위해서, 개돼지처럼 때려야 말을 듣는다는 비참한 생각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는 변해야 한다.

이번 ‘체벌 금지 조치’에는 아직도 산적한 문제가 많다. 대안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장 중요한 일선 교사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현실의 어려움만을 탓하며 넘어갈 수도 없다. 때려서라도 가르켜야 한다는 교사들의 사명감이 우리 아이들의 존엄성을 살려야 한다는 쪽으로도 발휘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