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계열 학부생으로 입학했을 때만 해도 하고 싶은 전공을 고르면 늘 으뜸을 차지하는 것이 신문방송학과였다. 수시전형에서 냈던 야심찬 자기평가서에도 대학생활의 중심은 신방과였고, 당연히 입학 이후 계획도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어린애 같은 생각이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의대를 가듯,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당연히 신문방송학을 전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빨리 목표를 정한 덕에 오히려 전공에 대한 고민으로 시간을 쓰지 않아 좋았다. 이렇게 굳건했던 신념이 바로 다음 해에 와장창 깨지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채, 철없던 나는 신나게 1학년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새해가 되고 나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과연 내가 신방과에 가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만 고개를 들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저널리즘 쪽 교과과정이 탄탄하지 않다는 말, 우리 학교에서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해 주지 않는다는 말, 요새 누가 기자 되려고 신방과 가냐는 말 등등이 귓가에 맴돌아 어지럽게 했다. 전공 결정하기 전 학교 커뮤니티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정보를 얻을수록, 신방과에 대한 애정과 신뢰는 사그라 들었다.


애초부터 뒤처진 출발점

 2008년 1월 30일은 필자에게 무척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전공포기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첫 발걸음을 뗐기 때문이다. 당일조차도 마음이 갈팡질팡해 숱한 고민을 했지만, 결국 눈을 질끈 감고 경제학과를 신청했다. 혹시 기적이 일어나서 신방과나 정외과로 빠지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전공 확정 발표가 나던 날, 몇몇 절친한 친구들과 같은 과가 되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경제학도가 된 나 자신을 잠시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수많은 경제학과 진입생들과 시작점부터 다른 나를 금세 발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도 사회탐구 과목으로 경제를 택하지 않았고, 남들 다 듣는다는 경제학 입문도 들을 필요 없다며 제처두었다. 그런런데 2학년 1학기 때 당장 경제학원론을 들어야 했다. 물론 지금 와서 생각하면 입문이나 원론이나 모두 맨큐의 경제학을 이용해서 수업하고, 내용의 깊이도 큰 차이는 없지만 막막했다. 오직 나에게만 비주류 학과였을 뿐 학부생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아 미리 공부해 둔 준비된 진입생들도 많았기에 걱정은 더 커졌다. 방학엔 학교 공부 이외의 배움을 얻어야 한다는 알량한 생각으로 1000쪽이 넘는다는 교재를 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3월이 됐다. 경제학 원리를 재미나게 풀어주는 맨큐의 친절함에 감탄하기도 잠시, 무자비하게 나오는 그래프 앞에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대학 가면 수학은 안 해도 된다며 기뻐하던 시절이 꿈처럼 느껴졌다. 
 
 딱히 대외활동을 했던 것도 아니고 개념없이 놀지도 않았던 2학년 시절, 처음으로 '재앙'에 가까운 평점을 받았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시력과 학점을 왜 묶어 얘기하는지 그제야 조금 이해가 되었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경제수학은 아예 시험도 치러 가지 않았다. 이미 F 하나를 안고 가는 상황에서 원론1과 원론2의 성적도 신세계 수준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간발의 차로 학사경고는 모면했다는 것. 좀 웬만큼 안 나왔으면 노력 부족이겠거니 하겠는데 다른 과목들에 비해 전공 성적이 심하게 낮았으니, 확실히 적성에 맞는 쪽은 아니었다. 2학년 2학기까지 곱게 말아먹고 나서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복수전공을 신청해 간신히 학점을 메꾸게 됐다.


애를 쓰고 발버둥쳐봐도 1전공은 경제

 

  전공포기자에게 찾아오는 몇 가지 불행

  능력보다 좋은 학교에 왔다는 부채감을 남몰래 간직하며 살았는데, 경제학도가 돼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전공포기자가 되고 나니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전체평점에까지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전공의 취약함은 마지막 자존심과 자신감까지 앗아가 버렸다. 게다가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므로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것도 역시 공부'라는 다소 원칙론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끔찍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부끄러움 없이 모르는 문제를 마구 묻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몇 번이라도 다시 읽고, 시험 준비 기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등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크게 좋아지지 않았다. 덕분에 학교생활과는 조금씩 거리를 두었었고 바깥으로만 나돌았다. 2학년 때부터 휴학했던 올해 초까지 외부활동에 전념하다시피 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동안 해 보지 못했던 여러 경험을 하며 알게 모르게 성장했고, 두어 차례 상도 받을 만큼 결과도 좋았다. 하지만 '그래봤자 현실도피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 나를 불편하게 했다.

 경제학과 친구들은 많았지만 그들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형편없는 실력을 가졌단 사실에 늘 열패감에 시달렸고, 남들은 다 알게 된다는 경제학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괴로웠다. 달달달 외우지 않아도 명쾌한 논리만 이해하면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어 재미 붙여 공부할 수 있다는 경제학이 왜 나에겐 늘 골칫거리가 되는지 서글퍼졌다. 존경심이 생기는 멋진 교수님들을 만나게 됐을 때에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훌륭한 강의와 공부에 대한 주옥 같은 말씀으로 경제학도들에게 언제나 큰 자부심을 심어주시는 교수님들을 볼 때 이중감정이 교차했다. '교수님 밑에서 배울 수 있는 경제학과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뿌듯함과 '그래도 난 저 무리에 낄 수 없겠지'하는 소외감. 

 어디 가서 함부로 전공 얘기, 학점 얘기를 할 수 없다는 것도 큰 불행이다. 경제학과라고 하면 사람들이 뭔가 '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나와는 무관한 일이니 한숨만 난다. 직업 선택의 폭도 줄어든다. 경제학과로서 진출할 수 있는 금융, 경영, 경제 분야는 아예 접고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경제3종세트 자격증, 경제학회와 금융권 취업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과 사람들을 보면 혼자서 심각한 거리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가장 속상한 건 3년의 시간을 공부하는 데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꾸만 요행을 바라게 되는 못된 마음이 생기는 것도 문제다. '어찌됐건 졸업만 하면 되는 거 아냐?'라는 무책임한 생각이 커져 경제학에는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단정짓고 만다. 그저 학부제 수준의 공부라며 평가절하 받기도 하지만, 여하튼 진심으로 원해서 하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큰 불행이 아닐까.


아직도 전공심화 과목이 5개나 남은 경악스런 현실


 시간이 흘러도 계속될 후회

 위험한 선택을 한 것은 나 자신이었고, 그래서 어떤 것도 후회할 수 없으리란 것은 잘 안다. 어린 나는 순간의 실수가 이렇게까지 큰 파란을 일으킬 줄이야 상상조차 못했다.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후회스런 마음은 점점 커진다. 졸업 평점이 불안해진다는 이유도 있지만, 대학생활 중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인 '자발적인 공부'를 일정 부분 포기해 버린다는 것이 갑갑할 따름이다. 다행히 적성에 맞는 신방과 복수전공을 한 이후로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와 알아서 교재를 읽고, 보충자료를 찾아보고, 적극적으로 발표 준비를 하는 등 '좋아서 하는 공부의 매력'을 깨달았다. 경제학도 이랬더라면 보다 풍성한 대학시절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전공포기자의 아픔을 몸소 체험하고 나니, 어느새 후배들에게 누구보다 '전공 선택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외치는 선배가 되었다. '그깟 3년, 대강 견디면 되지 않나?' 하고 가볍게 여길지 모르지만 전공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졸업하는 순간에도, 기업 입사를 준비할 때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 심층적인 학문 탐구를 하려는 사람에게는 첫 단추가 될 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부분이다. 짧은 대학생활의 중심이자 이정표가 되어 줄 전공.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꼭 많은 고민을 거친 후,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지까지 모두 염두에 두고 전공을 고르길 바란다. 나 또한 막연히 경제학을 사회과학의 일부로 예단하고 논리성을 키워주는 데 보탬이 되리라고 여겼다. 적어도 교과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선배들의 진로는 어떤 방향인지, 전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정도는 꼼꼼히 살피고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뼈아픈 경험을 한 선배의 눈물 겨운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