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재 신분이 대학생이다 보니 아무래도 가장 흔히 받는 질문이 전공에 대한 질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나의 전공을 말하기 전에 멈칫하기 일쑤다. 나의 전공을 말하기가 참 민망하기 그지없다. 우선은 전공이 나의 외모와 전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고 또한 이어지는 질문에도 나는 ‘아니요.’라는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쯤 되면 나의 전공이 궁금해졌을 것 같다. 그런데 타자를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전공을 얘기하려 하니 조금은 머뭇거려진다. 최대한 떳떳하게 얘기를 해보이자면 나의 전공은 ‘법’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우선 사람들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법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사법시험 준비 하고 있어요?”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미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전공을 하고 있다. ‘정치외교학’이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사람들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어려운 과목을 두 개씩이나 하고 있다고 말이다. 법은 의도치 않게 선택된 과목이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 같아 하고 있는 공부이고 정치외교학은 이전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라 복수전공으로 선택해서 하고 있는 공부이다. ‘선택된’ 과목과 ‘선택한’ 과목의 차이 때문인지 몰라도 자꾸 정치외교학에 마음이 간다. 둘 다 겉보기엔 ‘있어 보이는’ 과목이지만 내가 경험한 수업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상상했던 대학수업의 모습이 있었다. 물론 현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것은 짐작했지만 법만을 공부했던 새내기 때 나는 강의실에서 내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앉아있는 건지 대학생의 신분으로 앉아있는 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우선 강의식 수업은 고등학교의 여느 수업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이는 다른 과의 수업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알고 있다.) 법학이라는 특성도 있겠지만 내가 여태껏 경험한 법학과의 수업은 사고를 할 수 있는 수업이 아니었다.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에서 그쳤다. ‘아 그렇구나.’ ‘이건 이렇게 해석하는 거구나.’ ‘이렇게 적용하는 거구나.’ 그 뿐이었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정치외교학 수업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물론 정치외교학도 강의식의 여느 고등학교 수업이 주가 되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는 것은 교수님들이 끊임없이 토론식의 강의를 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수강인원이 많은 장애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내가 신세계라고 느꼈던 것은 교수님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나의 뇌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3시간의 연강 수업을 듣고 나면 머리가 깨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대의 문제, 화두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정리하고 얽히고 얽혀있는 주장들에 대해 따지다 보면 나의 논리가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고민의 과정들을 거치고 나면 나만의 논리가 세워지기도 한다.


이런 것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대학수업 중의 일부이긴 하지만 나는 끊임없는 사고의 과정을 통해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랐었다. 끝도 없이 input만 있는 수업이 아니라 input과 output이 공존하는 수업을 바랐었다.

궁극적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학 교육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된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현재 대학교의 대부분의 수업은 강의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은 생각할 시간은커녕 책에 나와 있는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기에 바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기 보다는 그저 대학이라는 타이틀을 따기 위해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대학에서 가르치는 많은 이론들과 사상을 등한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와 더불어 최소한 학생들에게 사고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야하지 않을까. 두꺼운 전공서적들과 씨름하며 머리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그것을 왜 하는지,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사실 자신에 대한 고민은 대학에 오기 전에 끝냈어야 한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는 진작 찾아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이 그러하지 못하니 적어도 자유가 좀 더 보장된다는, 아니 적어도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대학교육에서라도 그러한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여태껏 내가 본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가장 큰 문제이다. 이미 12년간의 주입식 교육이 몸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 우리는 사고에 취약하다. input에 대해서는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하지만 output은 없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지금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한다. 수업을 듣고 ‘머리가 깨는’듯 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지. 학과를 불문하고 과연 대학교육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올바른 대학교육은 초․중․고 교육과 같이 학생이 주체성을 상실한 모습은 분명히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