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플 : 베스트 리플의 준말. 인터넷 게시글 아래 붙는 리플(댓글) 가운데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을 칭한다.



 

공감의 시작

네이트 포털의 가장 큰 매력으로 꼽히는 베플 문화. 이미 문화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베플은 누리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감을 느끼는 의견에 추천 혹은 반대 버튼 하나로 내가 직접 댓글을 남기지 않아도 나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리꾼들의 추천을 가장 많이 받은 댓글들은 댓글 창 가장 윗부분에 자리하게 되고, 본문을 본 사람이면 자연스레 베플까지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베플 덕에 우리는 다른 누리꾼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다. 때로는 덤으로 다른 이들의 넘치는 기지를 보며 웃음 지을 수도 있다.


베플 문화의 한 획을 그은, '명동 크리스마스 삼겹살 사건'을 기억하시는지. 2009년 말 한 누리꾼이 쓴 ‘제가 베플이 된다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명동 한복판에서 혼자 삼겹살을 구워 먹겠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시초로, 세 사람이 12월 26일 명동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노래를 부르고, 탬버린을 쳤던 사건이다. 수많은 누리꾼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가 흩어졌다. 이 세 사람은 각자 하나의 리플로 인해 방송 전파를 타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연동된 미니홈피의 방문자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으며 심지어 개인 팬 카페도 생겼다.


최근에는 베플로 만드는 UCC드라마 까지 완성되었다. 이렇듯 ‘베플’문화가 인기 있는 이유는 아마 빠르고 화끈한-자극적인-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누리꾼들의 성향이 리플 시스템에 녹아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짧은 리플이 열에 열 모두 맞다고는 할 수 없을지언정 일반적으로 생각·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대변해준다는 것에 베플의 매력이 있다. 즉 하나의 콘텐츠에 대한 누리꾼들의 대세적 ‘여론’을 쉽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매력 뒤에는 우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이면이 존재하기도 한다.

 

 


‘의견’에 있어서 BEST란 존재할 수 있는가


여론형성의 사회심리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Noelle-Neumann, 1974)이라는 독일의 여성 커뮤니케이션학자가 제시한 이론이 하나 있다. 바로 ‘침묵의 나선 이론’이다. 어떤 새로운 생각과 판단을 해야 할 때 주변의 다수 사람들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면 침묵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렇게 되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그것을 표현하기가 점점 더 -나선의 흐름처럼-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매스미디어의 강 효과 측면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꼭 매스미디어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베플에도 적용될 수 있다. 리플을 달기 좋아하거나 혹은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한번 쯤 겪어 보았을 법한 일이 있다. 나는 이건 이거지 하며 스크롤바를 내렸는데, 리플 대부분이 이건 저거다 22 33 44 동감! 과 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을 때에 쉬이 나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그냥 ←,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본 경험. 더군다나 나의 의견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마주치는 ‘나선의 흐름’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욱 파괴적일 수 있다. 홀로 남겨진다는 두려움 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안정감과 확신을 느끼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플은 ‘진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된 교육을 받고 비슷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공통된 의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의견이 통합될 필요는 없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몇 문장의 글에 대한 단순한 공감이나 반대로써 자신들의 입장을 100% 표현할 수는 더더욱 없다. 편견보다는 열린 시각, 허구보다는 진실, 구태의연함보다는 참신함 등 좀 더 ‘나은’ 의견은 있을 수 있다. 허나 모든 사람들이 만족하는 ‘최상급’의 의견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 도박중독 빠져 80억원 잃고 자살…강원랜드 책임은? (노컷뉴스 2010-12-24) 기사에 달린 베플


법원 측은 '강원랜드측이 스스로 사행심을 억제할 능력을 상실한 A씨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의무를 위반했지만,
카지노에 출입해 게임을 할지 여부는 본인이 결정하는 사안인 만큼 배상 범위를 60%로 제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세 개의 베플은 모두 카지노 측은 배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단순한 보상 차원의 문제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카지노의 병폐를 지적한 글이나 
도박중독자 에 관해 쓴 글도
존재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위의 리플만 보고 넘어가지 않을까?

          






BEST 토론장을 위하여 


베플의 정확성이나 신뢰도를 입증해 줄 방법이 없다는 것 또한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부분이다. 리플이 전문가들의 평가나 정확한 사실에 의해 걸러진 것이 아니라 누리꾼들의 관심도에 따라 편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특성으로 인해 특히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차별적 발언이나 자극적인 표현이 베플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마치 선거철에 난무하는 포퓰리즘성 공약처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진실성은 찾아보기 힘들고, 순간의 자극에만 집중한다. 결국 이러한 소모성 언쟁은 공개 토론장의 질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플은 앞으로도 꾸준한 인기를 얻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개인적 영역 밖의 문제에 대해서 의견의 기후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의견의 기후에 따라 자신을 감출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리플이라는 참여로 이루어지는 인터넷 공론장에서, ‘침묵의 미덕’은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합의에 따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그 전에 먼저 앞서야 할 것은 다양한 시도와 탐구의 자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