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교육개발원이 조사한 '한국 대학생의 학습과정 분석연구'에 따르면 전국의 4년제 대학생 2019명 중 '진로에 대해 교수와 상호작용을 한다'고 답한 학생이 전체의 20.5%에 그쳤고 그 외 주제에 대해 교수와 상담하는 학생은 이보다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의 커다란 인적 요소를 구성하는 교수와 학생 간의 상호작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결코 단순히 넘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그리고 이는 대학 내에서 스승과 제자가 서로에게 갖는 책임에 대한 문제로 연결될 수 있다.

'제자에 대한 교수의 책임과 의무는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의는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교수와 제자의 소통이 얼마나 적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예로는 '개인 면담'이 있다. 교수와 제자 사이의 일대일 개인 면담은 보통 제자가 교수에게 전화 또는 이메일로 요청하여 시간 및 장소를 조율해야만 이루어진다. 미국 등의 서양권 대학문화에서는 학생이 교수에게 면담을 요청하여 연구실로 찾아가는 일이 빈번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고민상담을 하기 위해 연구실로 교수를 찾아가는 경우가 빈번하거나, 평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가? 대학생 이예은(가명)씨는 "학교에 재학 중인 3년 내내 지도교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다"며 "고민이 있어도 주로 친구들에게 물어보는 편이지, 굳이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지는 않는다. 솔직히 교수님이 무섭고, 뻔한 대답만 해주실 것 같아 찾아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심지어 학업적인 고민, 수업 상에서의 고민이 있어도 교수님께 물어보는 것이 꺼려질 때가 많다"고 했다. 대학생 김민준(가명)씨도 "교수님께 찾아가는 일은 주로 속 깊은 상담보다는 형식적이고 공적인 일, 교수님의 직인이 필요한 일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교수와의 소통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 교수들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서울 시내 모 여대의 A 교수는 "대부분의 교수들은 외국 유학 경험이 있기 때문에, 외국 대학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제자와의 상호 교류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내는 비싼 등록금은 단순한 강의 수강에 대한 비용뿐만 아니라, 교수와의 면담이나 멘토링에 대한 비용도 포함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같은 학교의 B 교수는 "대학은 더 이상 학생이 해야 할 일을 담당교사나 학부모가 정해주고 떠먹여주는 중고등학교와 같은 곳이 아니다"라며 "학생이 찾아오지 않는데 교수가 면담하자고 학생을 찾아가 붙잡을 수는 없다. 교수와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원한다면 학생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수와 학생과의 상호 작용을 장려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면담을 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의 경우 한 학기에 한번 지도교수를 찾아가 면담하는 것이 의무적이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김지현씨는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머뭇거리다가도 막상 면담을 시작하면 3시간을 넘기는 친구들도 있었다"며 "인생 선배와 같은 교수님께 고민을 토로하면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답을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면담 의무제가 자칫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감을 주어 형식적 면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K대 도시계획학과에 재학 중인 성민경씨는 "의무 면담을 한다고 해서 찾아가면 5~10분정도 교수님과 이야기하다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시간에 쫓겨 면담 내용이 형식적 인사치레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시간 낭비라는 느낌이 강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대학 생활에서 '교수'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고, 몇몇 이들에게는 평생의 스승으로 남기도 한다. 전공 뿐 아니라 인생의 다양한 면에서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에 다니는 내내 수업시간 외에 교수를 만난 적 없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절감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 대한 책임은 '어렵다'는 이유로 교수 만나기를 기피하는 학생들,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비판하기만 하는 교수들 양쪽에 모두 있다. 지금 대학에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함께 청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장이 절실하다. 그러한 환경과 분위기가 제대로 형성될 때에 비로소 교수와 학생이 원해왔던 대학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