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충한 2학기와 겨울방학을 지나, 3월이 되면 학교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화사해진다. 꼭 계절 탓만이 아닌 풋풋한 새내기들의 기운이 전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봄기운을 여유롭게 느껴볼 새도 없이 각종 동아리들은 새내기들을 유치하기 바쁘다.

3월 10일부터 12일까지 동아리 홍보주간을 가졌던 건국대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학생회관 주위로 동아리마다 테이블과 입간판을 설치하여 11학번 모집에 열을 올리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동아리 생활을 오래 했던 사람들은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전 같지가 않다고 말한다. 과 활동을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동아리 하나쯤은 들었던 예전과는 달리 요즘엔 전체적으로 동아리에 대한 관심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스펙키우기, 개인주의라는 등딱지

요즘은 1학년 때부터 취업걱정을 한다. 정말 듣고 싶은 교양, 하고 싶은 전공이 아니라 학점 잘 주기로 유명한 과목, 취업 잘 되는 전공으로 선택하여 학교에 온다. 대학은 크게 배우는 장소가 아닌, 취업을 준비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현상 자체를 비난할 수도 없을 만큼 취업 전선은 험난하기 그지없다. 흔히 말하는 스펙, 영어점수, 봉사활동, 학점, 해외경험 등은 최소한 4년간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취업과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는 동아리들은 외면받기 십상이다.

건국대만 하더라도 연행예술분과, 무예분과, 구기-레져분과, 어학분과, 봉사분과, 종교분과, 인문사회분과, 자연과학분과, 창작비평분과 등으로 나뉘어져 각 분과별로 적어도 3-4개 씩의 동아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인문사회나 창작비평 등에 속한 동아리들은 신입생 유치뿐만이 아니라 동아리 유지 자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3년 전에 야학동아리 ‘참사랑’과 불어연구회, 독어연구회는 문을 닫았다고 한다. 그나마 명맥이 유지되는 곳은 영어토론 동아리나 봉사 동아리 등으로 보였다. 그나마 이렇게 동아리에게 형식적으로라도 홍보시간을 주는 학교가 아니면 동아리의 신입생 유치는 더욱 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올인'보다는 원칙대로, 내 상황만큼

신입생이 들어온다고 해도, 유지하기 어렵기는 매한가지이다. 학교의 역사만큼 동아리의 역사 또한 깊은 곳도 많지만 그 전통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 새내기들과 각 임원진들은 선배들이 조성해 온 분위기나 행사 등,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내려온 전통을 따라서 '정석'만을 실현하려 애쓸 뿐이다. 반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본위의 목적이 변질되는 경우도 있다. 모 천문 동아리의 경우에는 관측회를 가면 일반 MT와 달리 술을 먹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최근 들어 천문 관측보다는 단합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원칙을 깨뜨리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몇몇 동아리에서는 임원진 역을 수행하여 이끌어가야 할 2학년들이 부족하다고 호소한다. 남학생들은 대부분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또는 늦어야 2학년 1학기를 끝마친 여름방학에 군 입대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임원진 역을 수행하려면 다른 동기들보다 입대가 늦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학생들과 복학생들이 역할이 상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복학생들은 3,4학년이라는 상황 상 1,2학년 때보다는 동아리에 소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내부 간 소통이 원활하게 되지 않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신입생이 환영회에 갔는데, 동아리 선배들끼리도 서로 몰라 그제서야 서로 인사를 하고 있다면 그 동아리에 믿음이 갈 수 있을까? 이는 동아리 내부에서도 속한 동아리에 '올인'하지 않는 최근의 모습을 반영한다.


사라진 낭만, 아쉽다

물론 이러한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과 취미에 따라 각종 활동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꼭 동아리가 아니더라도 학과 생활, 외부 동아리 활동, 개인적인 봉사활동 등으로 자신 스스로 시간관리를 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막연히 ‘시간을 뺏길 것 같아서, 술만 마실 것 같아서,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쓸 말이 없을 것 같아서’ 라는 식의 마음가짐이라면 한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고3 시절, 원한 가득한 다이어리에 수능 끝나면 할 일 목록을 산더미처럼 적어 놓던 그 시절을, 대학만 가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자신감을, 입시전선에 목 메여 여유를 찾지 못했던 그 시절을 돌이켜보자.

최근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강조하는 것은 ‘스토리텔링’이라고 한다. 나의 스펙 고군분투기를 어떻게 엮을 것인가 보다는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이야기, 재미있었던 이야기들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설득력 있을 것이다. 단순히 ‘스펙’을 쫓아 무작정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며 즐겨보는 것이 어떨까. ‘천재는 노력하는자를 이기지 못 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 한다.’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