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1>에 대한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먼저 출판 업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출판 업계의 어려움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이렇다 할 돌파구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2010년 한 해 동안도 출판 업계는 크게 위축 되었다. 전체 발행 부수는 0.1% 증가 했으나 이는 학습 참고서 발행 부수가 53.9%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급격한 감소세라고 할 수 있다. 발행 종수의 경우에는 4.5% 감소했는데 이 역시 학습 참고서가 39.3%나 증가했음을 고려했을 때 좋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종교, 문학, 아동, 사회과학 등 주요 부문에서 감소세를 보였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출판 업계는 '팔리는 책' 위주로 찍어낼 수밖에 없고, '팔리는 책'이라는 것은 극히 제한적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출판 업계의 노력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출판 업계는 몇 가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우선 대형 서점을 중심으로 매대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수천, 수만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서점에서는 매대 위 책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매출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수험서 전문 출판 업계의 경우 경쟁 업체의 교재를 매대에서 밀어내기 위해 수요보다 과다 공급했다가 대량 반품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문학 부문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특별히 읽고 싶은 장르나 취향이 있는 독자들보다 눈에 보이는 책, 남들이 읽는 책을 주로 읽는 독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집착이라는 형태로 출판 마케팅에 반영된다.실제로 베스트셀러에 한 번 오르면 '게임 끝' 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단 한 번 출판한 책을 출판사가 제 손으로 대량 구매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팔리는 책’을 펴내고자 하는 출판사의 바람이 사회 트렌드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트렌드는 출판계에 즉각 반영되고, 이는 다시 사회 트렌드를 형성하는 순관 구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침형 인간’으로 물꼬를 튼 이러한 순환 구조는 ‘시크릿’, 연령 시리즈 (20대, ~해라)로 이어지면서 자기계발서의 붐을 만들어 냈다.

해외 유명 작가에 대한 집착도 두드러지는 특성이다. 독자들이 해외 유명 저자의 책은 일단 신뢰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어떤 책을 출판할 것이냐 보다 어떤 저자의 책을 출판 할 것이냐가 중요해지기도 한다.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파울로 코엘류나 베르나르베르베르,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에는 유난히 한국에서 더 사랑받고 있기도 하며, 실제로 우리나라 출판 업계에는 일본 유명 작가의 책을 출판하면 절대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관음증 보도

위와 같은 출판 업계의 움직임은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들이지만 저작물의 편협한 선택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가 필요하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이와 관련한 대부분의 마케팅 기법들이 홍보라는 이름으로 언론의 힘을 빌리기 때문이다. 언론은 적절한 아젠다 세팅과 뉴스 밸류의 선택으로 출판 업계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언론의 도움으로 불티나게 팔린 책이 있다. 학력 위조 파문과 고위층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의 에세이집 ‘4001’이 그것이다. 언론은 마이너고 주류고 가릴 것 없이 ‘신정아 4001 폭로, 정운찬 도덕성에 치명타’, ‘정운찬 서울대 총장 시절 자주 지분거려’ 등 연일 자극적인 제호로 대서특필 했다. 그 열기는 BBK문제, 구제역 침출수 문제 등의 이슈가 한 풀 꺾일 만큼 대단했다. 출판 업계가 불황이라 하건만 '4001' 은 별다른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 역할을 언론이 충실히 대신했던 것이다. 한국기자협회는 신정아와 <4001>에 대한 보도를 관음증 보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으면서 "일회성 보도가 아닌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가십성 보도는 끊일 줄 몰랐고 '4001' 은 결국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한다.

'4001'이라는 책 제목은 저자가 학력 위조와 공금 횡령 혐의로 복역하던
당시의 수인번호에서 따왔다, 부끄러울텐데 말이다.


'4001'을 리뷰한다고 했으면서 책에 대한 진지한 평 한 마디 쓰지 않은 것은 리뷰답지 못 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4001'의 부당한 이슈에 한 몫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리뷰다운 리뷰인가? 그런 일에 한 몫 하고 싶지 않다는 게 '4001'에 대한 내 유일한 소감이다.  불경스런 흥분감에 사로잡힌 사춘기 소년이 애국가를 부르는 심정으로  시 한 편을 소개하며 리뷰를 마친다.


소년에게
이육사 (李陸史)

차디찬 아침 이슬
진주가 빛나는 못가
연꽃 하나 다복이 피고
소년아, 네가 낳다니
맑은 넋에 깃들여
박꽃처럼 자랐세라.
큰 강 목놓아 흘러
여울은 흰 돌쪽마다
소리 석양을 새기고
너는 준마 달리며
죽도(竹刀) 져 곧은 기운을
목숨같이 사랑했거늘
거리를 쫓아다녀도
분수 있는 풍경 속에
동상(銅像)처럼 서 봐도 좋다.
서풍 뺨을 스치고
하늘 한가 구름 뜨는 곳
희고 푸른 지음을 노래하며
그래 가락은 흔들리고
별들 춥다 얼어붙고
너조차 미친들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