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선생님 죄송해요 시리즈~ 대학 졸업하고 첫 부임해서 애들하고 친해지려고 인디안밥 하신 독어샘~ 브레지어끈 풀려서 당황하셨죠? 제가 슬쩍 일부러 그랬어요. 쿄쿄쿄.”
 
고요한 일요일 아침 (3일 아침) 이었지만 트위터 타임라인은 시끄러웠다. 2일 저녁에 시사인 고재열 기자 (@dogsul)가 트위터에 쓴 위의 글에 대한 격한 반응들이 트위터 유저들 사이에서 오고 갔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비난 일색이었다. 고재열 기자 언팔로우 운동을 하자는 움직임도 생겨났다.

사건의 발단은 고재열 기자가 예능 프로그램 ‘세바퀴’를 보고 “가장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누구였냐”는 말을 트위터에 남기면서 시작된다. 사람들의 가지각색의 답변을 받는 도중에 자신도 기억나는 선생님을 이야기 한다면서 쓴 글이었다. 고재열 기자는 평소 트위터를 통하여 젊은이들과 소통을 꾸준히 해오던 진보적인 언론인으로 여겨져 왔고, 그에 따라 트위터 내에서 고재열 기자를 좋아하고 지지하는 세력들이 꽤 있었던 만큼, 사람들의 실망도 꽤 컸다. 


그는 성희롱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성희롱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고, 그 행위를 어린 시절에 했다는 이유만으로 추억으로 미화시키거나 웃음거리로 삼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비록 자신은 장난이었겠지만, 그 선생님에게는 크나큰 상처와 모욕이 될 수도 있던 일이다. 어린 시절의 잘못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반성하지는 않고 오히려 그 이야기를 트위터에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닌다는 것을 볼 때. 과거 자신의 장난이 성희롱이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린 학생이 장난으로 했던 일이라 그것이 ‘성희롱’이라는 범주에 들어갈 줄은 꿈에도 몰랐던 걸까?

직장 내 성희롱, 교내 성희롱 가해자들이 이런식으로  대부분이 자신의 행위가 성희롱이라는 것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더욱 피해자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주고 있다. 가해자는 성희롱의 의도가 없이 그저 단순한 농담을 했다고 변명하지만, 정작 당하는 피해자는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과, 성적 대상화를 암묵적으로 용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된 남자들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본다. 고재열 기자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사실 과거에도 고재열 기자는 여성에 대한 발언으로 두 번이나 구설수에 올랐었다.
  
2009년 11월경 고재열 기자가 운영하는 ‘독설닷컴’에 ‘똥꼬치마에 대한 단상’ 이라는 글이 올라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핸드백으로 치마를 가리는 행동이, 뒤에 가는 남자를 엿보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쓴 글이라고 한다.


 
이 글에 나타난 여성에 대한 편견, 피해의식, 외모비하 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이 글을 쓰고 큰 논란이 일자, 바로 사과 글을 쓰긴 했으나 그 사과 글의 진정성이 의심될 정도로, 올해 초에도 또다시 여성을 비하하는 뉘앙스의 글을 트위터에 올린다.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 산부인과에서 한 번, 성형외과에서 또 한 번."


본인은  생각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 속에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조롱이 담겨있었다. 정작 여성들이 왜 성형외과에 가는지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채 여성의 성형을 '다시 태어난다'는 식으로 비아냥 거린 것은, 그의 여성관이 굉장히 천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은 고재열 기자의 말에 반발했으며, 그를 '진보마초'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재열 기자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을 비아냥 거린다.


"여자는 두 번 태어난다. 산부인과에서 한 번, 성형외과에서 또 한 번."라고 트윗에 올렸다. 압구정역에 내릴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그런데 요걸 보고 페미니스트입네 하는 찌질이들이 난리다. 지랄이 풍년이다. ㅋㅋ”


고재열 기자는 자신의 발언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괜히 페미니스트들만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여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당한 비판을 수용못할만큼 '꽉 막힌' 사람이라는 것을 자기 스스로 증명해보인 셈이다. 더구나 '페미니스트입네 하는 찌질이' 라는 말 역시 고재열 기자가 갖고 있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협한 인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유감스러웠다.

 
왜 제대로 된 반성을 하지 않는가
 

이처럼 고재열 기자는 자신이 비난 받는 이유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이 더욱 문제다. 이번 사건에도 자신이 욕먹는 현상을 군중심리에 의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마초사냥’이라는 용어를 썼다. 쉽사리 사과를 하지 않았고, “그냥 이런 나를 싫어해라.” “기자는 잡놈이다.” 등의 표현을 쓰면서 책임을 회피했다.

또한 자신의 블로그에 쓴 “트위터에서 반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라는 문장만 살펴보더라도 그가 페미니스트 vs 반페미니스트 등의 이분법적인 여성관을 가진 것 또한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글에 격렬히 반대하는 사람들이 페미니스트라는 전제도 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봐도, 어릴 때의 성희롱 경험을 자랑스럽게 말한다면, 그것을 어이없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페미니스트인가 페미니스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을 보는 시각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다. 김조광수씨와의 트위터 대화에서는. 김조광수씨가 여성을 약자나 소수자로 보느냐고 물어보자, 고재열 기자는허울 좋게 여성이 세상의 반쪽이며, 여성을 약자나 소수자로 보는 것이 마초가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런데 정작 ‘세상의 반쪽’이라 말할 만큼 중요한 여성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자신의 편협함을 정당화시키기 까지 한다.

고재열 기자는 자신이 잘못했을지언정 자신의 안티들에게 굴복하기 싫어서 빨리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분명한 실수 내지 잘못을 해놓을 때도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것은 독선일 뿐이다. 자존심은 고재열 기자가 비판하는 조선일보, 청와대, 삼성 앞에서 세우기를 바란다. 

 
고재열 기자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

고재열 기자는 언론인이다. 자신의 트위터와 블로그가 1인 인터넷 매체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인터넷상에서, 또는 시사인 지면에서 자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편견없이 읽혀지길 바란다면 자기 자신부터 사람들에게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그러나 벌써 많은 독자들을 잃었다. 이것은 본인에게도 안타까운 일일 것이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사인의 이미지에도 안 좋다. 
 
트위터 상에서 고재열 기자가 유독 비난받는 이유는, 그만큼 그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수구정치세력, 재벌들에 대해 비판적인 자세를 항상 견지해왔고, 성역 없이 글을 쓰는 언론인 중에 하나였다. 사회 각 부분에 대한 이슈를 진보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왔고, 트위터에서 꾸준히 소통하면서 젊고 친근한 이미지 역시 구축해왔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관점은 유독 구시대적이고, 주류 남성들의 시각을 그대로 답습한 듯 보이니 답답하다.

그는 지금보다 ‘더 좋은 사회’ 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재벌을 투명하게 하고, 언론의 자유가 있고, 진보세력이 집권하는 세상을 바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남성중심사회를 변화시켜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편견 없이 바라보고, 같은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결국 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더 좋은 사회’가 아닐까? 이 점을 분명히 고재열 기자가 생각하길 바란다.

여성을 웃음의 소재로 삼고 종종 비하하거나,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지금과 같은 고재열 기자의 여성관은 남성중심사회를 더욱 더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그가 진정 더 좋은 사회를 꿈꾸고 진심으로 여성을 세상의 반쪽으로 생각한다면, 이번 일에 대해서 반성하고  아직도 사회 각 곳에 존재하는 여성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쏟아줬으면 한다.  사회에서 차별받거나,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여성들에 대해서도 글을 쓰면서 다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나갔으면 좋겠다. 그가 진보적인, 아니 최소한 상식적인 언론인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변해야 한다고 믿는다. 글로 잃은 신뢰, 부디 좋은 글로 다시 회복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