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일, 4월19일, 5월18일, 8월15일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 삼일절,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조국 광복. 역사에 관심이 있거나 국사와 한국 근·현대사 교육을 받은 이들은 곰곰이 생각하지 않아도 바로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날들이다. 그렇다면 4월3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일단 날짜부터 낯설고, 쉬이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아무 것도 떠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세계사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건일까? 아니다, 우리의 역사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모르고 있는 것일까?


지난 4월3일 주말 예능 프로인 '1박2일'에서 팀원 전체가 양복을 입고 제주도로 떠났다. 연예부 기자들은 이를 두고 '제주도의 4월3일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추측과 '그냥 우연의 일치이다.'라는 의견으로 갑론을박 기사를 쏟아냈다. 그 후 '1박2일' 나영석 PD가 '전혀 의도가 없었다. 스타의 공항 패션이 주목을 받기에 우리 1박2일 팀도 양복으로 멋을 낸 것이다.' 라는 해명을 했고, 4월3일은 사람들에게 각인될 기회를 놓쳤다. 4월3일, 제주도란 힌트를 듣고도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4월3일과 관련된 일은 바로 '제주 4.3 사건' 이다.

생소한 '제주 4.3 사건', 이 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 항쟁으로, 일본 패망 후 한반도를 통치한 미군정 체제 내 사회문제와  남한 단독 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좌익 계열의 주도로 일어났다. 미군정과 군정 관리들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장 투쟁자뿐만 아니라 많은 주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일이다. 사건 이후 50여 년간 아무런 규명과 보상도 없었다. 1999년이 되어서야 진상 규명 및 피해자 명예 회복에 대한 움직임이 생겨났고 2000년 1월 특별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 후 제주도에서 해방 직후 6여 년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국무총리의 주도 하에 본격적으로 정부 차원에서의 사실 확인이 시작되었다.

제주 4.3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사건과 관련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이란 취지에 걸맞게 정부는 사건에 관련된 현장과 목격자를 찾아 진실을 규명하고 진상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2003년,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4.3 사건을 '국가 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 이라며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조사위원회는 14,032명을 4.3 희생자로 결정했고 396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또 그 해 4월 제주 4.3 평화공원 기공식을 가졌다.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족들에 의해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4.3 사건을 다른 역사적인 항쟁 및 사건과 마찬가지로 추모 기념일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와 추가적인 유해 발굴 요청에도 정부는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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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시작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반대되는 남조선노동당의 주도로 일어난 일이었다 해도,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에의 좌익 세력의 공헌, 대다수의 도민이 제주도 토박이라 두터운 지역 공동체라는 점, 반도와 떨어져있는 고립된 제주의 특성 및 미군정 하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 반대라는 명분 등을 볼 때 1940년대 후반 제주도민의 항쟁은 필연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관련된 사람뿐만 아니라 아무런 죄 없는 사람들조차도 무차별 학살을 당했다. 국가에 대항한 무장 투쟁이었기에 진압할 수 밖에 없었단 점을 고려한다 해도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부는 50년 가까이 사실을 모른체 해왔다.

과거 정부들에서 묵인했던 4.3 사건에 대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는 사실을 재조명했고 국가적인 잘못을 인정했다. 그리고 2008년 집권당이 바뀌었다. 4.3 사건은 규명된 역사적 사실임에도 현 정부의 대통령은 4.3 사건 추모식에 단 한 번도 참석치 않았으며 피해자 유족들의 요구에도 구체적인 응답을 회피하는 등 정부는 다시 4.3 사건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사실로서의 역사를 빠짐없이 담고 있어야 할 국사 교과서와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사건의 피해자가 적게는 2만여 명, 많게는 3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4.3 사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거나, 한 두 줄로 간략히 설명 되어 있다. 이게 바로 4.3 사건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태도이다.
 
비록 공산주의 이념을 따르는 좌익 세력의 주도 아래 일어난 투쟁이었지만, 남북 분단을 인정하지 않고 외세에 의한 군정을 거부했으며,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끝까지 반대했던 투쟁으로 2~3만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했던 사건. 그럼에도 수 십년동안 정부에 의해 철저히 외면당해온 제주 4.3 사건을 '우리'는 기억하고 추모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