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수, 미분과 적분, 수열, 집합...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함께 했으나 늘 어렵기만 했던 수학! 학년이 높아질수록 난이도가 높아져서 나중에는 수학 공부를 포기했던 학생들이 많은데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학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부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게 되네요.그런데 남들은 어려워하는 수학 공부를 매우 즐기는 분이 있다고 해요. 수학 덕후 김기욱씨, 지금 만나 보시죠!
자기소개 부탁 드려요.
서강대학교 수학과 석사과정 10학번 김기욱(27)입니다.
수학을 공부한지가 얼마나 되나요?
제가 사실 고등학교 때 게임에 빠져 살아서 공부를 정말 안 했는데, 수능시험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다른 과목은 말고 오로지 수학만. 진지하게 공부한 것만 치면 대략 8년 정도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언제부터 수학을 좋아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우연히 규칙적으로 나열된 숫자들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관심을 갖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공식을 스스로 만들어 보기도 하고. 다양한 공식을 만들다 보니 어느 순간 합에 도달하게 됐어요. 1년이 지나고 수학 수업 시간에 제가 예전에 만든 공식이 사실은 아주 오래 된 ‘수열의 유한합’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공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흥미를 느끼게 됐고, 그 때부터 수학 공부만 죽도록 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학 입시 때 수학과를 선택하게 됐구요.
특별히 좋아하는 수학자가 있나요?
음, 굉장히 많은데요. 그 중에서 대표적으로 유명한 수학자 ‘오일러’를 존경합니다. 평생 논문을 200편 넘게 쓴 수학자에요. 오일러는 90세까지 살았는데, 80세 때 실명을 했어요. 그런데 수학은 보는 것이 중요한 학문이기 때문에 실명이라는 것이 수학자에게 치명적이거든요. 그런데 오일러는 실명 후에도 논문을 20편 넘게 발표합니다. 상상속으로 수학을 즐기고, 머릿속으로 증명을 해서 아들에게 전해주면 그 아들이 받아 적어서 논문을 발표하고. 그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수학과 내에서 많은 학생들이 기욱씨에게 수학을 배우고 싶어 한다던데.
수학이 우리나라에서 발달한 학문이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한국어로 된 책이 없어요. 그리고 외국서적은 답안지가 없어요. 문제만 있지 풀이과정이나 해설과정이 없습니다.그런데 수학적 증명이라는 것이 논리적인 학문인데, 답이 없으니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길이 없고. 문제를 풀면서 저도 어려움을 많이 겪고, 다른 학생들도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푼 문제를 가지고 후배들이나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5년 12월에 수학과 후배들을 위한 튜터링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수학문제에 대한 질문만 받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처럼 수업형식으로 진행했구요. 그게 학과 내에서 알려지면서 튜터링이 활성화 됐고, 많은 후배들이 저에게 수학을 배우고 싶어 하게 됐죠.
수학 솔루션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고 들었어요.
교실에서 후배들 모아서 가르치다 보니, 교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권의 책을 정해서 수업을 했는데, 외국 서적이라서 답이 없다 보니 한계가 있고. 그래서 저만의 솔루션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주로 평일 저녁과 주말에 솔루션을 만들었고, 1년에 걸쳐서 완성할 수 있었어요. 완성본을 제 인터넷 홈페이지에 업로드 했고, 다운로드 수가 의외로 굉장히 많았습니다.
또 답을 만들다 보니 저자가 증명을 하는 과정에서 틀린 부분을 발견하게 됐고, 그래서 저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내게 됐어요. 제가 풀이 한 것이 맞는지도 물어보고. [그래서 답변이 왔나요?] 네. 학생이 풀이한 것이 정확하게 맞고,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라고 짧게 답 메일이 왔습니다.(하하하)
그럼 이 솔루션이 다른 학교 수학과 학생들한테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데,
혹시 출판하실 의향은 없으세요?
사실 그런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출판하면 우리나라 수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잘 팔릴 거라고. 그런데 영리목적으로 하면 순수하게 공부하고자 했던 목적이 훼손될 것 같아서요. 출판할 의향은 없고 그냥 후배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 An introduction to analysis 3rd edition, William R.Wade 의 솔루션
Advanced Calculus, 2nd edition, Patrick M. Fitzpatrick 의 솔루션 >
수학을 잘해서 좋은 점이 있나요?
아무래도 수학을 잘하면, 주변에서 많이 챙겨줘요. 수학 자체가 도움을 많이 줄 수 있는 학문이라 그런 것 같아요. 이과에서는 수학이 모든 학문과 관련되어 있어요. 물리나 화학 등 수학이 꼭 필요한 학문이죠. 그러다 보니 제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도움을 주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아요. 모든 분야에 수학이 손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 수학과 학생으로서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합니다.
수학덕후로서, 평소에 남들과 다르게 수학적으로 사고한 적이 있나요?
항상 수학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매번 수학적 논리를 적용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미안박명’이라는 말이 나와도 보통은 ‘미인이면 단명한다’ 라고만 생각하잖아요. 저는 ‘미인박명’을 수학 논리에 적용시켜 대우 명제인 ‘장수하면 미인이 아니다’라는 생각까지 확장해본답니다. 언어유희, 흔히 말하는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수학의 틀을 잘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 점 때문에 고등학교 때 언어영역을 잘 못한 것 같기도 해요. 수학은 직유법만 적용되는데 언어영역은 은유법이 너무 많이 나와요.
졸업 후 진로계획은?
수학이 순수학문이다 보니 졸업하고 나면 할 것이 별로 없다는 게 고민입니다. 그래서 저는 취업 대신 계속 공부를 하려고 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수학을 푸대접하니까. 외국대학으로 유학 가서 수학을 연구하려고 해요. [혹시 가고 싶은 학교가 있으신가요?] 말하기 쑥스러운데요. 영국에 있는 ‘트리니티칼리지’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수학과 물리 분야에서 굉장히 유명하고, 뉴턴이 교수로 재직한 학교입니다.
음, 그리고 진로에 대해 더 넓게 보자면. 대학원에 와보니 대학교 때 배우는 학문과는 또 다르더군요. 수학이라는 분야가 아직 정리되어 있지 않아요.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문들도 마찬가지고. 학문의 이론이라는 것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어지럽고 정리가 잘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제가 수학의 통일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예를 들면 옛날에는 곱하기 기호가 사람마다 다 달랐어요. 그런데 지금은 x 라는 기호만 쓰죠. 이 경우에는 정리가 되어있는 거에요. 하지만 이것 외에 수학적으로 사용하는 기호들이 굉장히 많은데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언젠가는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기욱씨가 생각하는 수학이란?
어려운 질문이네요. 제가 생각했을 때, 조물주는 자연을 창조했지만, 수학을 창조하지는 않았다고 봐요. 수학이란 사람이 조물주가 만든 자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사람은 대기 중에 있는 포화수증기 양을 계산에서 비가 내릴 확률을 알아보잖아요. 그런데 조물주가 그 확률을 정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수학이 자연을 해석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저도 초등학교, 중학교 때 까지만 해도 수학이 재미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했을 뿐 잘하지는 못했어요. 잘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수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수학을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가장 필요한 것은 수학에 대한 흥미라고 생각해요. 이 말은 진부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저는 진부한 것이 때론 진리라는 말을 믿습니다. 그래서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수학에 흥미를 갖게 되는 방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개개인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대답은 없겠죠.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수학자들의 인생이 담겨 있는 수학 교양서를 많이 읽어볼 것을 추천해요. 많은 선조 수학자들이 어떻게 공부해왔고, 어떻게 수학의 역사가 흘렀는지를 안다면 수학에 흥미를 붙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학 덕후는 수학을 어렵게만 생각하는 저에게 수학자의 이야기, 간단한 계산만으로도 즐겁게 풀 수 있는 수학 퀴즈 등 다양하게 수학에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답니다. 수학의 매력은 모든 학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점이라며 ‘과학의 꽃’과 같다고 말하는 수학 덕후 김기욱씨. 혼자서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며 기뻐하는 그의 모습이 수학이라는 학문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한민국의 수학자 탄생을 기대해봅니다. 그 때, 고함20과 또 만나요!
'뉴스 >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덕후] 야구 없는 월요일은 심심해요 (6) | 2011.05.28 |
---|---|
"내가 나아가는 힘은 '목표 의식'", 싱크로 국가대표 박현선 선수 인터뷰 (1) | 2011.05.26 |
[인터뷰,덕후] 넌 힙합을 듣기만 하니? 난 만들기도 한다! (0) | 2011.04.10 |
[여기붙어라] 당신을 위한 강연 나눔회 '판'의 총지휘자, 한소정 (0) | 2011.04.08 |
[인터뷰,덕후] 스피드, 상상 이상의 즐거움: 오토바이 덕후 (3) | 2011.04.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