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이 북적북적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야구장 간다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는데. 요즘은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예매하지 않으면 표를 구하기 힘든 지경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부터 줄곧 야구장에 열심히 다닌 '덕후'가 있었으니. 하루라도 야구에 관한 것이 없으면 삶이 지루하다는 이선경씨가 오늘 [인터뷰,덕후]의 주인공이다. 야구장에 가지 않는 날은 중계를 꼭 찾아봐야함은 물론 주변인들에게 '야구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선경씨. 그녀가 생각하는 야구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름은 이선경이고,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3학년이야. LG트윈스팬이고 하하.


야구를 언제부터 좋아했나

- 아빠가 체대생이셨는데, 그 영향으로 가족들이 다 스포츠를 즐기는 분위기였어. 중학생 때부터 야구 중계를 보기 시작했지만 야구장을 다니고 그런 건 아니었어.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했지. 친구들에게 야구장을 같이 가자고 얘기는 하고 싶은데 말을 못 꺼내겠더라고. 아무래도 고등학생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 한 친구가 LG트윈스 사진을 보고 있는 걸 목격했어. “너 LG트윈스 좋아해? 나 LG트윈스 완전 팬인데.” 이렇게 해서 이 친구랑 같이 야구장을 다니기 시작했지.

이 때가 고등학교 1학년 때야. 당시에 내가 정말 좋아했던 잘생긴 야구선수가 있었거든. 그래서 더 열심히 다녔던 것 같아. 지금은 야구장 티비에 나오면 꽉 차 있고 그러잖아. 그런데 내가 고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2005년부터 3년간 LG트윈스가 암흑기여서 야구장에 팬이 하나도 없었어(ㅋㅋ). 관중석이 텅텅 비어있는데 그 중에 교복 입을 애들이 와서 춤추고 이러니까 튀어 보였나봐. 전광판에 자주 비춰주는 것도 재밌었어. 아마 이것도 내가 야구장을 자주 가게 된 이유 중에 하나 일거야.


다른 종목이 아닌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 축구 같은 경우에 A매치는 재밌게 보는 편인데, 프로축구는 썩 끌리진 않더라. 우선 야구장에 가면 치어리더들이 있잖아. 그래서 더 흥겨워 져서 좋은 것 같아. 또 예전에는 야구장 티켓이 정말 쌌거든. 이 때는 LG 응원석이 외야석이어서 4천원이었는데 나는 LG트윈스 카드 같은 게 있어서 2천원에 볼 수 있었단 말이야. 단돈 2천원이면 3~4시간을 아주 재밌게 보낼 수 있잖아. [그럼 공부는요?] 그래서 재수 했어(ㅋㅋㅋ). 야구장 다니다가. 재수하는 동안에도 야구장 갔어.


그럼 이선경이 생각하는 야구의 매력은 응원에 있는 건가

- 그런 건 아닌데. 젊고 잘생긴 선수들 때문도 아니고. 내가 한 팀을 열정적으로 좋아하고, 그 팀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처음에는 선수들 좋아하고 이런 것 때문에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점점 야구를 많이 보다보니까 개인에서 팀으로, 좋아하는 범위가 넓어져서 ‘야구’ 자체를 좋아하게 되더라고. 가장 큰 매력을 이거야. 내 열정을 한 곳에 쏟을 수 있다는 거.


좋아하는 팀, 싫어하는 팀

- 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LG트윈스팬이고, SK가 별로야. 싫어한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경기가 재미없어. 너무 로봇처럼 잘해서. SK는 팬심이 낮아서 응원도 별로고. 워낙 잘해서 SK가 이기기 시작하면 ‘아 얘네는 못 이기겠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역전상황같은 반전의 묘미나 손에 땀을 쥐게하는 맛이 없어서 그냥 밍밍한 게임이지. SK랑 경기 있는 날 상대 구단 팬들이 ‘오늘은 예매하지 말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LG가 좋은 이유는?] 사실 LG 최근에 주구장창 못했어. 94년엔가 우승하고. 정말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옛날 일이야. 00년인가 02년인가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한국시리즈에 우승컵을 다투는 7차전을 가족끼리 다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 끝내기 홈런인가 맞아서 이 때 LG트윈스가 준우승 했지. 이후로는 6,6,6,8위인가 거의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어. “다시는 LG 야구 안 본다. 속 터져서 못 보겠다.” 이렇게 얘기해도, 다음 날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야구 예매하고 있는 나를 발견해(ㅎㅎ). [그런데도 다시 보게 되는 LG트윈스의 매력은?] 그냥 팬심인 거 같아. 특히 LG팬들은 팬심이 정말 큰 것 같아.


LG트윈스 경기 보면서 리모컨 몇 번이나 던졌나

- 난 리모컨은 안 던져. 음소거를 하지(ㅋㅋ). 어제 경기였나. 5:2로 이기고 있다가 갑자기 역전당하고, 그리고는 막 쫓아가는데 결국은 졌지. 그래서 나온 말이 ‘엘레발’ 떨지 말라는 거야. LG+설레발해서 만들어진 말인데 4월에는 항상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그 이후에는 알 수 없는 게 LG 야구라서. 그런데 올해는 투수들이 불안하고 미들맨들이 조금 불을 지르고 내려가긴 하는데 타격도 빵빵 터지고……. 가을야구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아하는 선수

- 나는 좋아하는 선수가 엄청 많이 바뀌었어. 고등학교 때는 정의윤이라는 선수를 좋아했어. (정의윤 선수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입단했으니까 우리랑 나이도 비슷하고 정말 잘생겼거든. 그래서 정모도 다니고 그랬지. 정의윤이 군대를 가고 나서 오지환이라는 신입이 들어왔어. 이때 오지환을 좋아하다가 요즘은 다 좋아. 그런데 아무래도 야구 잘하고 잘생긴 선수들이 좋긴 하더라고. 그런데 LG 선수들은 다 잘생기고 다 잘해서 누구 하나 콕 찍어서 얘기할 수 없어.


요즘 여대생들도 야구를 많이 보는데 왜 그런 것 같나

- 스포츠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걸 교과서적으로 얘기하자면, 삶의 질 향상에 따른 취미생활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는 이유가 아닐까(하하). 06-07년도 까지만 해도 야구장이 텅텅 비어있고, 여자는 찾아볼 수도 없었는데. 요즘은 야구장 가면 남자팬보다 여자팬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여자들이 야구를 많이 즐기더라고. 일단 가장 큰 이유는 WBC랑 베이징 올림픽 때문인 것 같아. 여기서 우리나라가 굉장히 선전했기 때문에 관심과 열기가 프로야구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생각해. 시기적으로도 맞아 떨어지거든. 그리고 잘생긴 야구선수들이 많아지면서 팬심으로 야구에 입문하는 경우도 많아졌어. 운동도 잘하고 잘생긴 남자에게 관심이 가는 그런 거(하하). 왜 여대생들 중에는 체대생 로망 같은 게 있잖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야구선수에게 관심이 가는 거지. 남자친구가 야구를 좋아해서 함께 즐기려는 마음에 관심을 같게 되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아.


주변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나

- 우선 언니랑 여동생 다 야구를 좋아하고. 최근 들어서는 대학 동기들(여대생)에게도 같이 가자고 하면 호의적인 답변이 돌아와. 한 번 가보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친구들이) 내가 야구장에서 사진 찍히고 이런 거 보고나서 가보고 싶다는 애들도 많고, 갔다 와서 재밌었다는 애들도 많아. 야구 룰을 잘 몰라도 야구 응원 같이 하고 그런 것 때문에 재미있다고 하지. 이렇게 맛들리는 거야.


관전 포인트, 혹은 기억에 남았던 순간



- LG는 오늘의 트윈스 팬을 뽑아주거든. 작년 9월쯤, 야구장에 가려던 계획도 없었는데. 저녁 먹고 나서 잠실에 LG 경기가 있다는 걸 알고 그냥 형부랑 언니랑 나랑 다같이 갔어. 응원석은 일찍 매진이라서 못 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고 있었어. 여긴 응원석처럼 계속 일어나서 춤추고 이런 사람들 보다는 술 마시면서 앉아서 보는 분위기거든, 그런데 나는 막 일어나서 난리치고 춤추고 그래. 갑자기 5회 끝나고 장내 아나운서랑 마스코트가 내 쪽으로 오고 있는거야. 아 이쪽에서 누가 (오늘의 팬으로) 뽑혔나보다 했어. 그게 나였던거야. 그 날 유니폼도 안 입고 있어서 정말 의외였어. 전광판을 보니까 여태까지 내가 췄던 춤들이랑 응원 쭉 보여주고, 덕아웃쪽으로 내려가서 남은 경기 보고. 경기 끝나고 수훈선수 인터뷰도 직접 해보고. 박경수 선수를 인터뷰했는데, 박경수 선수 응원이 테크토닉 같은 거 추면서 하는 거라서, 오늘 팬들을 위해서 테크토닉 한 번 춰달라고 했는데 안 춰줬어. 똥 씹은 표정으로(ㅋㅋ). 다음에 우승하면 춰주겠다고 했지. 이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 고등학교 때 가면 사람도 없는데 매일 가는 우리는 안 뽑아주고 그래서 ‘왜 이렇게 당첨이 안 돼.’ 그랬는데 횡재했지. 얼마 전에도 한 번 더 뽑혔는데. 그래서 내 동생이 엄청 부러워해.


야구 보면서 가장 통쾌했던 순간

- 이기면 다 통쾌한데. 내가 야구장 갔는데 20:4로 대승을 거둔 적이 있어. 나는 농구하는 줄 알았어(ㅋㅋ). 형부가 기아팬이고 나는 LG팬인데. 기아랑 LG는 라이벌 의식이 강해. 같이 앉아서 응원하는데, 기아한테 20으로 이긴거야. 그래서 정말 웃겼지.

또 한 번은 롯데랑 했는데 4:4의 9회말 2아웃, 그리고 만루였어. 타자가 못 치면 연장으로 가는 상황이었는데. 사람들도 막 어떻게든!!! 이라는 심정으로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었어. 역전승을 거둬서 정말 기뻤지. 한 점차 승리. 고등학교 때는 많이 갔어도, LG가 암흑기여서 본 경기마다 다 졌어. 가면 지고, 가면 지고. 이 때는 굉장히 우울했지. 야구 지면 기분이 엄청 다운되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여대생이 야구장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

- 야구를 보다보면 룰을 알아가는 재미도 있어. 공부를 하고 보는 게 아니라, 계속 보기 시작하면 경기의 흐름도 자연히 알게 되는 거지. 야구장에서 사람들이 “아~”하고 탄식할 때 ‘아 저렇게 하면 안 좋은 거구나.’라고 분위기를 캐치해서 하나씩 알게 돼. 생각보다 야구 룰이 어려운 것 같아도 계속 보다보면 쉬워. 나도 보면서 깨달았어. 사실 야구를 책으로 배워도 막상 보면 이게 이건지 알 수 없지 않나. 뭐 나는 야구를 정말 많이 보러 다녔지만 아직 스트라이크존을 정확히 캐치 못 해. 그리고 야구를 글로 배우면 오히려 야구를 즐기기도 전에 따분해져서 재미없을 거야. 그래서 그냥 야구장에 가는 걸 추천할게. 구단마다, 선수마다 다른 응원법도 익히면서 분위기를 타다보면 자연스레 야구를 즐기고 있는 ‘너’를 발견하게 될 거야.


마지막으로 이선경에게 야구란

- 나를 살아가게 하는 활력소지. 야구에 대한 것이 하루라도 없으면 심각하게 심심해. 그리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안에 열정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준 것. 무언가에 푹 빠져 산다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아. 내가 무언가에 빠져있다는 것에 정말 감사해. 야구 안 좋아했으면 내 삶은 정말 무미건조했을거야. 월요일에는 야구 없거든. 그래서 월요일은 정말 심심해. 야구 없는 날은 뭔가 허전하고 그래.



인터뷰 전날 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야구에 대해 물어보며 속성 공부를 했지만,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인터뷰가 매우 걱정되었다. 왠지 전부터 야구장에는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야구 경기를 볼 줄도 몰라 막상 가도 재미가 없을 것 같고, 기회가 닿지 않아 아직도 야구장에 가보지 못했다. 그저 관심만 가득할 뿐, '아무것도 모르는 여대생'이 바로 나였다.

인터뷰 중, 야구 문외한인 나를 위해 선경씨는 기본적인 야구 상식을 차분하게 설명해주고 답변을 이어나갔다. 선경씨가 해주는 야구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어느새 야구의 매력에 젖어들고 있었다.

인터뷰 이후, 무작정 야구장의 분위기를 즐겨보라고 조언해준 선경씨의 말에 따라 야구장에 다녀왔다. 그 후 컴퓨터 앞에서 야구 관련 기사를 클릭하고 잘생긴 야구선수 사진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글을 읽은 당신도 선경씨가 퍼트리는 '매력적인 야구 바이러스'에 빠졌을지도 모른다.